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당금 75% 늘린 증권사 나왔다…돈 벌어다 줬던 부동산 사업, 불효자 전락
채권 총액 소폭 늘었는데 충당금은 대폭 늘어
증권사의 효자 사업이었던 부동산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사실이 대손충당금 적립으로 확인됐다. 증권사가 자금을 댄 부동산 사업장 중 상당수가 분양을 진행하지 못해 원금 회수 가능성이 불투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동산 투자 부문도 코로나19 여파로 건물 공실률이 높아지면서 수익률이 악화하고 있다.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전날까지 사업보고서를 공시한 주요 금융투자업자(다올투자증권·메리츠금융지주·미래에셋증권·NH투자증권·SK증권)의 대손충당금은 2022년 7919억원에서 2023년 1조1695억원으로 47% 증가했다.
대손충당금이란 손실을 대비해 적립하는 자금으로, 회사가 재정적 안정성을 위해 채권 중 회수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을 따로 쌓아두는 것이다. 대손충당금은 비용으로 처리돼 기업의 실적을 깎아 먹는다.
대손충당금의 적립 기준이 되는 건 채권 총액인데, 5개 회사의 채권 총액은 같은 기간 104조8947억원에서 120조9364억원으로 16% 늘었다. 채권 총액 증가 폭보다 대손충당금이 더 크게 늘어났다는 건, 대출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다.
회사별로 보면 미래에셋증권은 채권 총액이 27%(60조2721억→76조6799억원) 증가할 때 대손충당금은 75%(1612억→2822억원) 불었다. 미래에셋증권은 주요 증권사 중 대손충당금 증가율이 가장 높다.
메리츠금융지주는 2022년만 해도 1961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쌓았는데 지난해 이 금액을 3023억원으로 늘렸다. 대손충당금의 기초가 되는 채권 총액은 비슷했다. 2022년 메리츠금융지주의 대출채권과 미수금 등을 포함한 채권 총액은 16조3237억원이었고, 지난해엔 16조8790억원이었다.
상황은 NH투자증권 역시 마찬가지다. NH투자증권의 채권 총액은 2022년 21조6944억원에서 2023년 21조5544억원으로 오히려 줄었는데, 대손충당금은 2514억원에서 3259억원으로 늘어났다.
NH투자증권은 대손충당금뿐만 아니라 대손준비금도 더 쌓았다. 대손준비금은 예비 대손충당금으로 금융당국이 요구하는 대손충당금 적립액에 미달하는 만큼을 추가로 쌓아두는 계정이다.
다올투자증권도 채권 총액은 4조5015억원에서 4조2885억원으로 감소했는데, 대손충당금은 1409억원에서 2013억원으로 증가했다. SK증권도 2022년 채권 총액(1조3028억원)에서 3.2%(421억원)만 쌓았던 대손충당금을 지난해엔 채권 총액(1조5345억원)의 3.7%인 576억원으로 잡았다.
증권사가 취급했다가 지난해 이후 문제가 되고 있는 부동산 금융은 브릿지론이다. 브릿지론은 시행사가 토지를 매입할 때 금융기관이 내주는 대출이다. 시행사는 자기자본 여력이 부족한 만큼, 사업성이 없는 것으로 나오면 토지 매입 대금은 대부분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진다.
브릿지론은 사업의 초기 단계에 집행되는 대출이라 아파트가 건설돼 분양으로 이어지기까지 위험이 커 일반 대출보다 금리가 높다. 과거 기준금리가 1%대이던 시절에도 브릿지론 금리는 10% 안팎이었다. 금감원이 지난해부터 지속해서 충당금을 보수적으로 쌓으라고 권고한 배경이다.
현재까지 사업보고서를 공시한 증권사의 대손충당금은 약과라는 반응도 나온다. 이달 안에 대형 증권사들의 사업보고서가 공개되는데, 이들 증권사의 대손충당금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뜻에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한국투자증권은 대손 비용으로 7000억원을 잡았다”며 “그만큼 부동산 이슈에 보수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부동산 사업장에 빌려준 자금만이 문제는 아닌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로 재택 근무가 확산한 데다 금리가 오르면서 증권사들은 투자한 부동산 자산에서도 손해를 보고 있다.
메리츠금융지주의 2022년 투자부동산 손상차손은 39억원이었으나, 지난해엔 이보다 18배 많은 725억원이었다. 다올투자증권 역시 같은 기간 투자부동산 평가손실이 37억원에서 140억원으로 증가했다. 평가손실은 추후에 해당 자산의 가치가 오를 가능성이 있지만, 손상차손은 그 여지가 적어 비용으로 처리하는 계정과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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