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창의와 혁신] 〈12〉창의는 다름과 인내에서 자신을 찾는다

2024. 3. 18. 16: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법무법인 태평양 이상직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1863년 프랑스의 봄, 젊은 화가는 국가 살롱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했다가 심사에서 떨어져 깊은 상심에 빠졌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나중에 인상주의 화풍의 시조가 된다. 에두아르 마네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인물, 풍경 등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고 자신이 느끼는 감각을 그림으로 우려냈다. 당시 미술계는 국가 주도의 제도권 미술이 장악하고 있었다. 실감나게 대상을 화폭에 옮기는 작품을 우대했다. 원근법의 충실함, 묘사의 세밀함 등 엄격한 심사를 거쳐 살롱 전시회 출품작을 선정했다. 나폴레옹 3세 치하의 살롱 전시회는 출품작 5000점 중 무려 3000점이 낙선했다. 기존 화풍에 도전하며 새로운 미술을 개척하던 젊은 화가들의 충격과 반발은 컸다. 급기야 나폴레옹 3세는 낙선작을 별도로 모아 전시회를 개최하라고 지시했다. 마네도 '풀밭위의 점심식사' 등 낙선했던 세 작품을 전시회에 출품했다. 귀에 담지 못할 혹평을 들었다. 평면적이고 입체감이 없다. 원근법을 무시했다. 세밀하지 못하다. 배경이 사실적이지 않다. 나체의 여인이 풀밭위에 앉아 비웃듯 쳐다보는 모습은 천박하다 못해 불쾌하다. 여성과 아이들에게 그림에 가까이 가지 말라고 경고문이 붙기도 했다. 그렇지만 몇몇 화가들의 생각은 달랐다. 마네의 그림에 감동을 받은 그들은 별도 모임을 만들어 기존과 다른 화풍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림은 팔리지 않았고 생활고에 시달렸다. 지금은 어떤가. 미술을 모르는 사람도 마네, 모네, 고흐 등 인상주의만은 알고 있다. 그들의 그림은 경매에서 수백억원을 오르내린다. 제도권 미술의 지탄을 받던 그들은 어떻게 오늘날의 명성을 얻었을까.

그림작가 이소연 作

인상주의 그림은 기존의 고전주의 그림과 달랐다. 다르다는 것은 무엇인가. 똑같은 그들에게서 나를 끄집어내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 보여야 한다. 사진이 등장한 세상에서 사물을 베낀다면 그림 기술자에 지나지 않는다. 우아하지만 서서히 침몰하는 난파선에 있을 순 없다.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낡음을 청산하고 새로운 가치로 우뚝 선다. 그것이 인상주의가 걸어온 길이기에 미술을 모르는 초짜도 인상주의를 알 수밖에 없다. 그들은 화실에서 뛰쳐나와 눈에 비치는 대로 야외의 감각적인 순간을 담았다. 고전주의 화가와 달리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진기 같은 기계나 할 일이었다. 대상이 시각세포를 통해 뇌를 자극하면 그 때의 감정을 정확하게 끄집어내어 그림에 옮겼다. 자신들이 고전주의 화풍과 어떻게 다른지 행동과 그림으로 보였다.

같은 생각을 가진 화가들을 모아 화단을 형성하고 협력했다. 제도권 살롱이 거부하면 그들만의 전시회를 따로 열었다. 빛의 움직임을 화풍에 반영하는 등 안주하지 않고 다양한 실험을 거듭했다. 그들은 미술이 죽지 않고 살아 꿈틀대고 있음을 보였다. 물론 인상주의가 정체성을 명확히 했다는 것만으로 바로 가치를 인정받진 않았다. 관객이 지갑을 열지 않으면 예술가의 삶은 고단하다. 그때 행운이 찾아왔다. 미국의 경제성장으로 미술품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고리타분한 주류 미술보다 도전적인 인상주의 화풍이 미국을 닮았다고 보고 마음과 지갑을 열었다. '다름'을 드러내고 때가 오기를 '인내'로써 기다린 결과다.

창의는 그런 것이다. 수많은 무리에 속해 있으면 다름이 드러나지 않는다. 자신의 다름을 보여야 한다. 왜 다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다름의 가치를 만들고 키워야 한다. 함께 할 동료를 모아야 한다. 때를 만들고 기다려야 한다.

낡은 19세기에 인상주의 화가들이 보여주었던 창의는 인공지능시대에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창의와 다르지 않다. 제도권 미술에 밀려 낙선한 자신의 작품을 껴안고 울분을 삼키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에두아르 마네를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법무법인 태평양 이상직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