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황상무 정리" 용산에 각세우는 한동훈…총선 승리 위한 승부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용산 대통령실과 또 다시 각을 세우는 모양새다.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를 받는 이종섭 주호주대사의 즉각적 귀국과 '언론인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한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자진사퇴 등 대통령실이 불편해 할 수 있는 요구를 기자들 앞에서 던졌다.
최근 도태우·장예찬 후보의 과거 막말이 불거지며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의 공천 취소 결정까지 이른 상황에서 이 대사와 황 수석 관련 논란을 조기에 진화하지 못할 경우 야당의 '정권심판론'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총선 승리를 위해 김건희 여사 관련 이슈에 이어 또 한 번 승부수를 던진 한 위원장이지만, 이후 추가적인 대응은 자제하며 여론의 추이를 살피는 모습이다.
한 위원장은 18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났지만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으며 '신중 모드'에 들어갔다. 한 위원장 측 관계자는 "지금부터는 전시에 준하는 선대위(선거대책위원회) 체제"라며 "선대위에서 한 위원장 발언과 출근길 발언이 겹칠 수 있다. 여러 논의 끝에 매일 질의응답을 하지는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안이 있거나 기자 질의응답이 필요한 경우 언제든 응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선 이종섭 대사의 출국과 황상무 수석의 발언과 관련해 전날 밝힌 입장으로 불거질 수 있는 당정갈등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전날 한 위원장은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이 대사에) 즉각 소환을 통보해야 하고, 이종섭 대사는 즉각 귀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황 수석의 발언은 부적절했다는 말씀을 제가 이미 드린 바 있다"며 "본인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셔야 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한 위원장의 단호한 메시지는 그동안 상승세를 보여왔던 국민의힘 지지율이 반락하며 총선을 불과 20여 일 앞두고 수도권 위기론까지 터져나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17일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장 회의에서는 이 대사 이슈가 중도층 표심이 변수인 수도권에서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한 위원장은 전날 회의에서 이러한 문제와 관련해 대통령실에 어떤 이야기를 전달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은 이미 공천을 결정했던 도태우, 장예찬 후보자에 대해 과거 막말 논란을 이유로 공천을 취소한 바 있다. 따라서 대통령실도 여론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으로 해석된다. 장동혁 국민의힘 사무처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황 수석에 대한 부분은, 저희는 국민 후보자가 되기 전의 과거 발언까지도 국민 눈높이를 고려해서 공천 취소 결정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대통령실은 두 사안에 '정면돌파'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실은 대변인실 명의로 입장문에서 "이 대사가 국내에 들어와 마냥 대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황 상무 논란과 관련해서도 "특정 현안과 관련해 언론사 관계자를 상대로 어떤 강압 내지 압력도 행사해 본 적이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날 한 위원장의 정리 요청을 정면으로 거부한 모양새다. 일각에선 김경률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와 관련한 '사천' 논란으로 대통령실과 한 위원장 사이의 긴장감이 고조됐던 이른바 '윤·한(윤석열·한동훈) 갈등'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이날도 당내 비판의 목소리는 높았다. 서울 등 수도권 출마자들의 경우 이번 사태에 따른 중도층 표심 이탈에 대한 우려가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친윤(친윤석열) 핵심으로 분류되는 이용 국민의힘 의원은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수도권 같은 경우에는 조금, 하나만 잘못하면 지지율(변동)이 바로 보인다"며 "그만큼 4·10 총선에 대한 간절함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른바 '친한동훈계'로 불리는 김경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황 수석에 대해 "공직자로서 자세가 돼 있지 않다"며 "본인 스스로 '거취를 대통령실에 맡기겠다', '반성하고 잘하겠다'는 것은 국정에 너무나 심대한 부담을 주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오늘이라도 당장 사퇴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인 나경원 전 의원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본인 스스로 '거취를 대통령실에 맡기겠다', '반성하고 잘하겠다'는 것은 국정에 너무나 심대한 부담을 주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오늘이라도 당장 사퇴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말했다. 공동선대위원장인 안철수 의원도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인사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야당은 이번 사태를 고리로 '정권심판론'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중앙선거대책회의에서 "해병대원 순직 사건 피의자(이종섭 주호주 대사)를 해외로 도주시키더니 이제는 대통령실 핵심 참모(황상무 시민사회수석)가 언론에 회칼 테러 운운하며 협박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이번 사태가 '당정 갈등'의 양상으로 번지는 것에 대해선 경계하는 모습이다. 총선을 3주밖에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공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이날 장동혁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당정갈등이라고 비치는 것보다는 국민들의 민심을 말씀드린 것"이라며 "당은 민심을 최전선에서 느끼고 있는 조직이다. 당을 이끌고 가는 비대위원장으로서 민심을 반영해 하신 말씀"이라고 말했다.
민동훈 기자 mdh5246@mt.co.kr 한정수 기자 jeongsu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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