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양파 생육부진 심각…“노력·비용 쏟았지만 허사”

최상일 기자 2024. 3. 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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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충남 부여 등 이상기후 피해 현장가보니
수박 착과·비대 불량·당도 저하
양파 구 형성 안되고 병 발생도
날씨 탓 생산비 더 들어갔지만
수확량 크게 줄어 농가 이중고
“재해보험 현실맞게 개선해야”
일조량 부족 여파로 상품성이 떨어져 출하를 포기한 수박(왼쪽)과 구가 녹아버린 양파(오른쪽).

일조량 부족 등 이상기후로 농작물 피해가 시간이 갈수록 확산하는 모양새다.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피해 조사에 들어가면서 숨겨졌던 피해까지 속속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예상보다 피해가 더 심각하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경남 함안군에 따르면 11월 수박 모종을 심어 이듬해 4월말에 수확하는 지역 내 촉성재배(봄 수확) 850농가(592㏊) 대부분에서 생산량이 줄어드는 피해가 확인됐다.

661㎡(200평) 규모 비닐하우스 1개동에서 무게 기준으로 보통 2400㎏가량의 수박이 생산되지만, 올해는 절반 수준인 1320㎏ 정도만 수확할 수 있을 것으로 군은 추정했다. 더욱이 현재 수박 1개 무게가 평년 평균 4∼5㎏에서 올해는 절반에 그치면서 상품성도 떨어진 탓에 전체 수박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수박농가 강연기씨(60·대산면)는 “철저히 관리했지만 지역 내 대부분 농가가 생육 부진이 심각해 상황이 아주 좋지 않다”고 전했다. 이현도씨(52·대산면)는 “수박 개수도 적고 겨우 열린 열매도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작아 출하가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날씨 여건이 좋지 않아 방제에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을 쏟았지만 허사였다”고 탄식했다.

충남 부여에서도 수박 착과와 비대 불량, 당도 저하 같은 피해가 속속 확인됐다. 수박이 멜론 크기 정도밖에 안되는 데다 당도도 10브릭스(Brix)도 안 나오는 맹탕이어서 아예 판매가 불가능한 것들이 허다하다.

소진담 부여농협 조합장은 “부여읍 전체 수박 비닐하우스 2500여동 가운데 40∼50%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김관식씨(64·저석리)는 “이 상태라면 수박을 비품으로 판매해야 하는데, 정상 가격의 절반도 받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시설작물뿐이 아니다. 노지채소 피해도 시작됐다. 수확을 두달여 앞둔 중만생종 양파에서 무름병·노균병 등이 발생한 것이다. 올겨울 비 오는 날이 많아 과습 상태가 된 데다 일조량 부족, 일시적 한파까지 더해져 피해가 커졌다.

특히 전북지역 피해가 심하다. 완주 등에서는 양파 구가 제대로 형성되기도 전에 녹아버리는 피해가 나타나기도 했다. 전북농협본부(본부장 김영일)에 따르면 12일까지 전북도가 접수한 양파 농작물재해보험 사고 접수 면적은 231ha로 도 전체 재배면적의 15%에 달한다. 전북도의 양파 재해보험 가입률이 60%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실제 피해규모는 훨씬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홍귀남 완주 화산농협 전무는 “3월초 지역 양파농가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해보니 전체면적 가운데 약 30%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는 더 늘어 최대 50%에 이를 것으로 본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문제는 비정상적인 날씨 탓에 비용은 더 들어갔는데 수확량 감소로 생산량은 오히려 줄어 농가들이 이중고를 겪는다는 점이다.

이동한 수박공선회 부여군연합회장은 “해가 안 뜨고 비가 자꾸 오니 비닐하우스 안의 습도를 낮추기 위해 농가들이 전기온풍기를 엄청 가동해 전기료도 크게 증가했다”며 “비용은 비용대로 늘었는데 수박을 제값 받고 팔 수 없게 생겼으니 손해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상황을 전했다.

완주의 한 양파농가는 “피해가 생기더라도 수확할 때까지 인건비는 똑같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피해규모가 40%를 넘으면 농가는 생산비도 못 건지는 상황에 몰리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장에서는 이참에 농작물재해보험 보상 기준을 현실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농작물재해보험(원예시설) 약관에 따르면 일조량 부족은 ‘기타 자연재해(태풍·호우·가뭄 등에 준하는 자연현상으로 발생하는 피해)’에 해당하는데, 이 경우 농작물은 피해율이 70% 이상이면서 전체 작물의 재배를 포기하는 경우에만 보험 적용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의 무게가 적게 나가거나 당도가 떨어지는 등의 ‘품질 저하’ 피해는 보상 대상이 아니다.

송병우 함안 대산농협 조합장은 “갈수록 기상이변이 잦아지고 심화하는 상황에서 농가들의 경영안전망인 재해보험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면서 “이런 현실을 반영해 미보상 비율 기준을 완화하고 일조량 부족 같은 기후변화에 따른 생장 지연 피해도 인정해주는 등 농가들의 피해를 실질적으로 구제하는 방향으로 농작물재해보험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자체에서도 피해 복구를 위한 자체 지원에 나서는 한편 정부에 농작물재해보험 개편을 건의했다.

경남도는 수정·착과 불량, 곰팡이병 등으로 피해를 본 창원·진주·의령·함안·창녕 등 5개 시·군의 시설 수박·멜론 재배 955농가를 대상으로 16억원을 투입해 영양제 구입비 등을 지원한다. 또 경남도 농어촌진흥기금 융자 상환기간을 최대 1년까지 연장하고 이자를 감면해준다.

아울러 농작물재해보험 보상 항목에 없는 병해충과 일조량 부족으로 입은 피해를 자연재해로 인정하고 농업재해복구 지원 대상에 포함할 것을 농식품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김인수 경남도 농정국장은 “일조량 부족도 자연재해로 인정할 것을 정부에 건의하는 등 농가경영 안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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