‘조개 캐기 체험’ 명소의 변신…K-갯벌 살리는 길
2층짜리 투박한 건물에서 나와 열 걸음 정도 걷자 길이 끝났다. 앞을 가로막은 제방 뒤로 갯벌이 차 있었다. 지난가을까지 빨갛게 물들었을 칠면초가 연한 갈색으로 그 위를 덮었다. 그 사이사이로 바닷물이 스며들었다. 전북 고창군 심원면 두어리에 있는 ‘람사르고창갯벌센터’ 앞, 갯벌 복원 지역이다. 불과 15년 전까지 이곳에 폐양식장이 방치돼 있었다. 정부가 2010년부터 두어리 일대 폐양식장과 폐염전 자리에 축구장 135개 정도 크기인 96㏊를 복원했다. 해양수산부가 2009년 갯벌 복원 추진 계획을 세운 뒤 처음으로 복원이 진행된 3곳 중 하나다. <한겨레21>은 2024년 2월26~27일 고창 곰소만에 자리한 갯벌 복원지 현장을 찾았다. 정영진 람사르고창갯벌센터장과 장지영 생태지평연구소 협동처장이 동행했다.
복원 시작한 뒤 철새 기착지 요구 커져
2010~2014년 진행된 1차 복원 사업 때 고창은 복원 대상지를 5개 유형(A~E존)으로 나눠 진행했다. 4곳은 제방을 없애지 않고 보강한 뒤 기수습지나 염습지로 만들고, 1곳만 제방을 없애 자연상태로 돌린다는 계획이었다. 센터 앞 칠면초가 자란 구간은 제방을 없앤 뒤 개입 없이 그대로 둔 C존이었다. 이 구간 양옆에는 갈대 군락지와 염생식물 연구지가 있다. 해안선을 따라 복원지의 동쪽 끝 E존으로 갔더니 제방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바닷물이 차 있었다. 그 중간 작은 모래톱 위에 철새들이 앉아 쉬고 있었다.
“여긴 처음에 철새 쉼터로 설계됐지만, 대상이나 목적이 불분명했어요. 참고할 연구자료도 없었고, 중간에 공사비도 깎이다보니 제방 안에 물만 채워놓고 끝난 거예요.” 정영진 센터장이 말했다. 물로만 가득 찬 곳은 오리류같이 헤엄칠 수 있는 종들만 쉴 수 있다. 헤험칠 수 없는 도요물떼새는 머물기 어렵다. 고창갯벌센터는 2022년 E존 안에 인공섬을 만들고 도로변에 가림막을 쳤다. 그러고 나서야 도요물떼새 같은 철새들이 쉬기 시작했다. 최근엔 관심대상종인 큰뒷부리도요도 발견됐다.
2021년 고창을 비롯해 한국의 갯벌 5곳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면서 철새 휴식처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 당시 갯벌의 생물다양성 측면 외에 멸종위기 철새 기착지로서의 가치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새만금 간척사업이 진행됐고 중국이나 북한에서도 거대한 간척사업이 계속됐거든요. (황해를 찾는) 새들이 다 멸종하게 생긴 거예요. 그러다보니 국제 사회에서 드라이브를 걸었어요. 유네스코가 이곳이 철새들의 중요한 기착지라고 인정했기 때문에 서식지 보존이라는 과제도 부여된 거예요. (복원) 당시엔 이런 의미 자체를 몰랐죠. 새들을 위해 어떤 조건을 만들어줘야 하는지도 몰랐고요.” 장지영 처장이 말했다.
2010년 복원 사업이 시작할 때만 해도 고창을 포함한 각 갯벌의 복원 목표는 제각각이었다. 그 목표를 달성할지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지역마다 방식이 달랐다. 함께 시작한 전남 순천 농주리의 경우 제방을 다 없앴지만 고창은 제방을 유지하고 오히려 보강했다. 고창은 구역별로 다른 방식의 복원을 시도해보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제방을 없애면 공유수면이 되기 때문에 군의 소유권이 사라진다는 측면이 컸다. 복원 이후에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 지금은 복원 사업을 진행하면 지방자치단체에서 의무적으로 3년 동안 모니터링해야 하지만 당시엔 그런 조항도 없었다. 정 센터장은 “고창 1차 복원 사례는 당시만 해도 해양수산부 내에서 환영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기조가 바뀐 것은 2016년 람사르고창갯벌센터가 C존 앞에 들어선 뒤부터다. 센터는 각 복원지를 관찰하고 새로운 시도를 했다. 염생식물 연구지인 B존에 탐방로를 세워 교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D존에는 유입 해수량을 줄여 갈대와 모새달이 다른 종보다 우세하게 자라도록 했다. 종 다양성 측면에선 염생식물 가짓수를 늘리는 게 맞지만 최근 떠오른 ‘블루카본’(해양생태계가 흡수하는 탄소) 취지에 맞게 탄소를 많이 흡수하는 갈대 등을 일부러 늘린 것이다. E존의 철새 휴식 공간을 만든 것도 큰 성과다.
