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 한류와 상승효과 K-푸드···그린바이오·푸드테크로 경쟁력 높여야
김치·만두·김·라면·소스류··· K-푸드 해외 인기 치솟아
K-팝·드라마·영화와 함께 상승효과·국가 이미지 제고
대규모 농식품 무역적자···고급·맞춤형 수출이 돌파구
“문화 입히고 AI·바이오 융합해 지속가능 생태계 구축”
“제가 최근 김치를 먹기 시작했어요. 경기 준비하면서 감량할 때 좋더라고요.” 올해 초 미국 종합격투기 대회인 UFC에서 이정영 선수와 맞붙은 미국의 블레이크 빌더 선수가 경기 전 격투기 유튜버 ‘차도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10~20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유럽 등에서 ‘역한 냄새가 난다’며 기피 대상이었던 김치에 대한 대접이 달라졌다. 할리우드 스타 중에도 김치 사랑을 언급하는 인사들이 늘고 있다. 귀네스 팰트로, 크리스틴 스튜어트 등이 그러하다. 미국 연방정부가 지난해 ‘김치의 날(11월 21일)’을 공식 기념일로 정한 것은 김치의 높아진 위상을 보여준다. 이하연 전 대한민국김치협회장은 “몸에 좋은 발효식품인 김치는 한국인의 혼과 문화·정체성을 상징한다”며 “소화효소와 유산균이 함유돼 있는 김치는 밥은 물론 육류·면류와도 궁합이 잘 맞아 세계시장에서 무궁무진한 확장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치 외에도 냉동 만두·김밥, 김, 라면, 떡볶이, 비빔밥, 과자, 커피, 소스류, 치맥(치킨+맥주) 등 K푸드의 인기가 갈수록 치솟고 있다. 해외 한식당도 중식당이나 일식당 못지않게 대접받는 시대가 됐다. 미국 식음료 컨설팅사인 에이에프앤드코는 ‘2024년 식음료 트렌드’ 열 가지를 언급하며 한식을 가장 먼저 꼽았다. 올해 초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경영자 교육 프로그램에서 ‘CJ제일제당:글로벌 식품 리더십을 향한 여정’을 소개한 포리스트 라인하트 교수 등은 “K문화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밝혔다. K팝·드라마·영화·뷰티가 인기를 끌고 국가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면서 K푸드에 대한 호감도 크게 높아졌다는 것이다. 강혜정 전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우리 먹거리를 먹는 장면이 왕왕 등장하면서 K푸드 수출에 도움이 되고 있다”며 “K팝의 확산 역시 K푸드 수출 확대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전했다.
K푸드가 인기를 모으면서 지난해 농축수산식품 수출액은 91억 5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3% 증가했다. 스마트팜 등 농식품 전후방 산업을 포함하면 120억 11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0.4% 늘었다. K푸드 수출이 바이오헬스 수출에 육박할 정도로 커졌다. 김춘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은 “연원을 따지면 K팝·드라마·영화가 해외에 알려지기 전부터 750만 명의 해외 동포와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엔군, 주한미군을 통해 세계에 소개돼왔다”며 “K푸드가 지속 가능한 한류를 만드는 선순환 효과를 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농축수산식품 분야는 수입(지난해 501억 6600만 달러)이 수출보다 381억 달러나 많다. 쌀을 제외하면 국내 곡물 자급률은 약 21%에 그친다. 