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호주 ‘6년간 닫혔던 문’ 다시 열리나
중국의 외교 사령탑 왕이 외교부장(장관)이 7년 만에 호주를 방문해 통상·외교 현안을 논의한다. 중국 외교부장을 포함한 중국 최고위급 인사의 호주 방문은 2017년 이후 처음이다. 2018년 반중(反中) 성향인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집권 이후 안보와 통상 문제로 으르렁대던 두 나라의 해빙을 상징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왕이의 이번 호주 방문을 계기로 중국은 호주산 와인에 대한 보복 관세를 철폐하는 등 호주에 화해 제스처도 내밀 전망이다. 중국은 호주의 명실상부한 최대 교역국이고, 중국 입장에서도 호주는 교역액 8위 국가(지난해 기준·중국 해관총서)다. 다만 양국은 안보·인권 문제에서 의견 차이가 크기 때문에 온전한 관계 정상화는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와 호주 공영 ABC방송 등에 따르면, 17일 출국한 왕이는 18일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크리스토퍼 럭슨 뉴질랜드 총리와 윈스턴 피터스 외교장관과 만났다. 이후 뉴질랜드를 떠나 20~21일 호주에 머물 예정이다.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왕이의 이번 호주 방문은 중국과 호주 관계의 중대하고 새로운 장을 알리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했다. ABC방송도 중국 고위급 인사의 7년 만의 호주 방문을 강조했다.
왕이는 20일 호주 캔버라에서 페니 웡 호주 외교장관과 만날 예정이다. 중국 당 기관지 해방일보 산하 인터넷 매체 상관이 “왕이의 호주 방문 다음에는 양국의 총리급 회담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했다. 고위급 인사들의 회동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중국이 호주산 와인에 대한 고율 관세를 취소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이 지속적으로 동맹을 규합해 중국 견제에 나서는 상황에서 중국이 호주와의 외교·경제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취지다. 앞서 중국은 2021년 3월부터 호주산 와인에 대해 최대 218%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해왔다.
중국과 호주는 한때 오랜 우방이었다. 호주는 미·중 수교보다 7년 빠른 1972년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했다. 막대한 철광석, 석탄 등 자원을 보유한 호주는 중국에 광산 개발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등 활발한 교류에 나섰다. 덩샤오핑 집권기 들어 시장 개방에 나선 중국과, 세계 최대의 수요처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겠다는 호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양국의 교역 규모는 날로 커졌다. 왕이가 앞서 호주를 방문했던 2017년 2월에도 이런 분위기는 유지됐다. 당시에도 왕이는 외교부장으로서 줄리 비숍 당시 호주 외교장관과 만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에 맞서 양국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왕이는 2022년 12월 친강에게 자리를 물려줬다가 친강 실각으로 지난해 7월 외교부장으로 복귀했다.
끈끈했던 양국 관계가 틀어진 것은 2018년 8월 반중 성향인 모리슨이 호주 총리로 집권하면서다. 호주 정부가 코로나 발원지로 지목된 중국에 대한 역학조사를 요구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 압박 정책에 동참하면서 중국은 2020년 5월부터 호주의 대중 주력 수출품인 보리·면화·와인 등에 대해 통관을 강화하거나 수입을 중단했다. 호주는 이에 맞서 2020년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안보협의체), 이듬해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협의체)에 가입하면서 중국 압박 선봉장이 됐다.
냉각됐던 중국과 호주의 관계는 지난 2022년 5월 대중국 관계 개선 기조의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가 취임하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같은 해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G20(20국) 회의에서 앨버니지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6년 만에 정상회담을 했고 중국은 이듬해 1~8월에 걸쳐 호주산 목재·보리 등에 대한 고율 관세를 폐지했다. 작년 11월에는 앨버니지 총리가 방중해 시진핑과 회담을 하며 관계 개선의 속도가 빨라졌다.
왕이의 이번 호주 방문을 계기로 호주는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관계 개선에 나서면서 동시에 미국 주도의 안보 협의체 가입은 유지하는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호주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가 위태롭고 오커스 등 미국 주도 안보 협의체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실용 외교’와 ‘안보’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고 있다. 중국 매체 상관은 “미국의 우방인 호주는 일부 문제에서 중국과 보조를 맞추기 매우 어려워 보이고 이런 이견은 ‘빙하기’를 다시 불러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호주 국적의 중국계 작가 양헝쥔이 중국에서 간첩죄로 ‘사형 집행유예’ 판결을 받는 등 중국의 인권 문제를 둘러싼 갈등도 걸림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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