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만든 낯선 행성으로의 초대”…전원길, ‘풍경의 법칙’展 [전시리뷰]
세상에 마지막 남은 공간과 그곳의 색은 어떠한 모습일까. 지난 40년 동안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작업을 이어 온 전원길 작가는 고향 수원에서 20년 만에 ‘풍경의 법칙’ 전시회를 열며 세상의 마지막 남은 공간이 펼쳐낸 또 다른 세계의 탄생을 그려냈다.
예술공간 아름 개관 2주년을 맞이해 지난 9일 개막한 전시에서는 작가가 2021년 완성한 ‘풍경’ 시리즈와 2022~2024년 사이 완성한 ‘풍경의 법칙’이란 주제의 신작 등 총 50여 점을 지하 공간(실험공간 UZ)과 지상 공간(아름) 각기 다른 두 개의 층에서 만나볼 수 있다.
작가의 작품은 풍경의 ‘색’에서 출발해 ‘색’으로 완성된다. 1990년대 초 인간의 존재 형식을 회화 방식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시작한 작가는 1990년대 말 영국 유학 시절 주변 사물의 색에 주목하게 됐다. 그에게 풍경이자 배경, 자연과 색은 무언가를 담아내는 데 사용되는 도구나 수단이 아닌 그 자체가 구현의 대상이다. 작가는 “가만히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풍경의 색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고 말한다.
짙고 깊은 어두운 밤을 지나 날이 밝아오기 직전의 여명. 작가는 ‘풍경’(2021-3) 작품을 통해 어둠에 빛이 살짝 들어온 어슴푸레한 그 순간을 담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고요하고 적막한 어둠의 순간에 역설적이게도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이 사라지고 태초의 풍경이 드러난다. 작가는 그 속에 펼쳐진 낯선 공간 안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작가는 평면 속에 입체감을 부여해 공간을 만들고 세우고 무언가를 올려 놓는다. 필름처럼 펼쳐지는 그라데이션은 배경 안에 공간을 만들지만 주변으로 벗어나면 공간의 깊이는 사라지고 원래의 평면 상태로 돌아간다. 작가는 “물체가 있어야 공간을 실감하듯 평면 속 공간을 만들고 연결하고 무언가를 세우는 건 자연 속에서 움직이며 작업하는 것과 같다”며 “내 안의 자연성과 실재하는 자연을 어떻게 만나게 하고, 그 둘 사이의 통로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를 고민해왔다”고 말한다.
지하의 공간이 그 안의 내면의 풍경 색을 표현한 것이라면 2층의 공간에선 마른 나뭇잎, 빨간 고추, 썩은 나무 토막, 달개비꽃, 마른 억새 이파리, 가을을 지나 겨울이 돼 완전히 말라 부스러기 직전의 단풍 등 실재하는 존재에서 영감을 받은 외부의 풍경 색을 표현했다.
‘푸른 아기 새’(2024) 등 신작에서 작가는 세상의 마지막 공간의 모습을 상상했다. 배경, 즉 풍경에서 출발한 색은 얇은 색과 명암의 표현으로 입체적인 공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색과 명도의 그라데이션으로 켜켜이 쌓인 층의 색 띠를 그려내며 하나의 공간을 탄생 시켰다. 이는 자연에서 튀어나온 빛의 한 조각일 수도, 흘러가는 시간을 따로 떼낸 조각일 수도 있다.
‘백색 풍경’(2024) 작품에선 마지막 빛이 횃대의 끝자락에 달린 횃불로 남아있고, ‘마지막 공간’(2024) 작품에선 시간이 만든 공간에서 탄생한 어떠한 존재가 자신이 탄생한 곳을 바라봄과 동시에 소멸하는 탄생과 소멸의 순환을 드러냈다.
작가는 “색이 만들어 준 공간에 들어가 그림 속을 거닐며 자기 안의 이야기를 경험해보라”고 말한다. 기암괴석 등 동양의 산수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풍경 속 풍경’(2024)이 그러하다. 자연이, 풍경이 만든 낯선 외계 행성에 들어가면 그 속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나무와 바위가 있다.
사물에서 색을 떼어내고, 빛을 분리시키고, 그것을 다시 색과 명암, 빛과 형상을 따로따로 조합하여 풍경을 재조립한다. 눈에 보이는 자연을 해체하여 다시 화면 속에 그 요소들을 집어 넣는다. 그렇게 자연의 세계와 다른 형식으로 변주된 그만의 풍경이 탄생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풍경이 만들어낸 낯선 공간. 작가는 “색이 이끄는 대로 그 뜻을 실현하는 회화 작업과 이에 영감을 주는 자연 속 야외에서의 작업 사이 상호 연계의 실험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22일까지.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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