지난해 9억 5000만 달러어치를 수출한 라면의 경우 원료인 밀이나 팜유를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세계 농식품 시장 규모가 가공식품을 포함하면 반도체(6000억 달러 이상)보다 13배가량 큰 8조 달러를 웃도는 현실에서 K푸드의 고급 이미지 구축과 맞춤형 수출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 이규민 경희대 조리외식경영학과 교수는 “K푸드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만들고 음식명도 고유명사대로 써야 한다”며 “가정간편식(HMR)이나 할랄푸드·코셔푸드, 비건족·다이어트족과 같은 맞춤형 시장을 공략하고 포크가 든 컵라면, 캔에 담긴 김치처럼 현지화를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식품 수출 규모를 2027년까지 230억 달러로 늘리기 위해 기업의 국제박람회 참가와 인증 확대, 저온 저장 시설 지원, 검역·통관 모니터링 강화에 나섰다. 식물·세포 기반 제조 기술 등 푸드테크 연구개발(R&D) 강화, 종자와 동물용 의약품 및 미생물 등 그린바이오 거점 육성, 중동·호주·카자흐스탄·베트남 스마트팜 시범 온실 조성, 새만금 미래형 농기계 실증 단지 구축, 펫푸드·펫테크 경쟁력 강화도 추진하고 있다. 백형희 한국식품연구원장은 “농식품 전후방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그린바이오와 푸드테크 같은 신산업 경쟁력을 대폭 키워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린바이오에 대해 미생물로 친환경 농약을 만들고 유통기한이 지난 가공식품을 곤충 먹이로 재활용하며 밀웜(애벌레)에서 단백질·기름을 추출해 식품·화장품·비료 원료로 사용하는 것을 예로 들었다. 푸드테크의 경우 우리 축산 수출 경쟁력이 취약하고 기후위기도 심각한 상황에서 콩 등 식물이나 해조류, 발효 미생물을 활용한 대체육이나 실험실에서 세포를 배양한 배양육을 개발하는 것 등을 주요 사례로 언급했다.
세계 그린바이오 시장 규모가 2020년 약 1조 2000억 달러에 이르지만 국내 비중은 0.3%에 불과하다. 다만 국내 푸드테크 규모는 세계 푸드테크 시장(2020년 약 5542억 달러)의 9% 가까이에 이르는 약 61조 원으로 추정된다. 해조류 소재로 동물세포를 배양해 배양육을 개발하는 이희재 씨위드 대표는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소 태아 혈청 기반의 세포배양액으로는 배양육 생산량이 제한적이고 비윤리적이다. 이를 해조류로 대체해 가격을 크게 낮추고 있다”며 “AT커니는 2040년에 배양육과 식물 대체육이 35%와 25%로 도축육(40%)을 넘어설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국내 푸드테크 1호 상장을 신청한 안병익 식신 대표는 “푸드테크는 키오스크·즉석밥·밀키트(즉석 간편 요리), 요리·배달 로봇, 무인 매장, 모바일 앱을 통한 음식 배달, 전자 식권, 맞춤형 음식 추천·평가 서비스, 스마트팜, 대체육·배양육·곤충식품까지 포괄할 수 있다”며 무한한 잠재력을 강조했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인삼 재배 기술을 갖고 있고 한국인삼공사도 약 2000억 원(2022년)의 인삼·홍삼 제품을 수출하고 있지만 가장 큰 유통 시장은 홍콩에 내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홍콩에서 거래되는 인삼은 미국삼 등이 주류이며 한국산은 한 자릿수에 그친다. 세계적 농업 강국인 네덜란드는 첨단 스마트팜 확산과 중개무역 등을 통해 우리보다 10배 이상 많은 연 약 1300억 달러의 농식품을 수출한다.
미국의 배송 로봇 허가 추진과 대체육·배양육 기술 가속화, 싱가포르의 대체육·배양육 표준화 추진, 일본의 첨단 스마트팜 확산도 눈에 띈다. 휴사이온 대표인 주성수 국립강릉원주대 교수는 “김치유산균을 활용해 발효 과정을 거친 천연물로 탈모 치료제나 치매 치료제 등을 개발한다”며 “실험실 기술을 상업화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기원 서울대 푸드테크학과장은 “농축수산식품 분야와 인공지능(AI)·정보기술(IT)·생명공학(BT) 융합을 가속화하고 전문 인력 양성, 규제 혁파에 나서야 한다”며 “K푸드 고급 문화를 만들고 맞춤형 수출을 위한 빅데이터 기반의 민관 협력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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