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시대 … 위험 피하고 기회 포착할 바로미터는 '회계'

강인선 기자(rkddls44@mk.co.kr) 2024. 3. 1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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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컵 솔 서던캘리포니아대학 교수
국가 회계방식 기업과 달라
단순 현금흐름 위주로 결산
국민에 돌려줘야 할 연금도
부채라는 인식 크지 않아
G7 중 6개 국가, 순자산 적자
부채·숨겨진 자산 파악 위해
정부 회계 시스템 개혁 필요
제이컵 솔 서던캘리포니아대 역사·회계학 교수가 지난 1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회계기준원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어떤 기업이 은행에서 대출 100억원을 받았다고 가정하자. 기업은 이 거래를 어떻게 회계적으로 처리할까? 방식에 따라 다르다. '발생주의' 회계에서는 100억원의 현금이 들어왔다고 표시하는 동시에 100억원의 부채가 생겼음을 기록함으로써 해당 기업의 자산 상태를 정확히 보여줄 수 있도록 한다. 반면 현금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만을 기록하는 '현금주의' 회계에서는 100억원의 현금이 들어왔다고만 표기된다.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기업들은 발생주의 방식을 채택한다. 하물며 한 가정도 막대한 대출을 받으면 단순히 '돈이 들어왔다'고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상환할지 계획을 세운다. 놀랍게도 국가는 그렇지 않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명목적으로는 '발생주의' 회계 방식으로 예산과 결산을 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현금주의'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 지적이다. 이는 국민에게 돌려줘야 할 연금과 같은 부채가 제대로 기록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또 수익을 낼 수 있는 비현금자산의 가치가 정확히 평가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제이컵 솔 서던캘리포니아대 철학·역사·회계학 교수는 지난 13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대중에게 국가 회계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내가 함께 일하고 있는 미국의 여러 의사결정자들도 심지어 이 같은 사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 결과 선진국들도 자산 대비 과도한 부채를 보유하게 됐다. 최근 솔 교수가 출간한 저서 '회계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는가'에서 그는 주요 7개국(G7) 국가들의 순자산을 비교했는데 그중 최소 6개 국가가 순자산이 음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순자산이 양수면 정부가 미래 세대를 위해 부를 축적하고 있다는 의미고 음수면 적자로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는 의미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의 순자산이 음수를 나타냈다.

문제는 보수 정권이나 진보 정권 모두 '정부 회계 개혁'에 눈감는다는 점이다. 솔 교수는 "보수 정권은 재정건전성 측면에서 이 같은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정치인들은 정권을 잡은 뒤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들에게 '우리는 거의 파산 직전이므로 새로운 회계 원칙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정부 부채를 갚기 위해 세금을 올렸던 정부는 (공화당이었던) 조지 W 부시와 (민주당이었던) 빌 클린턴 정부였다"며 재정건전성이 진영보다는 지도자들의 의지에 더욱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회계를 바로잡는 것이 '골든타임'에 진입한 이유를 묻자 솔 교수는 지구온난화, 인구구조 변화, 군사주의 대두와 같은 불확실성이 세계를 더욱 열악한 환경으로 밀어넣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위험은 일상에 벌써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에서는 이미 잦은 산불로 인해 주택 보험을 들어주겠다는 회사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포퓰리즘은 매우 빠르게 군사 행동으로 연결되고 있다. 유럽은 지근거리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으며 한국도 영원한 전쟁 위험 지역"이라고 지적했다. "민주주의가 이 같은 위험으로부터 국가를 지키는 데 실패한다면, 위험과 기회를 정확하게 평가할 회계 시스템은 국가의 궁극적인 '보험'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부 회계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이 반드시 부채 증가로만 귀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솔 교수는 "모든 지방, 광역, 중앙 정부는 숨겨진 자산을 갖고 있다"며 "이를 투명하고 전문적으로 관리한다면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피츠버그시가 대표적인 사례다. 시는 그들이 보유한 부동산 가치를 재평가한 결과 장부 가치의 70배에 달한다는 점을 인지했다. 그는 "부동산 시장 가치에 대한 정보가 적시에 갱신되지 않으면 부동산의 유지나 개발에 대한 유인이 사라질 수 있으며 자산 활용도가 떨어지거나 잘못된 목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솔 교수는 한국 정부의 회계 방식에 대해 '준수한 수준'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예산과 결산이 통합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발생주의 방식 회계를 채택했지만 예산 위주로만 사용되고 있고 그 외 실질적으로는 현금주의로 이뤄진다는 분석이다.

솔 교수는 "회계기준을 통일하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 정부가 도입을 시도하고 있는 재정준칙 역시 그 자체만으로는 완전한 솔루션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정준칙이란 재정의 총량을 수치화해 법제화함으로써 건전성을 관리하는 체계를 의미한다. 솔 교수는 "재정준칙을 도입하더라도 부채를 갚지 않는 국가의 사례는 많다"며 "정확한 회계시스템을 갖춰야만 진정한 재정건전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솔 교수는 역사학자로서 근대 상업 국가에 대해 연구하다 회계가 국가의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고 판단해 회계 분야에서도 연구를 이어갔다. 저서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 '자유시장'은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바 있다.

[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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