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자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해주는 게 무대감독”[공연을 움직이는 사람들]

이정우 기자 2024. 3. 19.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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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을 움직이는 사람들 - (1) 강일묵 롯데콘서트홀 무대감독
최선의 연주 할수 있게 ‘서비스’
무대 밖에서 음향·조명 등 관리
고가 악기 옮길 땐 무대 위 올라
지휘자 인사 하고 돌아오는데
옆문 열지 않아 진땀 흘리기도
연주자 대기실로 사라져버리면
황급히 객석 불 켜 ‘종료’ 알려
강일묵 롯데콘서트홀 무대감독은 지난 12일 인터뷰에서 “공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무대감독 일은 정말 재미있다”며 “일하면서 슬럼프를 겪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공연이 영화보다 더 많이 팔리는 시대다. ‘2023년 총결산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대중음악·뮤지컬·연극·클래식 등 공연시장 티켓 판매액은 2022년과 비교해 23.5% 늘어난 1조2697억 원으로 역대 최대 수준이었다. 놀라운 것은 지난해 영화계 총매출액인 1조2615억 원을 넘어선 수치란 점이다. 공연이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연주자와 이에 열광하는 관객들에 비해 정작 공연을 진짜 만들어가는 주역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게 사실이다. 이에 무대 바깥에서 묵묵히 일하는 공연계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들어봤다.

“안 되는 건 없도록 한다.”

해병대나 특수부대 각오 같지만, 아니다. 공연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강일묵(39) 롯데콘서트홀 무대감독이 공연마다 되뇌는 각오다. 공연 리허설 일정을 조율하는 것부터 객석의 불을 밝히며 공연이 끝났음을 알리는 것 모두 무대감독의 일이다. 공연 도중 피아노를 옮기고, 공연장의 온도와 습도를 ‘몸이 기억하는 대로’ 맞추며, 커튼콜 때 연주자의 인사 횟수와 타이밍을 조율하는 것도 무대감독이다. 무대감독의 한마디로 공연장의 불은 켜지고 꺼진다.

지난 1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만난 강 감독은 “연주자가 원하는 그림을 최대한 실제 공연에 실현시키는 일을 한다”고 소개했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은 최적의 공연을 펼칠 수 있도록 연주자를 지원하는 데 쏠려 있고, 이는 곧 관객이 최상의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이끄는 힘이 된다. 지난 2012년 뮤지컬 전용공연장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무대감독 일을 시작한 강 감독은 2017년부터 8년째 롯데콘서트홀의 공연을 책임지고 있다.

강일묵 롯데콘서트홀 무대감독이 모니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무대감독’이란 명칭만 보면 기술자에 가까울 것 같지만, 강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무대감독은 서비스직이에요.” 강 감독은 “관객뿐 아니라 연주자도 공연장 입장에선 고객”이라며 “그들이 최선의 연주를 들려줄 수 있도록 편안함을 제공하는 게 우리의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주자가 원하는 건 최대한 수용하려고 한다”며 “물리적으로 안 되는 것 빼고는 다 되게끔 만드는 게 내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무대감독이 ‘디렉터’가 아닌 ‘스테이지 매니저’(SM)라고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대감독은 보통 무대 바깥에 위치한 SM 데스크에서 공연 내내 모니터로 관객석과 무대를 세심히 살핀다. 조명이 꺼지는 경우를 대비해 일반 화면 외에 적외선 화면까지 비치돼 있다. 강 감독은 총 4개의 화면을 공연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뚫어지게 보면서 음향과 조명, 그리고 관객석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사항을 알린다. 롯데콘서트홀엔 총 4명의 무대감독이 있고, 공연마다 2명의 무대감독이 공연장 좌우에서 일한다.

관객의 눈 바깥에서 일하는 무대감독이 무대 위에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 바로 악기를 옮길 때다. 특히 1부에 피아노 협연이 있는 경우 앞선 곡의 연주가 끝난 후, 곧바로 피아노를 옮기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보조 인력에게 맡기지 않고, 무대감독이 직접 악기를 옮기는 이유가 궁금했다. 강 감독은 “악기가 고가라서 그렇다”며 “특히 연주자 본인의 악기라면 무대감독이나 연주자가 원하는 전문 인력이 옮기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쉽게 옮기기 힘든 거대한 타악기들도 골치 아픈 숙제다. 강 감독은 “1부와 2부 사이 인터미션에 악기를 옮기기가 불가능한 경우엔 부득이 1부 공연 무대에 2부에 쓰일 악기를 미리 올려두는 경우가 있다”며 “싫어하는 지휘자도 많지만, 물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본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이 되면 무대감독의 영향력이 극대화된다. 커튼콜이란 쉽게 말해 연주를 마친 연주자가 무대 밖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시간이다. 커튼콜 때 연주자가 무대에 언제 다시 입장할지는 무대감독의 판단에 크게 좌우된다. 박수 소리가 끊기기 전에 인사를 하게끔 연주자의 입·퇴장을 유도하는 게 핵심이다.

돌발 상황이 비교적 적은 클래식 공연에서도 커튼콜은 무대감독이 한껏 집중력을 높이는 순간이다. 연주자가 정해진 앙코르를 하지 않거나 더 많이 하는 경우 모두 무대감독이 현장을 조율한다. “연주자 더 이상 안 나갑니다”나 “한 번 더 나갑니다” 등으로 음향·조명 감독과 객석 매니저에게 알린다. 박수가 계속 나오고 있음에도 연주자가 앙코르를 더 이상 하지 않는 경우도 물론 있다. 이 경우엔 무대감독이 오케스트라 악장이나 제2바이올린 수석에게 신호를 줘서 오케스트라가 자리를 뜨도록 유도한다.

연주자가 돌발적으로 대기실로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클래식 공연의 경우 연주자를 강제로 붙잡을 수는 없단다. 이 경우엔 무대감독이 빠르게 판단을 내린다. 객석 분위기는 아직 뜨거운데 공연장 옆문이 닫히고, 황급히 객석 불이 켜지는 경우가 이때다. “오늘 공연은 종 쳤다고 알리는 거죠.”

강 감독이 커튼콜 때 가장 아찔했던 경험은 따로 있다. 해외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돌아오는데, 강 감독이 옆문을 열어주지 않은 것. 나가는 문을 못 찾은 지휘자는 결국 다시 무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단원들도, 관객들도 웃었대요. 단 몇 초의 시간이었는데, 어찌나 식은땀이 나던지… 사고가 없으면 본전인 거예요.”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 공통질문

―무대감독이란 무엇인가.

“무대감독은 보이지 않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에요. 연주자나 배우가 무대 위에서 감동을 준다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에게 감동을 선사하죠. 그리고 그 감동이 관객들에게 전해진다고 생각해요.”

―무대감독의 필수 덕목은.

“경청이 가장 중요해요. 상상력도 필요하죠. 연주자들의 의견을 잘 들어야 하고, 그들의 그림을 최대한 실현시킬 수 있도록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니까요.”

―가장 뿌듯한 순간은.

“연주자가 당신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서 오늘 공연이 잘됐다고 말해 줄 때요. 그게 무대감독으로서 저의 가장 큰 미션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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