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銀 임금·실적·인플레 자신감…금리인상 흑역사 “3번의 실패는 없다”
올해 임금 5% 이상 오른 데다
엔저로 기업 실적도 고공행진
2%대 인플레 지속에 자신감
2000년·2006년 금리인상 후
디플레 고착 흑역사 방지 총력
다만 시장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국책 매입을 통한 양적 완화 정책을 지속한다는 것과 급격한 금리인상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과거 2000년과 2006년 금리인상 후 경제가 급속도로 위축됐던 흑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일본은행은 이날 정책 결정을 통해 지난 2016년 2월 도입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의 폐지를 결정했다. 그동안 시중은행이 일본은행에 돈을 맡기는 당좌예금의 경우 -0.1%의 단기 정책금리를 유지했는데, 이를 0~0.1%로 올린 것이다. 일본은행으로서는 2007년 2월 이후 약 17년 만의 금리 인상이다.
또 2016년 9월 중앙은행이 국채를 무제한 매입하면서 국채 시장 금리를 직접 통제하기 위해 도입한 YCC도 이번에 중단하기로 했다. 이는 장기 금리가 일정 기준 이상 올라가지 못하도록 하는 기능을 해 왔지만, 지속적인 국채 매입으로 인해 중앙은행의 부담이 커져 온 측면이 있다. 현재 발행된 국채 잔액의 절반가량을 현재 일본은행이 보유 중이다.
YCC와 관련해 일본은행은 그동안 미세 조정을 해 왔다. 장기금리 지표인 10년 물 국채 금리를 0% 정도로 유지하는 정책을 유지하는 가운데 재작년 12월 금리 변동 폭 상한을 종전 0.25%에서 0.5%로 올렸다. 이어 지난해 7월에는 0.5%에서 1%로 상향 조정했다.
YCC 철폐 이후에도 금리 급등을 막기 위해 일본은행은 일정 규모의 국채 매입은 지속하기로 했다. 다만 현재처럼 장기 금리를 1%에 맞추겠다는 목표를 정하지 않고 단기금리 조작을 주된 정책 수단으로 삼아 적절히 금융정책을 운영하기로 했다.
우에다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의 수익률곡선 제어(YCC)와 마이너스 금리 정책과 같은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은 그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당분간 완화적 금융환경이 계속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ETF와 부동산투자신탁(REIT)의 매입 또한 이번에 중단됐다. 일본은행의 ETF 매입은 지난 2010년 도입됐다. 한때는 연간 6조엔(약 54조원) 규모로 매입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일본은행은 지금까지 도쿄 주식시장 주가지수(TOPIX)의 하락 폭이 2%를 넘었을 때 ETF를 매입하며 일본 증시를 지지하는 버팀목 역할을 해 왔다. REIT의 경우 2022년 6월을 마지막으로 매입을 중단한 상황이라 이미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일본 증시가 최근 급등세를 보이면서 일본은행이 지난해 9월 집계한 보유 ETF의 시가는 60조6955억엔으로 장부가인 37조1160억엔 대비 평가이익이 23조5794억엔에 달한다. 일본 민간연구소인 닛세이기초연구소는 올해 2월 말 기준 일본은행 보유 ETF의 시가가 약 71조엔으로 불어난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일본은행으로서는 주식시장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보유한 ETF의 처분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도 숙제로 안게 됐다.
지난주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가 발표한 춘계 노사협상 1차 집계 결과 임금인상률이 1991년 이후 33년 만의 최고치인 평균 5.2%를 기록했다. 또 조합원 수 300명 미만의 중소기업의 임금 인상도 4.42%로 32년 만에 가장 높았다. 일본은행으로서는 정책 전환의 조건이 충분히 갖추어진 셈이다.
여기에 지난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의 경우 전년 동월 대비 2% 상승을 기록해 22개월 연속 2% 이상 상승을 이어 나갔다. 상승 요인 가운데 절반이 인건비 영향을 받기 쉬운 서비스 가격 상승에 따른 것이다. 물가 상승이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고, 다시 물가에 반영되는 선순환이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탄탄한 기업 실적도 일본은행의 결정에 힘이 됐다. 현재 일본 기업 실적의 주요 원인으로는 가격 인상과 함께 엔저가 꼽힌다. 일본 상장사 1000여 곳의 경우 2023년 회계연도(2023년 4월~2024년 3월) 순이익 전망치는 43조4397억엔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이는 3년 연속 최고치를 이어가는 것이다.
