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단도직입]“왜 사채 문제에 집중? 오늘도 피해자들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죠”
1965년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대를 졸업했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 연구자인 그는 ‘제주 맑스’로 불린다. 1997년 10월 ‘국민승리21’에 정책위원으로 합류해 민주노동당 정책실장,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정책실장을 지냈다. 2008년 민주노동당이 분당할 때 탈당해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를 만들어 사무처장으로 16년째 운영 중이다. 저서로는 <자유인들의 연합체를 위한 선언>(1993), <소유문제와 자본주의 발전단계론>(1994), <산업순환 현상>(1995), <대출 천국의 비밀>(2011)이 있다.
송태경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 사무처장(59)은 대형마트 규제, 상가 및 주택 임대차보호법,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등 민주노동당 전성기의 주요 정책을 만든 실력 있는 정책가이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그런 그가 최근 유명해졌다.
송 처장은 지난 1월18일 ‘사회적 짐을 내려놓으며’라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2008년부터 16년간 사채 피해자들의 권리구제를 위해 독립운동하듯 꾸려온 민생연대를 해산한다는 공지였다. 그는 “내가 이 시간들 동안 짊어졌던 사회적 짐은 한 개인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버거운 것이었다”고 적었다.
얼마 뒤 송 처장의 헌신적 활동과 민생연대 재정난이 JTBC 보도로 알려졌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미안하다’ ‘감사하다’ ‘존경한다’ ‘감동받았다’는 반응과 시민들의 후원이 쇄도했다. 송 처장은 2월24일 다시 글을 올렸다. “민생연대의 절망적인 재정 상태가 소액 후원들이 모이고 쌓이더니 금세 말끔히 해소됐습니다. 소중한 후원들 덕에 민생연대를 해산하지 않고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송 처장은 “이렇듯 관심을 가져준 모든 분께 그저 고맙다”면서 “늘 초심 그대로일 것을 약속드린다”고 했다.
민생연대의 새출발을 위해 신발끈을 조이고 있는 송 처장을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청역 인근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청빈한 수도자 같은 인상이었고, 건강은 좋지 않아 보였다.
민생연대 재정난에 해산 공지했다 후원 쇄도로 기적처럼 유지하게 돼
사채 빠지면 자신과 주변 황폐화…그들에게 계속 희망 줄 수 있어 감사
- 재정난으로 사무실 운영을 중단하려다 극적으로 계속 운영하게 됐습니다.
“사채에 빠지면 자신은 물론 주변을 황폐화시켜요. 정리해주지 않으면 주변까지 다 망가져요. 그 사람들 열 중 서넛은 죽어요. 그런 분들, 그분들의 가족이나 주변인들을 대신해서 정말 고맙죠.”
- 재정난이 언제부터 심해졌나요.
“3~4년 전부터 최악이었어요. CMS 후원도 빠졌고.”
- 그런데도 3~4년을 버텼어요.
“상담한 사람 중에 젊은 친구가 있어요. 아주 활달한 청년이었거든요. 사채를 끌어다 썼다가 주변 사람들 돈까지 끌어다 메우고, 그것도 안 되니까 또 사채를 끌어다 쓰고, 이걸 오랫동안 반복한 거예요. 그 청년 건을 3~4일 만에 깔끔하게 정리해 2억원 정도 돌려받게 했죠. 그래도 그 청년은 빈 깡통이었어요. 주변에 손 벌린 것도 일부만 갚았어요. 그 청년이 어느 날 이 문을 열고 환하게 들어왔는데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해요. 웃으며 ‘처장님 이제 마음고생 끝났습니다’ 하고 여기 앉아 있는데, ‘이제 정말 인간답게 잘 살아야 한다’고 해도 왠지 고개를 푹 숙이고 답을 안 해요. 얼마 뒤 그 친구랑 처음 같이 왔던 분이 연락하더군요. 사채에 빠져 주변을 어렵게 한 죄책감을 떨치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 겁니다. 청년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저런 친구들을 내가 어떻게 떠나버려. 어떻게든 유지해보자’고 노력했죠. 그런데 잘 안되더라고요. 지난 3년은 거의 극한이었어요.”
