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환대를 넘어 연대로 [전국 프리즘]

이준희 기자 2024. 3. 1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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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상징하는 쇠사슬 행위극을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이준희 | 전국부 기자

지난해 4월 이주민 정책 취재를 위해 프랑스 파리에 갔다. 샤를 드골 공항에 내려 지하철을 탔다. 이주민이 많은 파리 북부에서는 승객 중 백인을 찾기 어려웠다. 호텔이 있는 파리 중심부는 달랐다. 거리에 있는 대부분이 백인이었다. 흑인을 볼 수 있는 경우는 제한적이었다. 에펠탑 앞 노점상, 호텔 청소부, 박물관 경비원. 마치 흑인이 하는 일이 따로 정해져 있는 듯 보였다. 일종의 ‘인종화한 계급’이었다.

프랑스는 이주민 포용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불평등도 뿌리 깊었다. 특히 이주민에 대한 존중은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자본주의 논리 앞에서 맥없이 무너졌다. 이주민이라는 정체성은 배려 대상이 될 수 있었지만, 노동자로서 그들이 저임금을 받는 이유는 노력이나 능력 부족, 심지어는 게으름 같은 ‘인종적 특성’으로 쉽사리 치환됐다. 이들을 저임금 일자리로 몰아넣는 구조는 은폐됐다.

한국은 어떨까. 윤석열 정부는 인구 절벽과 지역 소멸 문제 해법으로 이민 정책을 꺼내 들었다. 그 일환으로 올해 비전문 취업(E-9) 비자 발급 규모를 역대 최대인 16만5천명으로 확대했다. 서울 등 4개 지역에서는 하반기부터 이들이 호텔이나 식당 주방에서도 일할 수 있다. 서울시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시범사업도 시작한다.

정책의 기조는 뚜렷하다. 내국인이 꺼리는 일자리에 외국인을 투입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들을 저임금 일자리에 묶어두기 위해 감시와 처벌은 강화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고 3만8천여명을 적발했다. 이주노동자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을 받는 고용허가제는 그대로 유지했다.

부작용이 터져 나왔다. 지난해 11월 경북 경주시 한 공장에서는 단속 과정에서 법무부 남성 직원이 팔로 여성 이주노동자를 ‘헤드록’으로 제압해 끌고 가는 영상이 공개돼 공분을 샀다. 경기 오산시에 있는 한신대는 같은 달 27일 어학당에 다니던 우즈베키스탄 유학생 22명을 “불법체류자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경비 용역을 동원해 휴대폰까지 압수해 가며 강제로 출국하게 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충격을 줬다.

법무부 직원이 지난해 11월7일 경북 경주시 한 공장에서 미등록 체류 이주민 단속 도중 한 여성 이주노동자의 목을 조르고 있다. 영상 갈무리

정부의 강압적인 이주민 정책을 두고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일손이 부족한 농어촌은 물론 수도권 기업에서도 불만이 나온다. 이주민 덕분에 소멸을 면하는 지역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에는 정치 성향을 가리지 않고 이주민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을 모색하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동의하면서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국가·민족·인종 같은 껍질을 벗겨내면 그 속엔 착취를 통해서만 유지 가능한 체제의 문제가 존재한다는 의심 때문이다. 내국인과 외국인을 나누기 이전에 ‘인간이 꺼리는 노동’이라면, 노동 현장부터 바꿔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미래의 한국을 상상해보자. 아시아 각국에서 온 이들이 저임금 일자리를 채운 그 땅에서 이주민 2세대가 자신의 부모가 당한 착취를 비판하고 나선다면? 저임금 노동을 강제하고, 작업장을 이탈하면 불법 딱지를 붙여 처벌하는 한국의 이주민 정책을 ‘현대판 노예제’라고 비판한다면? 우린 그걸 이주민 문제로 봐야 할까, 계급 문제로 봐야 할까. 단순히 이주민에 대한 환대가 세대를 거쳐 쌓일 그 분노를 막을 수 있을까.

역사학자 에릭 윌리엄스는 저서 ‘자본주의와 노예제도’에서 인종차별 때문에 흑인 노예제가 생긴 게 아니라, 흑인 노예제가 인종차별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서구 산업화의 동력은 초과이윤을 통한 자본 축적을 가능하게 했던 흑인 노예제이고, 이 과정을 정당화할 논리로서 인종차별이 탄생했다는 지적이다. 윌리엄스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대의 정치 이념과 도덕관념은 그것들이 경제발달과 맺는 아주 긴밀한 관계 속에서 검토해야 한다.” 이주민에 대한 환대를 넘어, 함께 착취의 구조를 넘을 연대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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