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는 죽었다. 인류세 만세” [오철우의 과학풍경]

한겨레 2024. 3. 19.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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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는 죽었다. 인류세 만세." 지난 5일 과학 저널 '사이언스'의 뉴스에 달린 생뚱맞은 제목이다.

인류세실무그룹(AWG)의 과학자들이 15년 동안의 연구·조사를 바탕으로 지질학계에 인류세를 지구 역사의 지질연대표에 새로운 시대 이름으로 넣자는 제안을 지난해 했는데, 이 제안이 기각됐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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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실무그룹(AWG)이 인류세의 대표 지층으로 선정한 캐나다 크로퍼드 호수. 수심은 깊은 데 견줘 면적이 작아 퇴적층이 잘 보존돼 있다. 하지만 최근 국제층서학위원회 산하 소위원회는 인류세를 지구 지질연대표의 새로운 지질시대로 넣어야 한다는 인류세실무그룹의 제안을 12 대 4의 투표 결과로 기각했다. 사우샘프턴대 제공

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인류세는 죽었다. 인류세 만세.” 지난 5일 과학 저널 ‘사이언스’의 뉴스에 달린 생뚱맞은 제목이다. 인류세실무그룹(AWG)의 과학자들이 15년 동안의 연구·조사를 바탕으로 지질학계에 인류세를 지구 역사의 지질연대표에 새로운 시대 이름으로 넣자는 제안을 지난해 했는데, 이 제안이 기각됐다는 소식이었다.

소식을 맨 처음 전한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인류세 제안은 공식 용어 채택의 첫 관문인 국제층서학위원회(ICS) 산하 소위원회에서 12 대 4의 투표 결과로 기각됐다. ‘사이언스’는 이 소식을 전하면서 기각된 인류세 용어의 생명력을 응원하는 “인류세 만세”라는 제목을 달아 눈길을 끌었다.

인류세는 인간 활동의 영향력이 지구 기후와 지질을 바꿀 정도로 커져 지금의 지질시대를 1만1000년 전 시작한 홀로세 지질시대와 구분해 불러야 한다며 제안된 이름이다. 2000년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 등이 주창한 이래 지구 행성 위기를 압축해 보여주는 말로 널리 확산됐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미세 플라스틱, 화학물질, 방사성 핵종 같은 오염이 위중해지고 지구 기후 시스템이 흔들림을 보여주는 인류세의 증거를 무수히 발견해왔다. 올해 8월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인류세가 공식 용어로 최종 선언되리라는 전망도 많았다.

그런 인류세가 어떤 이유로 기각됐을까? 여러 외신 보도를 보면, 소위원회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진 지질학자들 사이에서는 인류세의 시작점을 1950년대로 정의하는 데 대한 반대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반대표를 던진 얼 엘리스 교수(메릴랜드대학)는 ‘컨버세이션’에 쓴 글에서, 인류세의 증거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 시작을 1만년 전 최초의 농업이나 수백년 전 식민지 정복 시대가 아니라 1950년대로 못박는 것은 너무 협소하고 비과학적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인류세를 새로운 지질의 시대가 아니라 지질학적 사건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기각된 인류세 용어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여러 전문가는 인류세가 지질학 공식 용어로 채택되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의미 있게 중요한 말로 쓰일 것이라고 내다본다. ‘네이처’는 지난 14일 후속 보도에서, 인류세가 인간이 지구 시스템의 일부임을 간명하게 보여주는 훌륭한 용어로 과학계와 사회문화 영역에서 계속 사용되리라는 생태학자들의 전망을 전했다.

인류세 기각 결정은 언론 보도로 알려졌고 아직 공식 발표되지는 않았다. 내부 논란도 남아 있다. 소위원회의 얀 잘라시에비치 의장은 이번 투표가 내부 규정과 절차를 어겨 무효라며 이의 신청을 했다. 인류세실무그룹에 참여했던 과학사학자 나오미 오레스키스는 언론 인터뷰에서 투표가 공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진행됐다고 비판했다.

현재로선 투표 결과가 번복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인류세 제안을 다시 하려면 냉각 기간인 10년이 지난 뒤에나 가능하다. 하지만 기각 이후에 나온 여러 목소리를 보면, 인류세는 지질시대를 가리키건 지질학적 사건을 가리키건 상관없이 지구 위기 시대를 표현하는 생명력 있는 말로 계속 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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