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잘 살고 싶어졌습니다 [똑똑! 한국사회]
손자영 | 자립준비청년
8년 전, 나는 보육원에서 자립 뒤 처음 들어간 회사를 그만두었다.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 사라지면 경제적으로 어려울 것을 알았기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자영씨 같은 환경이면 대학 진학보다는 그냥 계속 회사 다니는 게 맞아요.” 상사의 조언에도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고 나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도, 주변에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첫 입시 도전은 완전히 실패했다. 혼자서 알아보고 지원하기에는 수시 전형은 복잡했고, 준비도 부족했다. 이후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입시 공부와 전형 준비로 꽉 채운 1년을 보낸 뒤에 어렵게 대학에 갈 수 있었다. 행복할 것 같은 대학 생활도 잠시, 등록금을 지원받아도 학교를 계속 다니려면 생활비를 벌어야만 했다. 내가 공부해도 되는 건지, 잘한 선택인지 생각하며 상사가 내게 해준 말을 곱씹기도 했다.
“자영아, 너도 이 장학금 지원해봐.” 먼저 대학에 간 친한 언니가 한 장학재단의 장학생 모집 공고를 보내주었다. 간절했던 만큼 자기소개서를 열심히 작성하고, 밤새워 면접을 준비했다. 지난 시간을 보상받는 것인지 감사하게도 장학생으로 뽑혔다. 합격한 장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인 그날, 나는 처음으로 다른 곳에서 자란 다양한 자립준비청년들을 만났다. 우리는 금방 가까워졌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고, 홀로 자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공통점 덕분이었다. 자신의 환경을 애써 숨기려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밤새 나누었다. 이야기는 실타래처럼 이어졌다. 멋지게 살아가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건강한 자극을 받기도 했다.
3년간 받았던 장학금은 대학 생활에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식비를 줄이지 않고도 새 학기 전공 서적을 살 수 있었다. 평소에 듣고 싶었던 인문학 강연을 듣거나 영어 학원에 다닐 수도 있었다. 그때의 다양한 시도들은 경험으로 쌓였고, 딱 그만큼 내 세계는 넓어졌다. 내가 구축한 세상이 넓어질수록 나는 더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의 시작은 작은 연결이었다. 친한 언니가 장학금을 지원해보라고 알려주었던 우연한 연결, 장학금을 계기로 만난 또 다른 자립준비청년들과의 편안한 연결들 말이다.
연결은 관계로 이어졌다. 같은 처지에 놓인 청년들과 서로 안부를 묻고, 비슷한 고민을 나누고, 각자의 자립 노하우를 공유했다. 관계를 맺을수록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런 관계 속에 둘러싸여 있다면 ‘나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도 생겼다.
자립한 지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자립준비청년들 간의 연대 활동을 하고 있다. 작은 연결과 관계의 중요성을 여전히 느끼기 때문이다. ‘열여덟 어른’ 캠페인 활동의 하나인 팟캐스트 ‘열여덟 어른이 살아간다’에 자립준비청년을 초청해 이야기를 듣는 이유다. 벌써 100회가 넘었다. 나와 같은 이들이 마이크 앞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온전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좋다. 우리의 당당함에 위안과 용기를 얻은 또 다른 이들을 만나면 반가움은 배가된다. 작은 연결에서 시작된 우리들의 관계가 이제는 서로의 안위를 살필 수 있는 존재들이 되어간다는 점도 좋다. 어떻게 자신을 돌볼 수 있는지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주는 정보도 필요하고 “요즘은 어때?” 하고 자신을 돌봐야 할 ‘때’를 알려주는 사람도 곁에 있어야 한다.
언젠가 ‘잘 산다’는 문장 속 각각의 단어의 뜻을 살펴본 적이 있다. ‘잘’은 ‘아주 만족스럽게’, ‘산다’에는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뜻 말고도 ‘본래 가지고 있던 색깔이나 특징 따위가 그대로 있거나 뚜렷이 나타난다’는 뜻도 있었다. 어쩌면 잘 산다는 것은 관계 속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발견해가면서 나답게 사는 것은 아닐까? 나의 세계를 넓혀준 연결과 관계 속 사람들 덕분에 앞으로도 나는 더 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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