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지방 건설사에 ‘핀셋 지원’이 필요하다
“건설사 절반이 망한다.”
최근 부동산신탁사 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신탁사는 주로 중소 건설사들과 ‘책임준공형 토지신탁 계약’을 맺는다. 그런데 PF 채무와 공사비 급증으로 건설사들이 시공을 포기하고 있다. 그 여파가 신탁사에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리에선 “대형 및 중견기업 위주로 시장이 완전 재편될 것”이란 얘기도 나왔다. 건설업계가 작금의 위기를 얼마나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위기는 이미 작년부터 시작됐다. 집값이 차갑게 식고 미분양이 늘었다. 곳곳에서 PF대출이 연체됐다. 은행들은 속속 부실 축소 모드로 돌아섰다. 자금 조달 문턱도 높아졌다. 중소 건설사들이 차례로 무너졌다. 고금리 기조는 끝날 줄 모른다. 자잿값과 인건비도 치솟았다. 어느 요소 하나 우호적인 것이 없다. 건설업자들은 “사방팔방이 다 막혔다”고 호소한다.
일각에선 ‘위기가 과장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가 직접 개입할 정도로 심각하진 않고, 국가 전체 경제 시스템 위기로 전이될 가능성도 낮게 보는 것이다. 즉 정부가 금융 당국에 ‘PF 대출금리 완화’ 등을 적극 요청할 단계는 아니란 얘기다.
하지만 지역 건설사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올해 폐업한 건설사는 685곳(종합건설사 79곳·전문건설사 606곳)인데, 대부분 지역 소재 업체다. 4월에는 건설사 외부 감사 보고서가 나온다. 법정관리에 들어갈 곳이 더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 건설사들은 여러 곳이 도미노처럼 ‘물려’ 있다. 한 업체 부도가 또 다른 부도로 쉽게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업계 관행상 건설업체는 전문건설업체에, 전문건설업체가 다시 중소업체에 공사를 각각 나눠 맡긴다.
실제 2010년 광주·전남지역 2·3위 업체(남양건설·금광기업)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적이 있다. 그러자 협력업체들이 부도처리됐다. 6위 업체인 대주건설이 무너지자 1500개 하도급업체에서 일하는 2만명이 임금을 받지 못했다. “그물망처럼 얽혀 있는, 자체 사업하고 있는 자잘한 업체들이 언제 우르르 무너질지 모른다”는 공감대가 건설업자들 사이에 깔려있다.
문제는 지금 위기의 양상이 과거 금융위기 직후와 다르다는 데 있다. 2008년 이후에는 주택 미분양이 심각했다. 부도도 몇몇 대형 건설사들 위주로 났다. 이에 미분양 해소를 위한 ‘민간자금을 활용한 리츠 활성화’ 방안이 나왔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미분양 물건을 환매 조건부로 매입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선 셈이다. 이후 시차를 두고 대출 규제 완화, 세금 감면 등이 뒤따랐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오히려 주거용 오피스텔, 생활형 숙박시설, 지식산업센터 등 비주택 부문에서 미분양 물량이 많다. 특히 비주택 부문 미분양은 정확한 수치 파악도 어렵다. (주택 미분양은 6만3755가구 정도다. 통상 미분양이 10만 가구에 가까워지면 정부가 대책을 검토한다.) 즉 정부에서 매입에 적극 나설 근거가 부족한 상황이다. 솔직히 이를 매입했을 때 언제 돈이 회수될지도 미지수다.
그렇다면 어떻게 얼마만큼 지원해야 할까. 정부는 지역 건설사 중 벼랑 끝에 있는 업체를 선정해 ‘핀셋 지원’에 나서야 한다. 우선 시장 안정화를 위해 지방 건설사에 한해 미분양 물량 일부를 매입하는 조치가 거론된다. 중소 업체들의 자금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다. 수요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미분양 아파트 매입시 양도소득세를 면제해 주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지역 건설사 파산 및 부도 소식을 듣는다. 사고가 다 터지고 나서 ‘사후약방문’식 입법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총선을 앞둔 만큼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공격을 받을 수도 있지만, 꼭 필요한 정책은 시기를 놓치지 않고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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