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강정으로 변한 김유정 보는 안재홍·류승룡이 이토록 애틋하다는 건('닭강정')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4. 3. 19.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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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강정’, 뇌빼드 같지만 황당한 상황에 숨겨진 풍자적 세계

[엔터미디어=정덕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의문의 기계에 들어갔던 딸이 닭강정으로 변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닭강정>은 사건의 도입 자체가 황당하다. 아빠 선만(류승룡)이 일하는 공장에 점심으로 닭강정을 사들고 찾아왔다가 거기 놓여 있는 의문의 기계에 들어갔던 민아(김유정)가 버튼을 누르자 닭강정으로 변해버린다. 민아를 짝사랑해온 공장 직원 백중(안재홍)은 이 충격적인 사건을 선만에게 이야기하고 닭강정이 된 민아를 다시 원상태대로 되돌리기 위한 두 사람의 눈물겨운 사투가 벌어진다.

즉 이 상황에는 희비극이 뒤섞여 있다. 사람이 닭강정으로 변했다는 사실은 황당하긴 하지만, 아빠와 짝사랑남에게는 너무나 슬픈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선만과 백중은 민아가 변한 닭강정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혹여나 추울까 혹여나 수분이 마르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닭강정을 보살핀다. 그 장면 역시 액면으로 보이는 상황은 '저게 뭐하는 짓'인가 싶은 과한 닭강정에 대한 애착 때문에 빵빵 터지는 웃음을 주지만, 선만과 백중의 입장으로 들어가보면 가슴 절절한 눈물이 느껴진다. '닭강정'은 바로 이 희극적 상황과 비극적 진실 사이의 간극을 버무려 만들어낸 코미디다.

결국 미스터리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 의문의 기계가 어디서 나타난 것이고 어떤 경로를 거쳐 그 공장에 오게 된 것인가를 추적하는 선만과 백중의 과정이 들어 있다. 사람이 닭강정으로 변하는 황당한 설정을 해결해줄 수 있는 세계관이라면, 누구나 외계인을 상상했을 게다. 맞다. '닭강정'에 등장하는 의문의 기계는 결국 외계인들의 물건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대로 '변신'하게 해주는 기계를 이용해 외계인들은 지구에서 사람 행세를 하며 일종의 여행(?)을 한다. 그런데 인간에 의해 빼앗긴 기계를 찾아 헤매며 수백 년을 지구에서 살아가는 중이다.

이러한 외계인 설정은 그저 이 황당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놓은 개연성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외계인의 시각을 투영함으로써 지구에 살아가는 인간(특히 한국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 어떠한가를 반추하는 목적도 들어있다. 초능력을 갖고 있지만 인간에게 그걸 써서는 안된다는 규칙을 가진 외계인들은 겁만 줘서 그 기계를 되돌려 받으려 하는데, 그때 이들이 이상한 동작으로 겁을 주는 행동들은 병맛이면서도 의미심장하다. 마치 <개그콘서트>에서 봤음직한 그 동작들은 '미사일'을 흉내내고 '핵'을 표현한다. 200년 간 이들이 봐 온 인간들의 파괴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외계인들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다르다는 지점 또한 우리가 아귀다툼을 벌이면서 생존경쟁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만든다. 사람이 닭강정으로 변했다는 '변신' 모티브는 무언가 다른 삶을 희구하는 우리의 욕망과 맞닿아 있다. 민아는 원하는 대로 변한 게 아니지만, 과학자 유인원(유승목) 박사나 그의 조카 유태만(정승길)은 모두 변신하고픈 욕망을 갖고 있다. 유인원 박사는 외계인의 관점으로 보면 이제 고작 유인원 수준인 과학으로 기계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욕망에 눈멀어 있고, 유태만은 노안인 얼굴 때문에 상처받고 잘생긴 동생의 얼굴로 변신하고픈 욕망에 빠져있다.

하지만 외계인들이 가진 유구한 시간개념으로 보면 유인원 박사의 욕망은 고작 애벌레가 되어 기어다니는 수준에 불과하고, 유태만의 욕망은 긴 세월의 관점으로 보면 별 의미도 없는 일이다(실제로 유태만은 나이 들어서도 그 노안 그대로라 오히려 젊어보이게 된다). 이렇게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려는 '욕망'을 마주하고 나면, 선만과 백중이 심지어 닭강정으로 변한 민아를 그토록 애틋해하고 되돌리려 목숨까지 거는 이 모험극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느껴진다. 그건 심지어 인간이 닭강정으로 변화한다 해도 그런 외형이나 형체가 중요한 게 아니고 그것을 향한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닭강정으로 변한 민아와 함께 앉아 그 얼굴이 마르지 않게 기름을 발라주며 여전한 사랑을 표현하는 백중의 모습이나, 그저 닭강정일 수 있는 것이 진정 딸이라 믿기에 소중하게 지키려 하고 눈물을 흘리며 떠나보내주는 선만의 절절한 부성애가 새삼스럽게 보인다. <닭강정>은 최근 신조어인 이른바 '뇌빼드(뇌를 빼고 봐도 되는 드라마)' 같은 황당한 설정들을 가져와 그 안에 담긴 희비극을 교차시켜 웃음과 페이소스를 주는 드라마지만, 거기에는 내가 아닌 다른 이가 되고픈 '변신' 욕망의 헛됨을 닭강정으로 변했어도 여전히 본질을 바라보는 두 사람을 통해 툭툭 건드리는 풍자가 담겼다.

물론 이런 해석은 정답이 아니라 하나의 해답일 뿐이다. 그저 던져 놓은 하나의 낯선 세계를 보고 느끼는 감흥은 저마다 다 다를 것이다. 이병헌 감독이 의도한 것도 어느 하나의 선명한 주제라기보다는 다양한 저마다의 감흥이 더해진 해석들일 테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상상력을 무한대로 펼쳐 내보인 '닭강정'은, 이제 시청자들에게도 마음껏 그 세계에 대해 저마다의 해석을 달아 수다를 떨 수 있는 그런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틀에 박힌 개연성의 강박을 잠시 벗어나서.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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