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준칼럼] 채 상병 의혹 누가 키웠나
사망 의혹 안 순간 인지 이뤄져
수사외압 의혹 눈덩이 키운 건
군과 정부의 태도 때문 아닐까
“돈 터치 마이 보디(Don’t touch my body)”. TV 화면 속 조두순(72) 발언을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하얗게 센 수염과 꽁지머리, 남루한 차림을 한 그의 입에서 나온 영어가 어색했다. 야간외출 제한 명령을 어겼다가 재판을 받고 나오던 길이었다. 그는 걸음을 재촉하는 보호관찰관에게 “몸에 손대지 말라”고 화를 냈다. 초1 여학생에게 몹쓸 짓을 해놓고 제 몸은 저리 아낀다니…. 블랙코미디의 한 장면이었다.
‘문제의 7월31일’ 수사외압 사건이 되고 말았다.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보고서 경찰 이첩을 보류시키면서 비롯됐다. 왜 보류 지시가 이뤄졌는지, 누가 지시했는지에서 출발한 의혹 제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정치권발 바람까지 들어가니 공갈빵처럼 부푼 모양새다. 공수처 수사에 이어 특별검사제, 탄핵이 얘기되고 ‘이종섭’은 공공의 적이 되어 있다.
허망하게도 해병대 수사단에는 채 상병 순직을 ‘수사’할 권한이 없다. 1962년 제정된 군법회의법과 1987년 이름을 바꾼 옛 군사법원법은 군인 관련 사건에 대한 수사권을 군 수사기관에 부여했다. 재판도 모두 군사법원에서 하되 상고심만 대법원에서 맡았다.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2022년 7월부터 수사 주체가 바뀌었다. 2021년 5월 발생한 공군 이예람 중사 성폭력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교통, 폭력, 성범죄 등 ‘비순정 군사범’과 반란과 이적, 군무 이탈 등 ‘순정 군사범’을 구분해 전자는 수사와 재판을 모두 민간 법정에서, 후자는 1심만 군사법원에서, 항소심부터는 민간에서 하도록 한 것이다.
채 상병 순직은 군인 등이 ‘사망하거나 사망에 이른 경우 그 원인이 되는 범죄’의 재판권을 군사법원이 아니라 민간 법원에 부여한 군사법원법 제2조 2항이 적용된다. ‘재판권이 군사법원에 있지 아니한 범죄를 인지한 경우’ 사건을 민간 수사기관으로 이첩하도록 한 같은 법 제228조 3항에 따라 해병대 수사단이 아니라 경찰이 수사해야 하는 사안이다.
국어사전은 ‘인지(認知)’를 ‘어떤 사실을 인정하여 앎’이라고 풀이한다. 관건은 인지의 시점을 어디로 볼 거냐에 있다. 일부에선 인지보고서를 작성해 입건해야 인지가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법원 판례(89도648)는 ‘범죄 혐의가 있다고 보아 수사를 개시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무처리 절차 규정이 있어서 범죄인지서를 작성해 사건수리 절차를 밟은 때에만 범죄를 인지했다고 볼 것은 아니다’고도 했다. 채 상병 사망이 알려지고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보는 순간 인지가 이뤄졌다고 판단하는 게 타당하다. 법 개정을 주도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8월21일 국회 법사위에서 “그냥 딱 (범죄사실을) 알면 이첩하는 것”이라고 말한 그대로다.
수사권을 둘러싼 법률적 논쟁이 수사외압 논란을 덮을 수는 없다. 군 책임자가 권한을 남용해 하급자의 정당한 행위를 제지했다면 처벌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해병대 수사단에 수사할 권한이 없었다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권한 없는 이들 간에 벌어진 행위가 엄청난 국민적 의혹과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진 것일 수 있다. 실수보다 실수를 대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경구를 떠올리게 한다. 채 상병 사망을 대하는 군과 정부의 태도가 사태를 이토록 키운 건 아닌지 묻게 된다.
박희준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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