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미래세대,‘국경 넘는 공감력’ 갖춘 세계시민으로 자라야

기자 2024. 3. 19.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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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쿠데타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지난해 개봉된 이후 한국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도서관에서 현대사 관련 책을 찾는 이들도 늘었다고 한다. 독재와 저항의 역사를 살피는 일은 물론 소중하다. 하지만 나는 우리 학생들이 그로부터 한발 더 나아갔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역사의 상처를 단지 기억하기만 한다면, 세계시민으로서의 공감대를 기르기 어렵다. 우리가 아픈 역사를 지닌 만큼, 나라 밖에서 벌어지는 억압과 차별, 폭력에 대해서도 예민해져야 한다.

서울시교육청이 2021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 당시 교육 자료를 만들고 토론 수업을 권했던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군부 쿠데타와 이를 반대하는 불복종운동, 이른바 ‘봄의 혁명’은 우리 현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마침 박은홍 성공회대 교수가 <불복종의 정치학>을 출간했다. 미얀마 시민들의 불복종운동을 태국 사례와 비교 분석한 책이다. 국경을 넘는 세계시민의 연대가 지닌 중요성, 그리고 연대는 타자의 서사에 대한 이해와 공감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혁신교육은 지난 10여년 동안 민주시민을 기르기 위해 노력해왔다. 여기서 민주시민이란 권리에 대해 당당하고 주체적인 존재를 지향한다.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독재정권을 ‘대립항’으로 설정한 개념이다. 이 같은 목표는 이제 상당한 수준으로 달성됐다. 이제 목표와 개념을 확장할 때다. 급속한 지구화로 인해, 민족과 국가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민주시민 개념은 민족적 공간을 암묵적으로 전제할 때가 많았다. 이제 달라져야 한다. 한국은 이미 세계를 품고 있다. 초·중등학교 다문화 학생 수는 2023년 기준 18만1178명으로 지난해보다 1만2533명(7.4%) 증가했다. 전체 초·중·고교생 중 다문화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3.5%로 전년보다 0.3%포인트 증가했다. 우리 학생들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지구촌 이웃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기 위한 역량과 감수성을 길러야 한다. 서울시교육청에선 이를 세계시민형 민주시민교육이라고 부른다.

안중근 의사가 동양평화회의를 제안한 지 114년이 지났다. 동아시아가 역사의 상처를 딛고 평화 공존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역사가 깊다. 나 역시 교육감이 되기 전 ‘아시아평화연방’에 대한 고민을 동료 학자들과 공유한 바 있다. 유럽연합처럼 초국경적 연합이 아시아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지구촌이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지로 나뉘어 있었다. 전자는 ‘세계 경영’을 지향하는 억압 민족국가들이었고, 후자는 피억압 민족국가들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는 피억압 민족국가였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우리는 지배적인 억압 민족국가를 향한 저항의 정서가 강한 편이다. 하지만 2024년의 대한민국은 일제 식민지였던 100여년 전과는 전혀 다르다. 때론 우리가 다른 약자를 억압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외면할 때가 많다. 윗세대의 한계다. 우리 학생들은 그 한계를 넘어서기 바란다. 피식민 경험은 기억하되, 지배자가 아니라 약자의 시각에 공감하는 세계시민이 되면 좋겠다.

나라 밖 곳곳에서 다양한 약자와 소수자가 불평등, 테러와의 전쟁, 기후위기와 자연 재난, 빈곤과 차별로 신음한다. 이들에게 공감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미얀마 시민 불복종운동에 대한 관심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우리 역시 위대한 시민 불복종의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경을 넘는 공감능력을 갖춘 우리 미래세대가 이끌어 갈 대한민국은 지구촌에서 도덕적 존경을 받는 나라가 되리라는 꿈을 품고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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