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관의 마약 파는 사회] 부모가 중독이면 자식도 중독… 로다주는 6세에 마리화나를 시작했다
어릴 때 코카인 널린 집에서 자라
“1, 2, 3….”
내 몸에 연결된 수액 줄에 하얀 프로포폴이 들어가는 순간부터,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12가 마지막이었다. 그러고 의식, 더 정확히는 기억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긴 잠을 잔 듯 몸이 개운한 것도 잠시, 너무 긴 시간이 흐른 듯해 갑자기 불안해졌다.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하얀 커튼 사이로 벽에 걸린 시계가 보였다.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9시 20분이었다. 내시경 검사를 위해 9시 5분에 프로포폴 주사를 맞았는데, 겨우 15분이 지난 것이었다.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내 경험을 소셜미디어에 올리자 많은 사람이 “많이 잔 듯한데 개운하기도 하고 시간은 얼마 안 되고” “무지 오래 잠든 것 같았는데 겨우 몇 분이더라고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깊은 잠을 잤어요”처럼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댓글을 달았다.
위·대장 내시경, 피부 미용 시술 등이 끝나면 더 이상 프로포폴을 맞을 일이 없다. 하지만 숙면한 소수가 다시 프로포폴을 찾는다. 특정 시술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프로포폴을 맞으려 병원을 찾는 것이다. ‘연예인 프로포폴’ 사건 전에는 프로포폴 규제가 거의 없었고, 중독 위험성이 잘 알려지지 않아 아예 시술 없이 프로포폴만 계속 놔주는 나쁜 병원도 있었다. 프로포폴 중독이 문제가 되자, 한국은 2011년 2월 세계 최초로 프로포폴을 마약류로 지정해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몸담은 병원만 해도 수술과 내시경을 위해 하루에도 수십 명에게 프로포폴을 쓰는데, 왜 프로포폴이 특히 연예인에게 문제가 됐을까?
많은 연예인이 살인적 일정에 시달린다. 거기다 몸매를 관리하려고 극심한 다이어트를 한다. 인기란 신기루 같아, 언제 사라질지 몰라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 하지만 대중 앞에서는 항상 웃어야 한다. 육체적 피로에 더해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겪는다. 너무 피곤해서 잠이 오지 않은 경험이 다들 한 번은 있을 것이다. 연예인이 늘 겪는 일이다. 이런 상태에서 우유 주사, 즉 프로포폴을 맞고 10분만 자도 몇 시간을 잔 것같이 효과를 냈다면 어떻게 될까? 연예인 특성상 일반인에 비해 미용이나 성형 시술을 많이 받고, 따라서 프로포폴을 접하는 경우도 많다. 프로포폴 중독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 연예인은 피하지방을 제거하는 카복시 세러피와 보톡스 시술을 받으면서 프로포폴을 처음 접한 후 6년간 무려 410회를 맞았다.
프로포폴은 마취제로, 호흡 억제 부작용 등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극소수 발생한다. 프로포폴 중독이 문제가 되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프로포폴 관련 사망자를 조사했다. 2000년부터 12년간 36명이 프로포폴 때문에 사망했는데, 수술이나 시술을 받아 사망한 환자는 16명이었다. 간호사와 간호 조무사가 9명, 의사가 4명, 병원 관계자가 2명 등이었다. 모두 프로포폴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그러니까 접근성이 매우 높은 이들이었다. 연구에 따르면 의사들의 마약류 사용 빈도는 일반인의 5배에 달했다. 마약 및 마취제의 부작용뿐 아니라 위험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마취통증의학과 의사의 약물 관련 사망 위험이 내과 의사보다 2.8배 높았다. 접근성이 문제가 되는 이는 의사만이 아니다. 마약에 취해 좀비처럼 뒤틀린 몸으로 다니는 사람들이 넘치는 미국 필라델피아 ‘좀비 거리’는 전 세계 많은 이에게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이는 미국이라서 특별할 뿐이었다. 콜롬비아에는 예전부터 ‘헤로인 거리’가 있었고, 콜롬비아 제2 도시 메데인에는 800점포에서 각종 마약을 24시간 팔고 있다.
