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패트릭 날’ 바이든 만난 아일랜드 총리 “휴전” 촉구…아일랜드계, 팔레스타인 옹호 시위
아일랜드 최대 명절인 ‘성 패트릭의 날’(3월17일)을 맞아 17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가 만나 이날을 기념하고 가자지구 전쟁 문제에 관해 논의했다. 아일랜드 내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규탄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버라드커 총리는 이번 방미 기간 바이든 대통령에게 가자지구에서 즉각적인 인도적 휴전이 성사되도록 노력할 것을 강조했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으로 팔레스타인인의 인도적 상황에 대해 아일랜드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버라드커 총리와 나는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늘리고 휴전 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긴급한 필요성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성 패트릭의 날은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처음 전파한 수호성인 패트릭(386~461년)을 기리는 날이다. 보통의 경우 이날 미국과 아일랜드의 지도자가 함께 성 패트릭의 날을 축하하고 양국의 유대 관계를 강조하는 등 행사를 해왔다. 아일랜드 혈통인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백악관에 아일랜드 총리를 직접 초대해 함께 이날을 기념했다.
그러나 올해 성 패트릭의 날에는 가자지구 문제에 대한 논의가 양국의 최우선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양국 정상의 회동은 평소보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미국의 견고한 이스라엘 지원에 분노하는 아일랜드에서는 이번 행사를 보이콧하라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서방 대부분의 국가가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과 달리 아일랜드는 오랜 기간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주요 유럽 국가 중 하나였다. 영국의 지배에 대한 저항의 역사를 가진 아일랜드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지지한 최초의 유럽연합(EU) 회원국이었고, 지난해 10월7일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한 이후 서방에서 처음으로 휴전을 촉구하기도 했다. 또 알자지라에 따르면 아일랜드 국민의 80% 이상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량학살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든 대통령과 만난 버라드커 총리는 이날 “우리는 그들(팔레스타인인)의 눈에서 우리의 역사를 본다”면서 “이주, 박탈, 국가 정체성에 대한 의문과 부정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제 이민, 차별, 그리고 이제는 굶주림까지”라고 덧붙였다.
그는 “가자 주민들은 식량, 의약품, 쉼터가 절실히 필요하며, 특히 폭격이 멈춰져야 한다”면서 “양측 모두 인질들을 집으로 데려오고 인도주의적 구호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버라드커 총리와 나는 가자지구에서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고, 휴전을 통해 인질들을 집으로 데려오고, 지속적인 평화와 안보로 가는 유일한 방법인 두 국가 해법으로 나아가는 협상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미국과 아일랜드 곳곳에서는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연대의 뜻을 표하고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바이든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뉴욕, 워싱턴, 세인트루이스 등 미국 내 최소 7개주의 여러 도시들에서 이러한 시위가 열린 것으로 알려졌다.
참가자들은 미 대선이 다가오면서 시위뿐만 아니라 투표를 통해서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합주로 꼽히는 뉴햄프셔, 메인, 펜실베이니아에는 미국에서 아일랜드계 미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으로, 재선 승리를 위해서 바이든 대통령은 이들의 표가 꼭 필요한 상황이다.
이번 시위에 참석한 북아일랜드 출신의 존 프랜시스 멀리건(54)은 “바이든 대통령이 어떻게 병원, 학교, 피란민 어린이에 대한 폭격을 옹호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그는 확실히 내 표를 잃었다”고 말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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