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 앞두고 전기톱 드는 ‘동서남북의 작가’ 김윤신···“예술은 끝이 없다”

이영경 기자 2024. 3. 1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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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을 앞두고 전기톱 드는
‘동서남북의 작가’ 김윤신
나무에 반해 아르헨티나서 ‘멈춤’
40년 만에 고국서 재조명 받아
한국으로 거쳐 옮기고 첫 개인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참여 작가로
김윤신 작가가 19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는 동서남북의 작가로 남고 싶어요. 동으로 가나 서로 가나, 북으로 가나 남으로 가나, 작업을 하는 데는 매양 같은 마음으로 작업을 했어요.”

김윤신 작가(89)에겐 수식어가 많다. 여성 1세대 조각가,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전기톱을 드는 조각가, 나무의 본질에 천착해온 조각가….

김윤신은 자신이 ‘동서남북의 작가’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1935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남으로 건너와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로 건너갔다. 귀국 후 1984년 머나먼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잠시 ‘머묾’이 될 줄 알았던 여정은 ‘멈춤’이 됐고 40년간 그곳에서 작업에 몰두했다. 지난해 남서울미술관에서 개인전 ‘더하고 나누며, 하나’가 성공적으로 열리며 국내에서 재조명받은 그는 남은 작가로서의 생을 한국에서 보내기 위해 돌아왔다. 다음달 열리는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참여 작가로 선정됐다. 전 지구를 오가며 작업하는 ‘동서남북의 작가’라는 말이 더할 나위 없이 들어맞는다.

다음달 베니스비엔날레 개막을 앞두고 김윤신의 작품세계 전반을 볼 수 있는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린다. 1970년대 제작한 ‘기원쌓기’부터 그의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합이합일 분이분일’ 시리즈, 최근 시도한 ‘회화조각’ 등 51점을 선보인다. 지난해 남서울미술관 전시가 ‘잊혀졌던’ 김윤신의 재발견이었다면, 이번 전시는 한국 상업 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고 연 첫 개인전이자, 40년 만에 한국으로 거처를 옮긴 후 열린 첫 전시다. 김윤신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전시인 셈이다.

“4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멈추게 됐네요. 건강이 유지되는 한까지 좋은 작품을 만들어 세상에 남기고 가고 싶습니다.” 19일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김윤신은 구순을 앞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했다.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2002, Palo Santos wood, 155 x 41 x 39 cm 국제갤러리 제공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1992-1’, 1992, Algarrobo wood, 42 x 47 x 31 cm 국제갤러리 제공
나무에 반해 40년을 남미에 머물다

김윤신의 작품세계는 나무와 분리할 수 없다. 방문차 들렀던 아르헨티나에 40년간 머물게 된 것도 그곳의 단단하고 큰 나무에 반해서였다. 처음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준비하면서 비바람에 쓰러진 가로수를 주워다 길가에서 전기톱으로 잘랐다. 아시아 여성이 무거운 전기톱을 들고 나무를 자르는 모습에 이웃들은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거친 톱질을 통해 나무의 속살을 보여주는 동시에 껍질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의 조각은 나무의 물성에 대한 깊은 탐구에서 비롯한다.

“저는 나무를 굉장히 좋아해요. 나무는 살아 있고 숨을 쉬고 있어요. 재료가 주어지면 며칠을 두고 바라봐요. 나무의 상태가 어떤가, 단단한가 연한가, 껍질이 있나 없나, 어떤 향이 나오는지 살펴요. 완전히 나무와 화합을 했을 때 잘라내기 시작합니다. 작품을 통해 내가 또 하나의 생명으로 잉태된 것을 ‘합과 분’이라 생각하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는 ‘합이합일 분이분일’은 둘이 합하여도 하나가 되고, 둘을 나누어도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작가가 나무와 상호작용하며 작업하는 과정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나무의 본질과 ‘합’을 이룬 뒤, 나무를 자르고 쪼개는 ‘분’의 단계를 거쳐 작품이 탄생한다. 전시에선 남미의 알가로보 나무, 팔로산토 나무 등 단단하고 굵은 목재를 사용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김윤신 작가가 19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김윤신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회화 앞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2019-19’, 2019, Acrylic on recycled wood, 114 x 41 x 27 cm 국제갤러리 제공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다양한 회화 작품들도 있다. 한국 전통 오방색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색상으로 채색된 회화는 그의 조각과 연결되어 있다. 나뭇조각에 물감을 묻혀 찍거나 물감을 칠하고 긁어 질감을 살린 작품들은 기하학적 추상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조각가의 공간감각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좋은 목재를 구하기 힘들자 주변의 나뭇조각들을 모아 붙인 뒤 채색한 ‘회화조각’ 시리즈도 볼 수 있다. 김윤신은 남미의 토테미즘에서 한국 전통 색상, 패턴과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영감을 얻어 나무에 채색하는 시도를 했다. 통나무의 물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들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작품들로, 김윤신은 “내가 어려서부터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삶을 그대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있는 김윤신 작가. 국제갤러리 제공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김윤신 개인전 전시 전경. 국제갤러리 제공
“끝이 없는 우리 삶이 예술”

지난해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린 ‘더하고 나누며, 하나’는 김윤신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김윤신의 첫 국내 국공립미술관 전시로 총 1만8000여명의 관객이 찾았다. 최근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가운데 제일 많은 관객이 찾은 전시였다. 이 전시에 주목한 국제갤러리, 리만머핀 갤러리와 지난해 전속 계약을 체결하게 됐다. 이어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참여 작가로 선정됐다.

하지만 베니스비엔날레에 참여하는 소감은 덤덤하다.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지만 나한테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진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끝까지 만드는 게 중요한 거죠.”

그에게 예술이 무엇인가 물었다.

“예술은요,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끝이 없어요. 끝이 없고 완성이라는 게 없기 때문에 예술이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 삶이 예술이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는 순간에 살아요. 이 순간에 살기 때문에 지금 하나의 순간이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전시는 4월28일까지.


☞ ‘여성 1세대 조각가’와 ‘퀴어예술가’···김윤신·이강승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참가
     https://www.khan.co.kr/culture/art-architecture/article/202402011705001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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