특히 채산성을 보여주는 지표인 매출액 순이익률도 6%로,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두 번째로 높았다. 실적 호조의 가장 큰 요인은 ‘엔저 효과’다. 연초 130엔대에서 시작한 달러당 엔화는 현재 150엔 초반에 머무르고 있다. 엔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수출 기업 순익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탄탄한 기업 실적은 올해 기업들의 ‘화끈한’ 임금인상으로 이어졌다. 일본은행은 올해 임금인상과 6월 예상되는 소비세 환급 등이 이어질 경우 실질임금도 상승세로 돌아서며 소비가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연내 정책금리를 0.25% 수준으로 올린 뒤 내년 경에 0.5%로 추가 인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행이 과거 17년 동안 금리 인상 정책을 해 온 전례가 없기 때문에, 금리 인상은 극도로 신중하게 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일본은행은 과거 금리인상과 관련한 흑역사가 있다. 금융 정상화에 나설 때마다 경기 침체로 이어지며 ‘일본은행의 오판’ ‘경기 악화의 주범’ 등의 비난을 들었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일본은행이 2000년 8월 정책금리를 0.25%로 인상 결정한 뒤 불과 7개월 만인 2001년 3월, 전 세계가 IT 거품 붕괴로 경기가 악화되며 일본 경제 또한 크게 요동쳤다. 이는 일본은행이 처음으로 대규모 양적 금융완화 정책을 시행하는 계기가 됐다.
또 일본은행은 2006년 3월 양적 완화 정책을 중단하고 이어 2006년 7월과 2007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0.25%포인트씩 금리를 올렸다.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며 당시 금리인상은 디플레이션(성장 부진과 물가 하락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을 고착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금리 인상에 따른 엔저 지속 여부도 관심사다. 당장 시장에서는 이번 결정에도 오후 4시 현재 달러당 엔화값이 1엔 이상 떨어지며 150엔대를 돌파했다.
일본이 금리를 인상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RB)가 금리 인하를 검토하는 상황이라 이 경우 ‘엔-캐리 트레이드(낮은 이자의 엔화를 빌려 높은 이자의 달러화에 투자하는 것)’가 청산되면서 달러당 엔화값이 오르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해제 후에도 일정 규모의 국채 매입을 지속하는 등 지속적인 금융완화 의지를 표방했기 때문에 엔저 현상에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분위기다.
엔저 지속은 수출 중심의 일본 기업에는 당분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유가와 원자재 수입 가격 고공행진의 지속으로 소비자물가에는 부정적 영향이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수입 물가 상승은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일본은행이 기대했던 임금과 소비의 선순환 효과가 줄어들 수 있다.
그동안 마이너스 금리 정책의 시행으로 대출금리와 예금금리 또한 하락세를 이어갔다. 예대금리차가 이익의 핵심인 금융기관으로서는 충분한 수준의 이윤을 얻기 힘든 구조를 이어 나갔다. 특히 각종 투자상품의 금리도 떨어지면서 일본 내 보험사와 연기금의 자금운용에도 부담이 커졌다.
다만 대출자에는 이러한 금융정책이 큰 도움이 됐다. 일본 내 주택담보대출의 70%가 현재 변동상품인데 마이너스 금리 정책으로 인해 최대 0.6%포인트가량의 혜택을 본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에 금융 정상화로 인해 변동형 상품뿐 아니라 고정형 상품의 대출금리가 소폭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대출 금리 상승은 기업의 투자 활동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으로 은행에서 마음껏 돈을 가져다 썼던 기업들이 이제는 비용 부담을 고려해 조심스럽게 투자를 진행해 나갈 것이란 예상이다.
또 금융기관 예금이자의 상승도 예상된다. 당장 정책금리에 가까운 수준으로 올리지 않더라도 점진적인 인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인구가 줄고 있는 지방의 경우 지방은행을 중심으로 예금 금리 인상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다만 우에다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이번 정책 결정으로 예금금리나 대출금리가 큰 폭으로 오를 것 같지는 않다”는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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