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근육 세포로 망가진 심장 교체…내 몸으로 '셀프 장기이식' 가능해진다
(2) 줄기세포 기술로 '맞춤형 장기' 생성
길이 1㎜에 겨우 20일이면 수명이 다하는 예쁜꼬마선충은 노화 연구자들의 오랜 파트너다. 쥐 같은 실험 동물에 비해 수명이 짧아 연구 결과를 빠르게 얻을 수 있어서다. 지난달 기자가 찾은 미국 UC샌타바버라 노화연구소(CALS)에서는 예쁜꼬마선충으로 몸속 장기를 다른 장기로 바꾸는 실험이 한창이었다. 조엘 로스먼 CALS 소장은 “줄기세포 기술을 활용해 예쁜꼬마선충의 자궁을 장으로 바꾸는 실험에 성공했다”며 “가령 피부조직을 안전하게 심장으로 바꿀 수 있게 되면 심장병 환자는 다른 사람의 장기나 인공장기를 이식받지 않고도 새로운 심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피부·근육 세포로 심장 만든다
2021년 설립된 CALS는 미국 솔크연구소와 함께 역노화기술을 연구하는 대표적인 연구소로 꼽힌다. 설립자인 로스먼 소장은 “다양한 전공자와의 자유로운 융합연구가 CALS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예쁜꼬마선충의 자궁을 장으로 바꾼 연구 결과도 이런 자유로운 정신에서 나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기술의 뿌리는 다 자란 개체의 세포를 줄기세포로 되돌리는 역분화줄기세포(iPSC)다. 다 자란 사람의 세포도 줄기세포로 되돌릴 수 있는 기술이다. 줄기세포는 늙지 않는 세포인데, 우리 몸의 어떤 세포로도 분화할 수 있는 독특한 세포다. 이전까지 역노화 연구에서는 나이 든 세포가 줄기세포가 됐을 때 생체시계가 ‘0세’로 재조정되는 데 주목했다. 망가진 간세포가 정상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피부, 장기 등을 젊게 만드는 역노화 기술의 밑바탕이 된 세포 리프로그래밍 기술이다.
CALS 연구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세포를 젊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다른 세포로 바꾸는 시도를 했다. 자궁세포를 장세포로 바꾸자 예쁜꼬마선충 몸속에 3차원 구조의 장이 만들어졌다. 줄기세포를 다른 종류의 세포로 바꾼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미 다 자란 개체에서 세포 종류를 바꿔 3차원 구조 장기를 만드는 데 성공한 건 CALS가 최초다. 로스먼 소장은 “자궁에서 장뿐만 아니라 어떤 세포든 원하는 다른 종류로 바꿔주는 ‘방정식’을 완성해 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혈관 등 조직 재생은 상용화 단계
CALS의 연구가 장기 이식의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예쁜꼬마선충과 비교가 어려울 만큼 인체는 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예쁜꼬마선충 몸속에서도 새로 만든 장은 안정적으로 구조를 유지하기는 했지만 제 기능을 하진 못했다. 쥐, 영장류 등 사람과 가까운 고등동물에서 안전성과 효능을 검증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는 것도 아직은 먼 이야기다.
대신 조직 일부를 재생하는 치료법은 궤도에 올랐다. 장기 대신 구조가 덜 복잡한 혈관이 자라나도록 하는 치료법은 상용화가 임박했다. 환자의 세포를 리프로그래밍해서 혈관을 생성하는 줄기세포를 만들거나 혈관을 구성하는 세포를 키워 이식하는 방식이다. 미국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 등이 연구에 뛰어들었다. 국내에서는 카리스바이오가 연내 임상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맞춤형 인공장기 현실화 전망
인공장기는 CALS가 연구 중인 자가 장기 재생 기술보다 더 빨리 현실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줄기세포를 배양해 특정 장기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 키운 유사 장기체인 오가노이드는 미래 인공장기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오가노이드도 아직 장기 자체의 기능을 하기보다는 세포 집합체에 가까운 수준이다. 크기도 2~3㎜ 정도밖에 구현하지 못했다. 인공장기 역할은 하지 못하지만 뇌 심장 등 특정 장기의 기능을 본뜬 것이어서 약물 효능 분석 등에 활용되고 있다. 과학계에선 10년 내 상용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덕호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교수팀은 뇌 오가노이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제이슨 김 연구원은 “줄기세포에는 개인 유전자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에 맞춤형 장기 유사체를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샌타바버라=이우상/볼티모어=남정민 기자 i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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