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확대, 만병통치약 아니다 [세상읽기]
이철희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
출생아 수 감소와 인구 고령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민 확대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인구감소 지역과 노동력이 부족한 업종을 중심으로 외국 인력 유입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점차 커지는 돌봄 인력 부족을 외국인으로 채우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말부터 100명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하는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얼마 전 발표된 한국은행 보고서는 돌봄 서비스 인력난 완화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그 비용을 낮추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시했다.
한국의 가파른 인구변화와 이에 따른 노동수급 불균형 문제를 고려할 때,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사회로의 전환은 거스르기 어려운 시대적 과제가 된 듯하다. 내국인에게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고, 외국인의 기본적인 인권을 보호하면서도, 우리 기업과 가구가 필요로 하는 인력을 탄력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일은 인구변화 대응에 꼭 필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민 확대가 한국 인구 문제의 근본적·장기적 해법이라는 견해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특히 돌봄 노동자를 포함한 필수인력 수요를 저임금 외국인으로 채우는 정책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유행이나 국제분쟁과 같은 비경제적 요인으로 외국인 유입이 언제든 중단될 수 있다. 팬데믹 직후 외국 인력 입국자 수가 급감하면서 국내 산업이 큰 타격을 받았던 일은 지금도 생생하다. 국내의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이민자 유입을 규제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반이민자 정서 확산에 따른 정치적 지형 변화로 이민에 대한 규제가 도입되고 강화됐던 역사적 사례는 차고 넘친다. 한국도 이민자가 자신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인식이 커지게 되면, 이민 규제가 중요한 정치적 이슈로 등장할 수 있다.
둘째, 국제 노동시장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한국이 필요로 하는 외국 인력 도입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인구변화로 노동력이 부족해진 나라는 한국만이 아니다. 특히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 한국과 인력 송출국이 겹치는 아시아 국가들이 우수한 외국 인력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30년대 대공황기 미국 사례가 보여주듯이, 혹시라도 큰 불황이 발생하면 정주 외국인도 대거 한국을 떠날 수 있다.
셋째, 현재 한국에 인력을 파견하는 국가들이 장기적으로 인력 수입국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 이민의 역사를 살펴보면, 처음에는 이민을 내보내던 나라들이 자국 경제의 발전과 함께 이민 유입국으로 바뀌는 패턴이 발견된다. 한국도 1980년대를 거치면서 그러한 전환을 경험한 바 있다. 한국에 인력을 파견하는 국가들의 미래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베트남의 평균임금은 10년 뒤 한국 평균임금의 절반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며, 이때부터는 인력 송출이 급격하게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인력 송출국의 인구변화는 인력 수입국으로의 전환 시기를 앞당길 것이다. 베트남의 합계출산율은 2022년 1.95로 떨어졌고, 장차 가파른 인구 고령화에 직면할 것이다.
이처럼 외국 인력은 원하는 만큼 들여올 수 있는 한정 없는 자원이 아니다. 따라서 안정적이고 탄력적인 공급을 전제해 외국인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인구변화로 인력이 부족해지는 부문에 저임금 외국 인력을 도입하는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국내 기업과 가구의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임금 유지는 장기적으로 국제 노동시장에서 한국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내국인 노동 공급 기반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국 인력 유입이 갑자기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해당 부문은 감당하기 어려운 구인난을 겪게 될 것이다.
외국 인력의 적절한 도입 확대는 인구변화가 한국 사회에 가져올 여러가지 충격을 완화하는 데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민 확대를 인구 문제 해결의 만병통치약으로 간주하는 정책 방향은 타당하지 않으며, 심지어 위험할 수 있다. 외국인 정책을 포함한 인구변화 대응 방안을 마련할 때, 지금 당장 쉬운 길을 선택하기보다는, 먼 훗날까지 지속할 수 있는 미래 지향적인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현재의 고통과 비용을 감내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 조국혁신당 비례 1번 박은정, 2번 조국…황운하 8번
- 이종섭 조속 귀국도, 황상무 사퇴론도 선 그은 대통령실
- 의사 입에서 “백혈병 정부” 환자들 경악…“보호자 가슴 무너져”
- “윤 대통령도 황당”…한동훈 영입인사 비례 안착, 친윤은 후순위
- ‘강한 러시아’ 약속한 푸틴…서방에 ‘3차대전’ 서늘한 경고
- “노 전 대통령, 가면 쓴 미국인”…양문석 막말 또 드러나
- 정부, 수련병원 이탈 전공의 1308명 업무개시명령 공시송달
- ‘국힘 공천 취소’ 장예찬 무소속 출마…“윤 대통령 1호 참모”
- 고척돔에서 오타니 응원한 아내 다나카…오타니 3타수 무안타
- 홀몸노인 끼니 챙기던 62살 요양보호사, 2명 살리고 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