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제가 낳은 ‘응급실 뺑뺑이’…잘못된 진단에 건보재정 날릴 판 [왜냐면]

한겨레 2024. 3. 1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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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오전 119구급대가 대전권 상급종합병원인 충남대병원 응급의료센터로 중증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현아 | 한림대 성심병원 내과 교수

응급실 재이송,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라 하면 심각한 질환이 발생해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도 병상이 없거나 치료할 의사가 없다고 받아주지 않아서 길에서 사망하는 불행한 사태를 연상시킨다. 필수 의료 붕괴의 상징적 현상인 응급실 재이송은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오래 있어 왔다. 현재 경제적 수준에서 더 이상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없기에 문제로 부각된 것뿐이다. 우리 선입견과 달리 응급실 재이송률이 가장 높은 지역은 경기, 서울, 부산 순서로 인구당 의사·병상 수가 가장 많은 지역에서 일어난다. 응급의료 관련 법안이 제정되고 최상위 응급시설인 권역응급센터가 만들어지는 와중에도 개선되지 않는 건 지금의 해결책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응급실 재이송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 응급실 과밀화를 살펴보자. 민주당 최혜영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권역·지역 응급의료센터 환자 중 경증·비응급 환자가 46.6%를 차지했고 서울 ‘빅5’ 병원조차 37.3%에 달했다. 병원에서 “더 이상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답하는 가장 큰 이유다. 따라서 우리나라 응급실에 경증 환자가 넘쳐나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병상을 짓고 아무리 많은 의사를 만들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된다. 왜 경증 환자가 응급실을 찾을까? 여기서부터는 사회 문제가 등장한다.

경증·만성 질환을 응급실에서 치료해야 하는 상황은 1차 의료가 잘 기능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차 의료의 어려움을 겪는 미국의 100명당 응급실 이용은 45.9명에 달하는 반면, 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는 10명 미만이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는 17.2명인데, 여기서 경증 환자를 제외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응급실 이용률이 가장 낮은 국가와 비슷하다. 경증 환자가 넘쳐나는 현실을 방치하고 응급실에 인력과 재원을 투입하겠다는 생각은 저비용 진료를 응급의료라는 고비용으로 전환시키는 것이어서 효율성이 매우 낮은 접근이다.

예약해놓고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병이 악화해 응급실 신세를 지는 환자들이 많다. 환자에게 예약을 어긴 이유를 캐묻다가 일 때문에 예약 시간에 올 수 없었던 절절한 이야기를 들으면 차마 더 말하기 어렵다. 환자가 병원에 가기 어렵게 만드는 노동 현실은 응급실 뺑뺑이와 이렇게 연결된다. 10년간 침상에 누워 있던 뇌경색 환자의 가족이 2차 병원 전원을 거부하고 ‘응급실 1년살이’를 했다는 최근 보도는 극단적 경우지만 돌봄의 문제와 연결된다. 임종 직전 환자가 응급실로 와서 삶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것은 웰다잉의 문제다. 심지어 상급 종합병원에 더 빠르고 쉽게 입원하기 위해 이용하는 행태도 있는데, 이것은 의료 전달 체계의 문제다.

이렇게 보면, 전국에 설치한 상황실에서 환자의 중증도와 병원별 가용 자원을 파악해 이송과 전원을 지휘하는 지역 응급의료상황실은 별 실효성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상황실의 지휘에 따라 병원은 응급실의 경증환자 병상을 비워서 중증환자를 수용해야 하는데, 환자·보호자가 의료진의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장치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의료진이 경증이라 판단해도 환자 개인은 중증으로 여길 수 있고, 응급이나 위중한 환자에게만 적용해야 하는 ‘진료 거부 금지의 원칙’을 모든 환자에게 적용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자칫 법적 공방으로 악화할 수 있다.

조만간 대학병원 분원 8곳의 수도권 개원과 함께 여는 대학병원 응급센터는 그나마 지역 응급센터에서 활동하는 의사들까지 흡수하면서 “환자와 가까운 곳에서 응급환자를 해결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기본계획과 역행하고, 가뜩이나 과밀도가 높은 대학병원 응급실 상황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도 크다. 이와 관련한 놀라운 데이터는 서울의 중증 손상 환자 사망률이 19개 시도 중 아홉번째로 높다는 사실이다. 의료 인력과 최첨단 시설이 쏠려 있는 서울의 낮은 성적은 아무리 재원을 쏟아부어도 문제를 입체적으로 살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필수 의료 패키지의 ‘중증 응급 내원 24시간 내 최종 치료 시 수가 가산율 확대’는 마치 의사가 충분한 보상을 받지 않아 중증 응급 환자를 신속히 치료하지 않는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항목이다. 정부는 필수 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조원에 달하는 재정을 투입하겠다면서 그 재원은 5년간 건강보험 적립금에서 마련한다고 한다. 그러나 잘못된 진단과처방을 내리면 아슬아슬한 건강보험 재정마저 날릴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56조원이라는 재정 적자를 낸 정부를 보면서 하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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