“실제 복원 관련 연구라든가 그런 측면에서 보면 고창은 미미한 편이죠. 다만 교육이나 관광 이런 측면에서 보면 가능성이 큰 곳이에요. 기존과 다른 방식의 새로운 노력을 많이 하거든요.” 해양수산부 해양생태과 신재영 과장이 말했다. “엄밀한 개념을 따지면 진정한 복원은 옛날에 있었던 것을 다시 만드는 것이라 개념이 달라요. 인공적으로 조성하는 건 식생조림이거든요. (지금 기조는) 필요하면 그런 부분(조림)도 해서 저희가 탄소흡수원을 만들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블루카본 추진은 좀더 포괄적인 전략이라고 보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게 정 센터장의 생각이다. “계속 시도해보는 거예요. 2023년에는 일부러 수로를 만들어봤어요. 과학적으로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시도를 해보지 않으면 어떤 영향이 있는지 모르니까요.” 제방으로 막혔기에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염습지를 생태교육장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국내 갯벌 복원지 중 생태교육장으로 활용되는 곳은 고창이 유일하다.
관광객·학생 안내하는 주민
미약하지만 일단 시작된 고창의 갯벌 복원 사업은 또 다른 복원을 낳았다. 2016년 고창군이 갯벌센터를 만들면서 센터를 중심으로 지역 주민과 지자체, 중앙정부가 함께 갯벌을 지키고 보존하는 문화를 만들어나갔다. 대표적 사례가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갯벌생태안내인 프로그램이다. 센터는 단순히 갯벌을 복원하고 보존하는 것을 넘어 관광객이나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그 안내를 주민들이 맡는다.
두어리 옆 만돌마을에서 평생 어업에 종사해온 김진근(50)씨도 갯벌생태안내인 중 한 명이다. 센터가 생겼을 때 처음 들어온 그는 현재 센터에서 가장 오래된 안내인이다. 그는 어촌계가 운영하는 갯벌체험학습장에서 일하다 이곳에 지원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잖아요. 현지인이라 이쪽 지역을 잘 알고 여기 사는 생물이나 새들도 잘 아니까요. 처음에는 소일거리 삼아 들어갔죠.”
김씨는 주로 갯벌 안내와 강의 등 교육 프로그램을 맡지만 모니터링도 한다. 김씨 같은 지역 주민의 모니터링은 더 가치가 있다. 신재영 과장은 “지역의 전문가가 제일 중요하다. 그 지역의 생태계 특성을 오랫동안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아야 (복원된 지역에) 적응할 때 추가로 관리할 부분을 알기 때문”이라며 “이런 부분은 (지역 특성에 관한) 경험이 많이 쌓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 센터장은 지역 주민들과 공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보통 완전한 복원이나 보전을 위해서는 주민을 이주시켜야 해요. 외국은 그런 사례도 있고요. 그런데 저는 주민 삶의 터전으로서 갯벌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주민과 협력되지 않으면 복원도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어민들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해요.” 정 센터장은 외부엔 복원의 성과를 홍보하지만 주민들에겐 주로 관광이나 교육을 통한 효과를 설명하는 데 주력한다. 1차 복원지 A존의 경우 주변 김공장 등에서 제방 안에 있는 해수를 끌어다 쓴다. 일종의 어민과 센터가 공존하는 방식이다.
물론 이곳엔 아직 갯벌 복원이 필요 없다는 주민들도 있다. 곰소만에서 양식을 하는 한 주민은 <한겨레21>과 만나 “솔직히 이런 거 할 게 아니라 어민들에게 (양식을 할 수 있도록) 세를 줘야지 (복원은) 아무 가치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자연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일이 양식을 통한 수입과 비교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창엔 이 주민처럼 양식장을 운영하거나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 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갯벌에서 일할 사람이 없어요. 지금까지 하는 사람들은 이전부터 갯벌을 통해 돈을 벌어온 이죠. 그렇다고 젊은 사람이 더 유입되진 않아요.” 김씨가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김씨와 같이 자연 보존과 복원에 가치를 인정하는 주민도 점차 늘어나겠지만, 그것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고창 갯벌의 가치가 전국에 알려지고 이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야 공존할 수 있다. 주민과 관광객,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관광으로 공존하는 독일 바덴해처럼 말이다.
