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팔린 회사채 꿀꺽” 개미가 살리는 미매각 채권
연 6~8%대 금리 매력 부각돼 개인 눈독
채권개미 활약에 주관사도 미매각 부담 줄어
제때 팔리지 못해 재고로 남은 채권을 개인 투자자들이 사들이면서 ‘채권 개미’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건설채, 신종자본증권 등 기관이 담기 어려운 채권도 금리 이점이 부각돼 개인에게 팔리고 있다. 주관사 입장에서는 개인이 믿는 구석으로 떠오른 셈이다.
19일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미매각이 발생했던 한국토지신탁(A-) 회사채는 최근 개인투자자에게 대거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발행 당시 기관투자자에게 팔지 못해 주관사가 떠안은 물량도 거의 소진한 상태다. 전날 기준 남은 물량은 수십억원 정도다.
당시 한국토지신탁은 1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을 진행했는데, 총 38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는 데 그쳤다. 미매각으로 인해 발행금리는 2년물 기준 최상단인 7.021%로 확정됐다.
한국토지신탁 신용등급이 기존 A(부정적)에서 A-(안정적)로 한 단계 강등되자 기관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았다. 그러나 리테일 시장에선 달랐다. 연 7%대 금리 매력이 돋보이면서 주로 고액 자산가들이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지난달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주문을 한 건도 받지 못한 HL D&I한라(BBB+) 회사채도 개인 대상으로 소화되고 있다. HL D&I한라는 1년물 7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수요예측을 진행했는데, 전량 미매각되면서 주관사가 전부 떠안아야 했다.
HL D&I한라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우려와 엮여 기관투자자들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했다. HL D&I한라 회사채의 발행금리는 희망밴드 최상단인 연 8.5%로 확정됐다. 최근 개인투자자가 사들이면서 매각이 거의 마무리됐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18일 기준으로 남은 물량은 수십억원 수준이다.
보통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완판에 실패할 경우, 발행 금리는 희망밴드 최상단에서 결정되고 미매각 물량은 주관사가 떠안는다. 주관사는 기관에 팔지 못한 물량을 일반 법인, 개인 고객 대상으로 재판매한다. 기관투자자들에게 인기가 없어 높아진 금리는 반대로 개인투자자에겐 투자 포인트가 되곤 한다.
한 투자은행 업계 관계자는 “여러 이유로 기관투자자들이 사지 않더라도, 시중 금리 2배 정도의 발행금리가 부각돼 ‘큰 손’ 고객들 대상으로 꾸준히 팔리고 있다”며 “1분기 미매각 난 회사채들은 매각이 거의 끝난 상태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내부 컴플라이언스 규정상 기관 투자자가 담기 어려웠던 신종자본증권도 채권 개미에겐 인기 있는 투자처다. 롯데손해보험 후순위채(6.80%)는 기관투자자에게 팔리지 않았지만, 개인투자자 대상으로 전부 매각됐다. 푸본현대생명 후순위채(6.90%)도 매각 마무리 단계다.
후순위채는 기관이 파산했을 경우, 일반 채권자들의 부채가 모두 청산된 다음에 원리금을 상환받을 수 있는 채권을 말한다. 선순위채보다 상환 순서가 늦어 금리가 높게 책정된다.
그러나 보험사는 고객의 보험금이 가장 우선순위 채권이기에 후순위성 채권을 발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재무구조 특성을 이해하고, 금리 수혜를 누리려는 개인이 보험사 후순위채에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아예 발행 시점부터 개인투자자를 공략하기도 한다. 연 7.30% 금리를 내세운 CJ CGV 신종자본증권이 여기에 해당한다. 신종자본증권이지만 일반 회사채와 상환 순위가 같고, 3개월마다 이자를 지급하는 구조로 만들었다. 당초 기관들로부터 기대했던 자금을 모으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자 개인 수요를 모으기 위해 상환 안전성 보장, 잦은 이자 지급 등을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최근 개인이 회사채 시장에 새로운 판매처로 떠오르면서 주관사들도 부담이 줄었다는 분위기다. 채권 영업 입장에서는 미매각분을 오래 떠안으면 판매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 최악의 경우, 발행사가 위기에 처하면 떠안은 채권 일부는 증권사 손실로 처리될 수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달부터는 AA급 우량채와 비교해 금리 매력이 큰 A급 회사채가 쏟아질 예정이어서 개인 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금리만 보고 투자하기보단 원리금 상환 여부, 대주주 리스크 등을 꼼꼼히 따져 투자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지난 2021년 발행한 태영건설 회사채는 저금리 시대 연 2%대 금리로 불티나게 팔렸지만, 예상치 못한 워크아웃 신청으로 가격이 급락한 상태다. 신종자본증권·후순위채는 재무제표가 나빠진 기업들이 자본 확충을 위해 발행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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