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암초'에 당정 또 삐거덕 … 선거 코앞서 적전 분열하나
대통령실, 선 넘지 말라며 경고
野 공세에 수도권 중도층 흔들
한동훈, 갈등 무릅쓰고 나선듯
이종섭 문제엔 당정 간격 여전
황상무 수석도 즉각 사퇴안해
◆ 제22대 국회의원선거 ◆
국민의힘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재건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한동훈호(號)'가 당정 갈등이라는 암초를 다시 만났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이종섭 주호주대사와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자 18일 대통령실은 사실상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성 메시지를 던지며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여당 지도부와 수도권 의원들 사이에선 대통령실과 적절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한 위원장 리더십을 부각시키는 게 총선 승리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우세하다. 그러나 '집토끼'인 보수층 반발이 커지면 반대로 한 위원장의 입지 약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지난 1월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 때 대통령실에 직언을 하며 여론 판세를 뒤집었던 한 위원장이 고심 끝에 대통령실과 다시 각을 세운 만큼 쉽게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당시 용산과의 충돌을 감수한 덕분에 공천 과정에서도 한 위원장이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는 평가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수도권 등 경합 지역의 국민의힘 후보들도 용산보다 한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형국이다. 최근 야당이 이 대사와 황 수석 문제를 활용해 공세를 강화하고 수도권 중도층에 이 같은 공격이 먹혀들고 있는 만큼 한 위원장에게 '해결사'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또 1월과 다르게 한 위원장의 당내 지위가 한층 공고해졌다. 한 위원장 없이는 지역구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게 국민의힘 내부 정서다. 경기 성남 분당을에 출마하는 김은혜 전 대통령실 홍보수석, 경기 하남갑 후보인 이용 의원 등 '찐윤(진짜 친윤석열계)' 정치인들까지 용산의 신속한 결단을 촉구하고 나선 배경이다.
다만 '윤한(尹韓) 1차 갈등' 때처럼 상황이 흘러갈지는 미지수다. 여당 지지율이 정체되면서 한 위원장의 '개인기'도 한계에 부딪힌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보수 지지층 사이에선 이 대사 논란이 야당의 '정치 공세'에 불과하다는 정서가 강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 위원장이 용산을 거세게 몰아세우면 보수 지지층에서 '역풍'이 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위원장도 총선을 목전에 두고 당정 갈등이 다시 폭발하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이날 오전 한 위원장은 매일 기자들과 진행하던 출근길 질의응답을 생략했다. 오후에 당사를 나오면서도 취재진의 질문을 받지 않고 퇴장했다. 당분간 대통령실과 '확전'을 피하며 여론 추이를 관찰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역시 총선이 3주 정도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적전 분열은 필패'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신중한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여권은 2016년 20대 총선 때 공천을 놓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정면출동해 '옥새 파동'이라는 촌극까지 빚었다. 결국 압승을 예상했던 새누리당은 더불어민주당에 제1당을 내주며 충격적인 패배를 기록했다.
향후 당정 간 갈등 수위는 대통령실의 후속 조치에 달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단 대통령실에선 한 위원장이 이 대사 귀국까지 요구한 것은 과했다고 판단하는 기류다. 이 대사 검증 과정에서 고발 내용을 검토한 결과 문제될 것이 없다고 판단했고, 고발 주체가 민주당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야당의 정치 공세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이미 언론을 통해 이 같은 '가이드라인'을 여당에 강조한 바 있다.
이날 대통령실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도 설전을 벌였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공수처가 이 대사의 출국을 허락한 적이 없다고 밝힌 데 대해 "대단히 부적절하다"며 "수사가 그렇게 급하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소환 통보를 하면 이 대사는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대사가 출국 전 공수처에 자진 출석해 4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고 다음 수사 기일을 정해주면 나오겠다고 했다"며 "출국을 막고 싶었으면 그때 막았어야 했다. 사실상 출국을 허용한 것"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한 여권 인사는 "이 대사 문제는 당정 간에 쉽게 입장이 좁혀질 사안이 아닌 만큼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황 수석 발언은 언론사에 대한 위협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만큼 대통령실 내에서도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황 수석은 지난 14일 MBC 기자 등이 동석한 식사 자리에서 "MBC는 잘 들으라"며 1980년대 언론인에 대한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했다. 다만 사퇴는 황 수석 개인이 판단할 영역이란 분위기가 강하다. 당장 황 수석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여당 지도부 인식과는 괴리가 있는 셈이다.
한편 민주당은 한 위원장의 전날 발언을 두둔하며 대통령실을 압박했다. 김부겸 민주당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한 위원장의 발언을 언급하며 "환영한다. 법치와 국민 눈높이를 봤을 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다만 한 위원장이 이날 오전 취재진과의 질의응답을 중단한 것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국민의 물음에서 도망치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실이 한마디하면 꼼짝 못하고 입을 닫는 여당 대표의 모습이 참으로 비루하다"며 "대통령의 질책이 그렇게 두렵나"라고 주장했다.
[안정훈 기자 / 우제윤 기자 / 서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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