“그 친구가 문을 열고 환하게 들어왔는데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해요”라고 말하는 송 처장의 눈에 물기가 비쳤다.
- ‘민생연대가 문을 닫는다’는 사연이 알려지자 후원이 쇄도했어요.
“후원금이 8억원 넘게 들어왔으니 1만명 넘게 후원했을 거예요. 그것과 별개로 CMS 후원회원도 200명 넘게 왔고요.”
- 무엇이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요.
“방송에서 특별한 얘기를 한 것도 아니에요. ‘내 능력으로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엄청난 사회적 이익인데 안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게 내 지론인데, 이런 초심이 느껴졌나봐요. 공동체 구성원 누구나 다 조금씩 따듯한 감정을 갖고 있는데, 그 감정을 공유한 거죠. 나는 대단한 일을 한 게 아니에요. 나는 경제 정책을 다뤘고, 법제를 다뤘고, 이 분야의 경제 원리를 알고 있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을 능력이 있어요. 이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이 재능 기부하듯 했을 뿐이에요.”
- 2008년 민생연대 활동을 시작한 이래 송 처장의 도움을 받은 사채 피해자들이 얼마나 됩니까.
“최재천 의원실에서 2년간 일하며 도움 준 분들만 1000명이 넘으니 16년간 총 3000명은 넘을 겁니다. 그러나 숫자에 의미를 두지는 않아요.”
송 처장은 2012년 6월부터 2년간 최재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민생고 희망찾기 무료법률지원실’을 운영했다. 의원 보좌관 직함을 달고 민생연대 일을 할 수 있도록 최 전 의원이 배려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스페셜 보좌관’이라고 불렀다.
비싼 이자 허용하고 합법 등록에 불법 영업하는 대부업 제도가 큰 문제
등록제여서 관리·감독 사각…그 틈새로 미등록 업체 독버섯처럼 자라
- 여러 민생 영역 중에서도 불법 사금융 문제에 집중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 어떤 분야보다도 심각한 수준의 차별과 불평등이 난무하고 수많은 사회구성원이 그 가족과 지인들까지 황폐화시키면서 소리 소문 없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 왜 불법 사채가 활개를 칠까요.
“대부업 제도 때문이에요. 아주 비싼 이자를 합법적으로 받도록 허용하는 동시에 합법적으로 등록해 불법적으로 영업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많은 대부업체가 합법적으로 등록해 불법적으로 영업하니 다른 불법 업체들도 그들처럼 영업할 수 있는 게 한국 불법 사채시장의 현주소예요. 미등록 사채업자도 많아요. 등록인지 미등록인지 아예 구분이 안 되거든요.”
현행 대부업은 인허가제가 아니라 등록제다. 그러다보니 관리·감독의 사각이 생기고, 합법적으로 등록해 불법적으로 영업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송 처장의 설명이다. 그 주변에서 아예 등록도 하지 않은 대부업체가 독버섯처럼 자란다고 한다. 등록된 대부업체의 불법 영업, 미등록 대부업체의 불법 영업이 사채시장의 현주소라는 것이다.
순자산 일정액 이상 갖춰야 영업 허용 땐, 일본처럼 불법의 온상 정리
엉터리 공증제도 개선과 질권설정금지 위반에 대한 형사처벌도 필요
- 해법은 뭘까요.
“순자산액 제도를 실효성 있게 도입하면 인허가 제도의 중간 단계 효과를 볼 수 있어요. 일본이 이미 그렇게 정비를 했어요. 예를 들면 3억원 이상 순자산을 갖고 있지 않으면 대부업 등록도 못하고 영업도 못하고 등록 갱신도 못하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채무를 주렁주렁 달고 영업할 순 없게 돼요.”
일정 순자산 규모를 갖춘 업체만 대부업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남의 돈으로 사채업을 할 수 없게 되고, 대부업체의 팽창·난립도 막을 수 있다는 게 송 처장의 분석이다. 관리·감독 사각지대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일정 순자산을 갖춘 중견 대부업체만 관리·감독해 불법 영업을 못하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 업체들을 제외하고는 광고도, 영업도 할 수 없다. 송 처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계좌등록제 같은 것을 보완해서 등록된 계좌 외에 다른 계좌들을 다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아버리면 거래 투명성까지 생겨요. 그런데 지금처럼 운영하니까 합법적으로 등록해서 불법자금으로 서민들의 등을 치고 세금은 세금대로 안 내죠. 광범위한 탈세가 지금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이걸 조장하고 계속 유지하고 있는 거고요.”