충동적 성격, 흡연, 음주, 가난, 도박, 가족력, 육체적 및 정신적 고통 등이 있으면 마약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이런 경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약이 옆에 있어야 한다. 의사가 약물에 중독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약을 다루기 때문이고, 연예인들의 프로포폴 중독이 많았던 것은 프로포폴을 이용한 각종 미용, 성형 시술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마약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마약을 생산하고, 유통·판매하는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친구나 지인이 마약을 하면, 나 또한 마약을 접할 확률이 높아진다. 마약이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다. 마약을 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지만 간과하는 결정적 요인은 접근성이다.
마약은 불과 같다. 곁에 있으면 점점 뜨거워지다 결국 옮겨붙는다. 작은 불길이 번져 숲 전체를 태우듯 마약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사회로 퍼져 나간다. 불은 처음에 쉽게 끌 수 있다. 하지만 불이 번져 산불이 되면 진화하기 어렵다. 마약 또한 마찬가지다. 처음에 한두 명이 할 때는 쉽게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사회에 널리 퍼져 있으면 누구나 쉽게 마약을 하게 된다. 초기 대응이 중요한 이유다. 미국에서 마리화나 합법화 이전에 이미 성인 6명 중 한 명(16%)이 마리화나를 피울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마리화나 금지법이 유명무실했다. 그래서 미국은 마리화나를 합법화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산불을 끄기 위해 사투를 벌이면서, 사람들이 산에서 담배를 피우도록 허락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결국 마리화나 불법 판매소의 폭발적 증가와 더불어 더 강력한 불법 마약 사용으로 이어져 더 많은 이를 중독에 빠뜨렸다.
한국은 2023년 마약 사범자가 2만7611명으로 2022년 1만8395명 대비 50% 늘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미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언제나 가장 빠르다.
문제는 접근성… 부모가 중독이면 자녀의 중독 확률 8배 높아
마약중독은 내적 요인(성별, 연령, 육체적 및 정신적 고통, 가족력, 충동적 성향, 도박, 흡연, 음주 등)과 외적 요인(접근성)이 만나서 생긴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펴낸 ‘신경정신의학’ 등에 따르면 마약은 대부분 18~22세에 시작한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 마리화나 및 아편 중독 확률이 2배 높다. 가난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와 비교하여 대략 1.5배 위험이 증가한다. 우울증이 있으면, 우울증이 없는 것에 비해 약물 의존성이 2배가 된다. 고등학교를 중퇴하면, 대졸자보다 마약을 할 확률이 3.5배 높다. 폭음하는 경우,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에 비해 다른 약물을 할 가능성이 4배 높다.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마리화나를 할 확률이 7.3배 높다.
아이는 부모를 닮고 부모에게서 배운다. 축구 선수 차범근의 아들인 차두리는 축구를 하고, 야구 선수 이종범의 아들인 이정후는 야구를 한다.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도 축구 선수였다. 아이가 보고 배우는 건 마약도 포함된다. 그의 아버지는 영화감독이었고, 어머니는 영화배우였다. 그 덕분에 다섯 살에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했다. 집에는 “술과 코카인이 널려 있었”기에 그는 여섯 살이란 어린 나이에 포도주를 마시고 마리화나를 피웠다. 여덟 살 때부터 마약에 빠졌다. 그는 배우로는 성공했지만 젊은 시절 대부분을 술과 마약에 빠져 지냈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게 신기한 그는 영화 ‘아이언 맨’의 주인공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인디오 팔코너 다우니마저 스무 살 때 코카인을 소지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마약중독인 부모의 자녀는 그렇지 않은 가정의 자녀보다 중독자가 될 확률이 무려 8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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