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출산 미루는 100만 '주저세대'… 정책 타깃 삼아야

임영신 기자(yeungim@mk.co.kr) 2024. 3. 1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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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복원
결혼·출산 걸림돌은 경제문제
입시·대졸·취직기간 늘면서
사회진출 늦어 결혼준비 못해
취직 도와줄 AI비서 활용하고
스타트업·中企채용 연결 필요

서울 4년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20대 정 모씨는 2년째 미뤄왔던 졸업장을 지난달에 받았다. 지방대에서 '인서울' 대학으로 갈아타려고 재수한 기간까지 합치면 8년이 걸렸다.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공모전과 인턴십처럼 남들 따라서 스펙을 쌓으며 취업 준비를 했지만 50개 넘는 기업에서 퇴짜를 맞았다. 정씨는 "내가 뭘 잘하는지, 뭘 해서 먹고살 수 있을지부터가 막막해 결혼은 먼 나라 얘기"라고 말했다.

결혼과 출산을 주저하는 20·30대 청년이 최대 100만명에 달한다. 혼자 살겠다거나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혼·출산 거부층'도 있지만, 몇몇 장애물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망설이는 청년도 상당하다. 정부가 한정된 예산과 정책 역량을 결혼·출산을 망설이는 사람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한미연)이 작년 실시한 '결혼·출산에 대한 2030세대 인식 조사'에 따르면 미혼 응답자 1408명 중 57.2%는 '결혼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출산 의향이 있다'는 응답자도 절반이 넘는 53%였다. 반대로 결혼이나 출산을 하지 않겠다는 응답자는 각각 30.3%, 36.3%였다. 결혼과 출산 관련 방해 요인 때문에 미루고 있다는 응답자는 각각 12.6%, 10.7%로 집계됐다. 유혜정 한미연 선임연구위원은 "20·30대 미혼 인구 중 10% 정도는 결혼과 출산을 유보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2020년 기준 20~39세 미혼 인구가 895만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혼·출산을 망설이는 이른바 '주저세대'는 90만~100만명으로 추정된다. 주저세대의 결혼·출산 걸림돌은 경제적 문제와 관련이 깊다. 결혼 방해 요인으로 '현실적 결혼 조건을 맞추기 어렵다'(39.5%, 1~3순위 누적 기준)는 답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소득이 적거나 경제적으로 불안하다'(37.9%) 순이었다. 출산 걸림돌로는 '자녀를 양육할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와 '자녀 교육에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각각 46.4%, 45.7%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유 선임연구위원은 "'혼자 사는 것이 더 행복할 것 같다' '육아에 드는 시간이나 노력을 감당하고 싶지 않다' 같은 이유를 꼽는 거부층과 달리 주저세대는 정책과 제도를 통해 해결 가능한 이유를 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주저세대를 위한 다양한 해법이 있겠지만 사회 진출 시기를 앞당길 대책이 가장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경제활동이 빨라지면 실질소득이 늘고 자산 형성 기간이 길어지면서 결혼·출산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덜 여지가 생기는데, 현재 대부분의 주저세대는 거꾸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학 졸업에 걸리는 평균 기간은 2022년 52개월로 2007년(46개월)보다 6개월 길어졌다. 대학 졸업 후 취업까지도 평균 11개월 걸린다. 반수나 재수를 하는 'N수생'도 대학 입시에서 유행이다. 단순계산하면 N수생을 거쳐 대학을 졸업해 첫 직장을 구하기까지 최소 5~6년이 걸린다. 이미 'AI 에이전트(인공지능 비서)'를 활용해 첫 취업 시기를 앞당기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서울대·고려대를 비롯한 일부 서울 소재 대학은 교과목 추천 AI 비서를 도입했다. AI 비서는 졸업생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희망 전공과 커리어에 맞춰 개인화된 커리큘럼을 짜준다.

구직난을 겪는 청년층과 구인난으로 힘든 유망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을 연결해주자는 의견도 나온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작년 실시한 '2023 청년 구직 현황 및 일자리 인식 조사' 결과, 응답자 64.4%가 '중소기업 취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63.8%는 취업을 희망하는 일자리에 대한 정보 획득이나 활용이 어렵다고 호소했다. 매일경제가 심층 인터뷰한 중소기업 대표들은 통합 공채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중소기업이 모여 공채의 장점을 살린다면 모래알처럼 흩어져 채용에 애를 먹고 있는 지금보다 좋은 인재를 뽑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처우 격차를 메울 수 있도록 내 집 마련 지원 등 다양한 정책 금융상품이 나온다면 중소기업 취업에 대한 선호도도 높아질 수 있다.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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