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준의 마음PT] 마음이 힘들 때 생각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기록

함영준·마음건강 길(mindgil.com) 대표 2024. 3. 19.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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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힘들 때 빅터 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 기록을 떠올려본다.

유대인이자 오스트리아 정신신경과 의사였던 그는 2차세계대전중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체험한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 전세계에서 지금까지도 팔리는 베스트셀러를 만들었으며, 이후 ‘의미치료(Logotheraphy)’란 정신치료법을 개발, 많은 우울증・신경증 환자를 치료했다.

가장 인상적인 내용 중 하나는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는 엄혹한 상황에서, 이와 벼룩이 들끓고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자야하는 더럽고 좁은 수용소안에서도, 쿨쿨 숙면을 취하는 모습들이었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도 적응할 수 있는 동물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안락한 방, 푹신한 침대에 누워서도 수면제에 의존해야 겨우 잠을 들 수 있는 지금 상황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은 어떤 상황에도 만족을 모르는 동물인가.

아우슈비츠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50~60년전 단칸방에서 7~8명 가족이 바로 눕지 못하고 옆으로 누워 ‘칼잠’을 자야 했던 우리네 옛 시절에도 불면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인간의 생존력은 예측불허다. 수용소에서 하루 빵 한쪽도 못먹어 몸이 해골에 가죽과 넝마를 씌워놓은 몰골이 됐는데도, 식기를 변기통으로도 사용해야하는 그런 비위생적 환경에서도, 의학적 관점으로 보면 영양실조, 면역력 약화, 세균 온상 천지인데도 흔한 감기나 상처가 곪는 일조차 드물었다. 유기체의 생존 본능과 살겠다는 의지가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게 만든 것인가. <사진 1참조>

아우슈비츠 수용소 수감자들. 영양실조에 형편없는 환경속이지만 얼굴 표정과 눈매에는 살아남겠다는 의지가 강렬하다.

수감자들은 영하 20~30도 하에서 동상으로 발이 퉁퉁 부어 신발을 신을 수 없어 맨발로 걸어 다니며 중노동을 했다. 그들은 행렬 앞뒤와 양옆이 아닌, 대오 안쪽에서 걸어갈 때 ‘천국’을 느꼈다. 감시병의 구타와 한파로부터 막아주고 서로 밀착해 체온을 나누는데서 온기와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쩌다 감시병의 눈초리를 피해 보이는 푸른 하늘과 태양, 노을이 지는 석양, 설원(雪原), 그 추위와 눈속에서 꿋꿋하게 서있는 나무와 숲의 모습에서 위안을 얻었다. 잠깐 쉬는 시간에 어렸을 적 가족들과 정겨웠던 광경, 부모님의 사랑, 놀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마치 마약을 먹은 것처럼 생의 환희와 기쁨을 느끼곤 했다.

이렇게 생각하고 버텨내며 살아간 사람들은 가스실에 강제로 끌려가지 않는 한, 지옥 같은 환경에서도 생존해 나갔다. 그러나 견디지 못하고,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지 못해 낙담하거나 체념한 사람들은 결국 에너지가 고갈돼 병에 걸리거나 가스실로 가 생을 마감했다.

# 수용소 내 사람들도 천차만별이었다. 자기가 살기 위해 독일군에 붙어 동족 유대인에게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자가 있었지만, 비참한 환경에서도 동료를 위로하고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누어 주는 ‘천사’도 존재했다.

인간은 참으로 어떻게 규정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존재다. 가해자인 독일군 중에서 거의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디스트들도 있었지만 어느 수용소장은 몰래 사비를 털어 수감자들에게 약을 사주었다.

압권은 ‘스타인호프의 도살자’로 불린 나치 의사 ‘J박사’였다. 빅터 프랭클이 일생 만나본 사람 중 가장 악마적인 사람이었는데 종전 후 우연히 그의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러시아군에 붙잡혀 함께 전범수용소에 있었던 사람의 목격담이다.

“방광암으로 마흔살쯤 죽었지요. 그는 선생님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답니다. 모든 사람에게 위안을 주고….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적 차원에 도달해서 생을 마감했죠.…”

어떻게 그가 천사 같은 사람으로 변신했는지 빅터 프랭클도 모른다. 다만 인간은 누구나 선과 악의 성정을 다 갖고 있으며, 그것들이 어떤 계기와 상황에 따라 두드러지게 발현(發顯)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 사람의 경우는 어쩌면 죄책감이 그의 내면에 억눌려온 선성을 이끌게 했고, 그의 암으로 인한 죽음은 어쩌면 속죄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추리를 가능케 한다.

2차대전 중 나치 독일이 폴란드에 세운 아우슈비츠 수용소 전경. 여기서 5년 동안 유대인 100만명을 포함 러시아인・동유럽인 등 총 300여만명이 처형됐다. /셔터스톡

# 하여튼 인생 최대의 시련을 경험한 빅터 프랭클은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전후 평화와 유복한 삶 속에서 오히려 삶의 의미를 못 잡고 힘들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생의 의미를 주려고 애썼고 큰 성과를 거뒀다.

그는 니체의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는 말을 인용하며 자신 앞에 불행한 상황에 집중하지 말고,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아 견뎌내고 극복하라고 역설했다.

그가 치료한 1950-60년대 서구 중상층 삶은 그로부터 50~60년이 지나 지금의 한국 중상층 삶과 매우 비슷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물질적 풍요속에서 가치관 혼란, 가족 해체, 욕망, 좌절, 허무 등으로 매우 힘들어한다.

그런 차원에서 십수년전 내가 겪은 우울증은 행운이자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문자 그대로 ‘실존적(實存的) 위기’에 처해서야 비로소 ▲나는 누구이고 ▲왜 살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생의 기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에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절박하지는 않았다.

지금 내가 해답을 찾은 것은 아니다. 어쩌면 영원히 찾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이란 길에서 제대로 방향을 찾아간다는 느낌과 깨달음, 안도감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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