바다와 농업, 어민과 농민을 함께 담는 사업
생태관광 패러다임을 바꿀 새로운 씨앗도 싹트고 있다. 2월26일 저녁 고창 석정리에 있는 ‘마켓레이지헤븐’의 사무실을 찾았을 때 안리안(44) 마켓레이지헤븐 공동대표가 주방에서 큰 냄비를 들고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냄비를 탁자 위 그릇에 통째로 쏟았다. 알맞게 익은 바지락과 옥수수, 감자 등이 쏟아졌다. 자리마다 놓인 잔에는 복분자와 맥주가 섞인 특제 칵테일이 담겼다. “저희는 진짜 고창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고, 지역의 스토리를 알려주고 싶어요. 그냥 설명하면 오래 걸리지만 이렇게 경험하게 해주면 오래 남거든요.” 안리안 대표는 고창이 전국에서 바지락의 최대 생산지라며 “이런 얘기가 나중에 기억에 남는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국내 생태관광은 대부분 ‘조개 캐기’ 같은 체험에 한정됐다. 고창도 전국에서 이런 체험학습관으로 유명한 곳 중 하나였다. 코로나19 대유행 전까지 매일 500~1천 명의 관광객이 갯벌을 찾았다. 4월부터 11월까지 갯벌 체험이 반복됐다. 학생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줄지어 차를 댈 곳이 없을 정도였다. 이런 방식은 생태계에 영향을 미쳤다. 체험학습용 갯벌을 지정해놨지만 점차 부족해졌고, 조개도 많이 죽었다. 해수부는 2023년 해양생태관광과 관련한 시범사업을 기획했다.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사업 모듈 개발을 위해서다. 고창의 마켓레이지헤븐이 2023년 말 프로그램 개발용역을 마쳤고, 2024년 상반기를 목표로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마켓레이지헤븐은 고창을 기반으로한 농촌 콘텐츠 개발 및 농식품 유통 스타트업이다.
지역에서 나온 해산물과 농산물로 요리하고 식사하면서 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이들이 기획한 생태관광 프로그램의 일부다. “바다와 농업, 어민과 농민을 함께 담을 수 있는 음식이잖아요. 지역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으니까요.”
이들은 갯벌 복원지 인근에 거점을 정해 그곳을 중심으로 갯벌 트레킹이나 탐조 및 생태해설 프로그램 등을 운영할 계획이다. 또 자연을 배경으로 생태놀이터나 팝업스토어를 만들고 체험하도록 구상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갯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이고, 이들이 자연을 더 잘 보존하도록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장지영 처장은 선순환 구조를 강조했다. “이런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이 활성화하면 부정적인 주민들도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어요. 복원을 더 적극적으로 지지할 수 있죠. 기존 논이나 양식장도 더 내놓을 수 있고요. 사실 복원이라는 것도 토지 소유권같이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당장 다 복원한다는 게 불가능해요. 이런 식으로 지역이 활성화하면서 주민에게도 경제적으로 사업이 된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해요.”
실제 <한겨레21>이 찾은 바덴해 갯벌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뒤 지역 주민들에게 경제적으로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보여주면서 주민들의 이해를 끌어냈다. 자연이 잘 보존되면 관광객이 모이고, 보존에 동의하는 관광객으로 인해 더 자연을 잘 보존하고 가꾸는 생태관광의 선순환 구조가 안착해 있기도 하다. 고창 사례가 성공한다면 국내에선 새 패러다임의 생태관광이 펼쳐질 수 있다.
염생식물 복원하고 블루카본 개념 확대
아직 갈 길은 멀다. 고창은 2018~2022년 1차 복원지 옆인 고창군 고전리의 폐양식장과 폐염전을 대상으로 2차 복원 사업을 진행했다. 약 24㏊ 규모다. 제방 제거를 통한 갯벌 복원이 목표였다. 그러나 2월27일 찾아간 현장은 복원이 완료됐다고 보기 어려웠다. 기존 양식장에서 쓰던 어망 등 쓰레기가 남아 있었고, 일부 지역은 제방을 허물지 않고 해수 유통을 위한 작은 수문만 뚫어놨다.
“주변 환경 및 쓰레기 등도 함께 관리가 되어야하는데 2차 복원지가 현재는 그정도 완성도를 갖추지 못했어요. 추진 중에 사업비가 삭감된 영향도 있고요. 다만 지금 추진중인 식생복원 사업비의 30%는 친수시설 설치와 현장관리 비용으로 사용이 가능하거든요. 식생 복원도 하면서 완전한 생태계 복원을 이뤄보려고 합니다.”(정영진 센터장)
고창군은 2023년부터 갯벌 식생 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차 복원지를 비롯해 1차 복원지와 인근 명사십리 해안사구에 염생식물 군락지 환경 조성 등을 위한 사업이다. 2023년 말까지 자문위원들이 실사를 마쳤고, 2024년 구체적인 설계에 들어간다. 예산 규모만 150억원에 이르는 큰 사업이다. 해수부 갯벌 복원 사업과 관련해 식생 복원 자문을 맡고 있는 한동욱 PGA생태연구소 소장은 “염습지를 통해 염생식물을 복원하고 거기에 블루카본을 확대한다는 개념까지 넣어 복원하는 것은 고창이 국내에서 처음”이라며 “이 사업이 잘되면 차후 갯벌이나 염습지 복원에 관한 기준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직 식생 복원이라고 부를 만한 복원은 이뤄지지 않았고 복원 매뉴얼도 없다. 목표 종이나 목표 염습지가 있어야 하는데 해수 유통만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목표가 개선이었다면 서식지를 개선한 것이니까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복원은 시공한 뒤 모니터링하고 다시 개선하는 식으로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복원사업은 이런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매뉴얼 작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니까 고창을 포함한 국내의 갯벌 복원 사업은 아직 초기 단계다. 그럼에도 희망이 있는 건 이들이 시작했고, 어떤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도 ‘러닝 바이 두잉’(하면서 배운다)은 존재했다.
고창(전북)=글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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