- 현행 공증 제도엔 문제없나요.
“우리나라 제도는 공증만 받으면 법원 판결도 없이 확정판결 효력을 갖고 강제집행할 수 있어요. 문제는 공증이 남발되고 있다는 거예요. 내가 상담한 사례 중에도 채무자에게 준 실질 대출금은 3500만원이었는데 공증 채권액은 6000만원으로 작성된 게 있었어요. 확정판결 효력이 있는 서류를 발행하면서 실거래내역 증빙서류를 제출토록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실채무금액과는 동떨어진 채권액을 적은 공증서류가 광범위하게 작성되고 발행되는 거죠.”
- 이렇게 사실과 달리 적힌 공증서류가 법원 등에서 전혀 걸러지지 않나요.
“공정증서상의 채권자가 공증으로 강제집행을 신청할 때 법원은 채무를 얼마나 갚았고 얼마가 남았는지 확인하는 최소한의 절차 없이 공증의 채권금액대로 강제집행을 인정해버립니다. 채무자가 청구이의 소송을 제기하고 이 소송을 기초로 강제집행 정지 신청을 하려고 해도 채권자가 청구한 금액대로 공탁하지 않으면 강제집행 정지 신청을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채무자가 법원이 요구하는 공탁금 등을 마련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그러니 강제집행은 대부분 그대로 진행되죠. 강제집행 후 청구이의 소송에서 승소해도 이미 강제집행으로 발생한 손실을 되돌리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공증은 최소한 실채권액 증빙(계좌증빙) 없이는 발행할 수 없게 해야 합니다.”
임대차보호법 등 민노당서 실사구시적 정책 활동…주변 여건에 좌절
경제민주주의 같은 대안적 정치 운동 펼칠 건강한 정당이 성장해야
- 향후 민생연대의 주력 사업도 그런 쪽이겠군요.
“민생연대가 정상화되면 제도 개선 운동을 할 거예요. 첫째, 순자산액 제도의 실효성 있는 도입입니다. 불법 사채시장의 온상을 정리하는 거죠. 둘째, 엉터리 공증 제도 개선입니다. 증빙 없는 경우 공증을 발행하지 못하게 하고, 강제집행 전 잔여채무를 심사하도록 하는 거죠. 셋째, 자동차 등 질권설정금지 위반에 대한 형사처벌입니다. 현재는 민사적으로만 금지하고 형사처벌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처벌규정 미비 때문에 돈을 빌려줬다는 이유로 자동차를 점유해 대포차를 운행하는 일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 최근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니까 ‘민생연대가 주목하는 경제민주화의 다른 영역에도 관심을 가질 여력이 생겼다’고 썼더군요.
“당장 급한 것은 임대차 영역이죠. 이를테면 주택 임대차 계약과 관련해서 계약갱신 기간을 늘리는 문제가 있어요. 세입자 우선매수제 등을 정상적으로 도입하는 문제부터 다양한 과제들이 있어요.”
- 경제민주주의는 무엇입니까.
“경제민주주의는 사람들의 경제적 관계에서 차별과 불평등을 시정하거나 해소하는 걸 도모하는 일입니다. 경제적 관계는 크게 다섯 가지가 있어요. 판매자들과 구매자들의 관계, 흔히 노사관계라고 말하는 자본과 임금노동자들 간 관계, 금융의 영역으로 분류되는 채권채무관계, 토지자본 소유 및 임대차 관계, 국가와 국민들 사이에 형성되는 조세 및 재정 관계가 그것입니다. 거기에 대응해 경제민주주의도 소비자 민주주의, 기업민주주의, 금융민주주의, 재정민주주의 또는 조세재정 민주주의로 세분화됩니다. 토지자본 소유 및 임대차 관계에 대해서는 세분화된 민주주의 개념이 아직까지 없는 듯합니다. 경제민주주의가 실현되어 경제생활에 참여하는 모두가 다 실질적으로 평등하게 된다면 경제 영역에서의 사회계급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계급과 계급이 대립하는 낡은 자본주의는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릴 겁니다.”
