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러시아인의 푸틴 사랑

김태훈 논설위원 2024. 3. 19.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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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성규

한국에 사는 프랑스인과 러시아인이 유튜브에 나와 자국의 국민성을 화제 삼아 대화를 나눴다. 러시아인 출연자는 “러시아인은 자유를 싫어한다”고 했다. 자유롭게 살기보다 강력한 지도자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는 얘기였다. 역사적인 근거가 있다. 13세기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 대륙 곳곳에 세웠던 여러 한국(汗國)은 한 세기 뒤에 모두 멸망했지만 오직 러시아에 들어선 킵차크 한국만 두 세기 넘게 존속하며 러시아를 지배했다. 러시아인 특유의 굴종적 태도 탓이라는 분석이 있다.

▶스탈린은 러시아인의 이런 민족성을 꿰뚫고 있었다. 그가 1937년 대숙청을 일으켜 최대 120만명의 목숨을 빼앗는 동안 러시아인은 저항하지 않았다. 투하쳅스키 원수 등 전쟁 영웅들이 잇달아 처형될 때 군부도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2차 대전이 터지자 겁먹고 달아났던 스탈린을 찾아가 “다시 우리를 지휘해 달라”고 했다. 스탈린은 “독일군의 공격을 몸으로 버틴 뒤 그들의 전력이 고갈되면 후방의 예비 병력으로 반격하자”며 자국민을 총알받이로 쓰는 작전을 제안한 주코프 사령관을 좋아했다.

▶러시아인들은 서방세계에 뿌리 깊은 피해의식과 열등의식을 갖고 있다. 2차 대전에서 소련의 인명 피해가 컸던 이유도 연합군이 소련인을 더 많이 희생시키려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고의로 늦췄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온화해야 할 6월에 날씨가 쌀쌀해진 기상이변을 ‘미국 CIA 음모’라고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러시아의 크리스마스가 1월 7일인 것도 서유럽에 대한 반감이 한 원인이라 한다.

▶푸틴이 다섯 번째 집권에 성공하며 30년 장기 집권 문을 열었다. 그의 승리를 두고 “부정선거여서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투명 투표함을 쓰고 기표 용지를 접지도 않으니 투표라고 하기도 힘들다. 한 독립 언론은 열을 가하면 잉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감온(感溫) 잉크를 내장한 기표 용구가 쓰였다며 기표 부위가 라이터 불에 지워지는 장면도 공개했다.

▶그러나 압도적 다수의 러시아 국민이 푸틴을 택한 것이 사실이다. 누군가 강한 사람이 질서를 잡아주고 민중은 그냥 따르면 된다는 사고방식이다. 러시아인들은 러시아를 유럽 강국으로 발돋움시킨 표트르 대제를 숭배한다. 그런 지도자가 또 나와 서유럽에 대한 열등감을 풀어주길 바란다. 그 마음을 읽은 푸틴은 ‘표트르 대제는 내 롤 모델’이라고 했다. 러시아인들도 러시아의 영광을 실추시킨 고르바초프보다는 우크라이나를 침략하고 나발니를 죽인 푸틴을 좋아한다. 이 ‘러시아인 의식’은 계속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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