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한 뼘 부족한 사람들의 이야기

박영서 2024. 3. 18.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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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장소는 시베리아다.

이번 소설집에 담은 단편 8편 중 절반이 시베리아를 무대로 한다.

한 뼘이 모자란 사람들이 시베리아로 향하는 이야기는 두번째 작품 '시베리아, 그 거짓말'에도 등장한다.

마지막 단편 '아프리카'는 시베리아 한복판 투바공화국의 키질이라는 곳에서 아프리카를 그리워하며 평생을 살아온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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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그 거짓말
정태언 지음 / 강 펴냄

정태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장소는 시베리아다. 우리 소설에서 시베리아를 다루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래서 시베리아를 주요 무대로 소설을 썼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기만 하다. 그의 경력을 보면 이해가 간다. 그는 오랫동안 시베리아에 천착해 왔다. 러시아 문학 박사로 대학에서 오랫동안 시베리아 관련 과목을 강의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시베리아를 답사했고 그곳 원주민들과 교류했다. 시베리아 산문집도 펴냈다. 이런 이력은 소설집에 배어있다. 이번 소설집에 담은 단편 8편 중 절반이 시베리아를 무대로 한다.

소설집 첫 작품으로 실린 '한 뼘'에는 카르쉬라는 친구가 나온다. 알타이 말로 '카르쉬'는 '한 뼘'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에서 기인한 연상작용으로 주인공은 늘 한 뼘이 부족했던 지난 삶을 되돌아본다. 한 뼘의 점수가 모자라 떨어진 대학 입시, 한 뼘 뒤늦게 받은 학위로 무산된 교수 임용 등 주인공은 한 뼘의 공간이 부족해서 제자리를 찾지 못한 삶을 살아왔다. 카르쉬 역시 어찌보면 한 뼘 부족한 사람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은 카르쉬가 부르는 시베리아 민속곡 '카이'를 듣는다.

한 뼘이 모자란 사람들이 시베리아로 향하는 이야기는 두번째 작품 '시베리아, 그 거짓말'에도 등장한다. 주인공은 얼떨결에 시베리아에 대한 강의를 맡는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곳을 자료만 조사해서 강의를 시작한다.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시베리아 강의였지만, 그곳에 장밋빛 미래가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세번째로 수록된 '북 치는 소년'은 주인공의 어린 시절 약간의 장애를 가진 친구에 대한 회상기다. '찔찔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친구나 실직을 한 상태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주인공 역시 한 뼘이 부족한 사람이다.

이렇게 뭔가를 결여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날이 오면'에서도 이어진다. 주인공은 가난한 탓에 지방 도시의 구도심에 위치한 '13번지' 낡은 주택의 이층으로 이사온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집 건너편에 위치한 고물상 '창대자원'에서 밤낮 없이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창대자원이 내뱉는 소음으로 인해 주인공의 평온한 삶은 점점 무너진다. 하지만 주인공은 "나는 창대해지리라"라고 다짐한다.

'축약시대'에는 수십 년 만에 연락해 과거 억울한 죄에 대한 탄원서를 부탁하는 P와의 사연이 소개된다. 주인공은 썩 내키지 않는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한 탄원서 작성을 위해서 P의 삶을 축약한다.

'조용환 약전(趙龍煥 略傳)을 쓰다'에는 얼떨결에 지방 소도시를 빛낼 숨은 영웅을 찾아 나서는 주인공의 사연이 소개된다. '골로미얀카에 대한 상상'에는 바이칼 호수 깊은 곳에 사는 물고기가 나온다. 배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외형에 지나친 기름기 때문에 맛도 없는 골로미얀카라는 물고기다. 여행에서 주인공은 처음으로 골로미얀카를 본다. 그 어원이 '헐벗은 또는 가난하다는 뜻'을 가진 '골로이'가 아니라,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이란 뜻의 러시아 고어 '골로멘'임을 알게 된다.

마지막 단편 '아프리카'는 시베리아 한복판 투바공화국의 키질이라는 곳에서 아프리카를 그리워하며 평생을 살아온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존적 무게감과 성찰이 돋보이는 솔직담백한 소설들이다. 곁에 두고 천천히 음미하면 좋을 듯 싶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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