송 처장은 1990년대 초반 제주에서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독학해 독자적인 이론을 정립했다. 그의 관점에서 소유자와 일하는 사람이 일치하지 않는 국가소유(국유화) 역시 매우 문제적인 것이다. 국유화 기반의 북한식 경제체제, 옛 소련식 경제체제에 대해서도 당연히 매우 비판적이다. 그에게 자유로운 생산자 연합(공산주의!)의 맹아 내지 이상에 더 가까운 것은 스페인 몬드라곤협동조합이나 노동자 소유 기업, 종업원지주회사 같은 것이다.
학문적 배경이나 석박사 학위도 없는 20대 중후반의 청년이, 그것도 제주라는 변방에서 내로라하는 국내외 <자본론> 해석 권위자들에게 주눅 들지 않고 자신만의 이론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거꾸로 말하면, 선행 해석에 오염되지 않은 ‘초심자의 눈’으로 보았기에 <자본론>에서 새로운 통찰을 길어올릴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가 민주노동당 전성기에 사람들 피부에 와닿는 여러 정책을 만든 것도 권위 또는 도그마에 기대거나 주눅 들지 않고 구체적 현실을 자신의 머리로 직접 연구해 해답을 ‘발견’하려는 태도가 바탕에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자본론>이라는 거대한 이론의 성채, 자본주의와 소유관계라는 초거대 담론은 그에게서 이런 식으로 구체적 민생 문제와 접점을 찾는다.
송 처장의 헌신적이고 창의적인, 무엇보다 실사구시적인 정책 활동은 민주노동당 전성기에도 당내에서 합당한 정치적 대접을 받지 못했다. 고 이재영 전 민주노동당 정책실장은 2007년 “국책연구소라면 몇억원쯤 들여 두어 달쯤 걸리는 일을 사나흘 만에 끝내라 주문하고, 송태경의 철야 작업에 쓰였을 과자 두 봉지, 담배 한 갑 영수증을 처리해주지 않는 민주노동당은 딱 그만큼에서 멈출 것”이라고 쓴 적이 있다. 그 예언대로 민주노동당은 2008년 둘로 쪼개지며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고, 송 처장은 눈물을 흘리며 진보정당을 떠나 민생연대를 꾸렸다.
그가 말했다. “정말 경제민주화를 바라는 정당이 성장해야 돼요. 과거 민주노동당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민주화운동, 실업운동, 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과 같은 대안적 정치 운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을 동력으로 삼는 건강한 정당이 있어야 돼요. 그러나 우리는 실패했죠. 여기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당권을 좌지우지해버렸어요.”
최근 송 처장의 고군분투가 알려진 뒤 그에게는 ‘사채 피해자들의 성자’라는 칭호가 붙었다. 과거 민주노동당에서 정책 일을 했던 목수정씨는 페이스북에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 원천기술 보유자 중 한 사람, 국내 최고의 <자본론> 강사, 탁월한 진보진영 정책가, 빠삭한 법률 지식으로 숱한 인생을 구제해준 실력 있는 활동가의 활약이 성자의 선행으로 묘사된다”면서 “이는 진보정당들이 모색해온 사회 변혁이 결국은 어떤 신뢰도 형성하지 못했음을, 진보정치의 패배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적었다. 송 처장은 “목수정씨 평가에 동의한다”고 했다. 그에게 ‘진보정당에 설 자리가 생기면 돌아올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제가 설 자리가 있을 수 있는 지형이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최장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2012년 신용불량 문제에 관해 쓴 경향신문 칼럼에서 “송태경 사무처장의 활동은 진정한 의미에서 진보적인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가 다루고 도와줄 수 있는 범위는 지극히 한정적”이라고 했다. “신용불량자들을 위한 정치적 대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났다. 사정은 별반 바뀌지 않았거나 더욱 나빠진 것으로 보인다. 송 처장의 ‘설 자리 없음’이 좁게는 진보정치, 넓게는 한국 정치의 어떤 결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제혁 논설위원 jh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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