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바닥일까 더 내려갈까’...최악 치닫는 美 상업용 부동산 시장

민서연 기자 2024. 3. 1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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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업용 부동산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람들의 근무형태가 변화하고 고금리에 이자부담이 커지자, 한때 투자자들이 ‘없어서 못사던’ 오피스들이 골칫덩어리로 전락해 아파트로 변신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조기 파산을 선언한 지 1년, 앞으로 또다시 현실화할지 모르는 미 금융권 위기의 뇌관은 상업용 부동산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상업용 부동산의 가격폭락은 과거에도 있었던 현상이다. 그러나 이번 현상은 일시적 원인이 아닌 근무 방식 등 구조의 변화로 촉발돼 금리 인하가 아닌 이상 쉽게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상업용 부동산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겠다는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생겨나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조차 대응가능한 문제로 여기는 등 전문가들이 느끼는 온도차는 엇갈리는 상황이다.

뉴욕 맨해튼의 건물 전경. /연합뉴스

◇역대급 공실률, 앞으로도 늘어날 전망...아파트로 용도 변경까지

무디스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2019년 말 12.1%였던 미국 오피스 공실률은 지난해 4분기엔 19.6%를 기록했다. 지난 40여년 간 분기별 공실률 최고치였던 19.3%를 갈아치운 수치다. 맨해튼, 실리콘 밸리, 애틀랜타 등 대도시는 20%를 넘어섰다. 업계에서는 올해 말에는 19.8%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22년 기준 오피스 시장가치는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인 2019년보다 6641억달러(약 883조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 침체의 가장 큰 이유는 팬데믹을 거치면서 미국 근로자들의 근무형태가 재택근무 등 다양해진 탓이다. 수요는 줄었는데 1980~1990년대 물밀듯이 지어진 사무실들이 갈 곳을 잃은 것이다. 이로 인해 주요 도시에서는 세수 부족이 나타나고 세금 인상설까지 돌고 있다. 애런 페스킨 샌프란시스코 시의회 의장은 “상업용 부동산 침체에 따른 세수 부족으로 인해 향후 몇 년 동안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의 시 예산 적자를 겪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사람이 떠나 ‘좀비 타워’가 된 오피스들은 가치 보존을 위해 아파트로 변신을 시도 중이다. 미국 부동산 조사기관 렌트카페에 따르면 1월 기준 벌써 5만5300개가 넘는 오피스가 주택으로 용도 변경을 신청했으며, 이는 2021년 같은 시점의 조사 대비 4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이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사무실은 사람들이 통상적인 주거지역으로 생각하지 않는 곳에 위치한 경우가 많고, 열리지 않는 창문 등의 구조적 문제가 있다. CNN비즈니스는 뉴욕의 3%, 덴버의 2% 정도만이 주거용 건물로 개조할 수 있을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라고 역설했다.

◇중소형은행 부채 70%...그럼에도 오피스 투자나선 공룡들

진짜 문제는 아직 가시화되지 않았다. 1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3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CRE) 관련 부채의 만기 도래 규모는 5440억 달러에 달한다. 금리와 공실률 모두 높은 상황에서 은행들은 이를 한꺼번에 상환하거나 훨씬 높은 금리로 재융자해야 하는데, 지난해 SVB의 파산, 시그니처은행의 붕괴를 본 금융권이 대출을 쉽게 내줄리 없다. 대출이 안된다면 상환을 위해 시장에 오피스를 내놓아야 하는데, 월가에서는 자산가치가 대출 규모를 훨씬 밑도는 CRE가 두 자릿수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내년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1조달러 규모의 CRE 대출 가운데 약 70%는 중소·지역은행이 안고 있다. 미국 은행 중 자산규모가 1000억 달러 이상인 은행의 CRE 대출 비중은 12.8% 수준이다. 반면 자산규모가 1000억 달러 미만인 은행은 해당 비중이 35% 수준에 달한다. 부실채권은 이미 급증하는 추세다. 2022년 이후 연준의 긴축 기조가 지속되면서 은행의 CRE 대출 연체율은 이미 상승세를 탔는데, 2022년 3분기 해당 대출의 연체율은 0.64%에서 2023년 3분기 1.07%까지 올랐다.

실제로 올해 1월 NYCB사태가 시장의 경계감을 끌어올렸다. 자산이 1000억달러가 넘는 중형은행인 NYCB가 1월 말 공개한 4분기 실적이 CRE 대출 부실화에 대비한 대규모 대손충당금으로 예상 밖 손실을 기록하면서다. NYCB는 지난 6일 10억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하며 급한 불을 겨우 껐지만 시장에서는 중소은행들의 줄도산과 은행 위기라는 시나리오까지 나왔다.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도 일부 투자 세력은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저점에 도달했다는 시각을 밝혔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와 자산운용사 슈로더는 최근 미국 상업용 부동산에 투자 의향을 내비쳤다. 짐 가먼 골드만삭스 부동산투자부문 글로벌 총괄 겸 파트너는 13일 미국 CRE 시장이 더디게 회복할 것이라면서도 “지금이 다시 매수할 기회”라며 적극적 투자 재개를 밝혔다.

투자업계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데는 금리 인하에 대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긍정적인 신호에도 원인이 있다. 파월 의장은 지난 7일 상원 은행·주택·도시문제위원회 청문회에서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진전이 있다면 그 과정(금리 인하)을 시작할 수 있고, 또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2%로 지속가능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머지 않아(not far from it) 그런 확신을 갖게 될 때 규제 수준을 완화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파월 의장의 말대로 오피스 위기의 주원인 중 하나인 고금리가 해결되면 상업용 부동산 문제에도 청신호가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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