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비 없는 영상·음악·대사… 몰입감 ‘업’

송은아 2024. 3. 1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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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계 거장 반열을 예약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낭비 없는 영상과 음악, 대사가 일품이다.

하마구치 감독은 전작인 '드라이브 마이 카' 음악감독인 이시바시 에이코의 공연에 사용할 영상으로 이 작품을 기획했다.

그는 작업 중 "뮤직비디오 형태로는 찍을 수 없다. 영화로 연출하지 않으면 이시바시의 음악에 맞서기 어렵다"며 각본을 썼고 그렇게 독립된 영화 한 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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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획사·주민, 글램핑장 조성 갈등 그려
‘惡’ 존재 여부에 대한 답 관객 몫 남겨
일본 영화계 거장 반열을 예약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낭비 없는 영상과 음악, 대사가 일품이다. 분위기는 서늘하면서 관조적이다. 대사들은 깔끔하고 정확하다. 수다스럽거나 요란하지 않고 그 사이 리듬감 있게 여백이 어우러져 피식피식 웃음을 자아낸다. ‘이 영화는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가겠구나’하면서 전체 그림을 예상할 때쯤 돌연 급커브가 나타난다.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영상과 함께 얼떨떨하게 영화가 마무리되면, 이때부터 관객 각자의 답 찾기가 시작된다.
배경은 도쿄에서 몇 시간 떨어진 한적한 마을이다. 멀리 설산이 보이고 사람 키의 몇 배 높이 나무가 우거졌다. 산속 냇물을 떠다 마실 만큼 청정하고, 숲에선 사슴이 노닌다.

수염이 덥수룩한 다쿠미는 이 마을에서 어린 딸 ‘하나’를 혼자 키우며 산다. 말수가 적은 그는 늘 물을 긷거나 장작을 패고 있다. 

사건은 도쿄의 한 연예기획사가 마을 숲에 글램핑장을 짓기로 하면서 시작된다. 주민들은 불안해한다. 삐딱한 젊은 주민은 ‘정부의 코로나 보조금을 받으려는 요식행위’일 것이라고 꿰뚫어 본다.

기획사가 마을회관에서 글램핌장 사업설명회를 연다. 사업 계획은 무성의하기 짝이 없다. 비용을 최대한 줄이려 정화조를 작게 만들고, 관리 인력 운용도 엉망이다. 주민들은 식수원 오염, 잦은 산불 발생이 불 보듯 뻔하다며 우려한다. 원주민의 기본권과 자본의 이윤 추구 사이 대립이 팽팽하다.
설명회 후 기획사가 내부회의를 하는 장면은 개발사업의 이면을 꼬집는다. 글램핑 컨설턴트는 ‘설명회는 주민과 충분히 소통했다는 증거를 제시하려는 목적’이라며 무리한 계획을 밀어붙인다. 국내 개발사업에서 ‘주민 소통’이 전가의 보도처럼 관성적으로 쓰이는 현실이 떠올라 씁쓸하다. 

기획사 직원 두 명은 회의 결과를 전하러 다시 마을로 향한다. 이들이 차 안에서 하는 잡담에는 상당수 직장인이 공감할 법하다. 그렇게 주민과 기획사 직원 모두에게 정이 들 때쯤 갑작스러운 결말이 찾아온다. 이 영화는 인간·기계·폭력과 자연·평화·연약함 사이 대비를 여러 갈래로 보여 주며 조용한 긴장을 자아낸다. 악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 둔다.

하마구치 감독은 전작인 ‘드라이브 마이 카’ 음악감독인 이시바시 에이코의 공연에 사용할 영상으로 이 작품을 기획했다. 그는 작업 중 “뮤직비디오 형태로는 찍을 수 없다. 영화로 연출하지 않으면 이시바시의 음악에 맞서기 어렵다”며 각본을 썼고 그렇게 독립된 영화 한 편이 됐다.

이 작품은 지난해 제80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이로써 하마구치 감독은 세계 3대 국제영화제에서 모두 상을 받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앞서 2021년 ‘우연과 상상’이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드라이브 마이 카’가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4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했다.

송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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