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정의 차이나 라이브] 전인대로 보는 올해 中 경제 전망| 전인대로 보는 올해 中 경제 전망 | 5%대 성장 재차 도전… '짠물' 부양에 실현 가능성 물음표
중국이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지난해와 같은 수준인 ‘5% 안팎’으로 설정했다. 대내외 환경이 한층 악화한 만큼 적극적으로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해야 하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적자율은 2023년보다 오히려 낮아졌다. 부동산, 증시 등 전통 산업에 대한 지원 대신 전기차·에너지·바이오 등 첨단산업을 육성해 ‘고품질 발전’을 추진한다는 것이 중국의 계획이다. 세계경제계는 이같은 중국 목표가 ‘공격적’이라고 평가하며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2년 연속 '5%' 안팎목표 제시
리창(李强) 중국 총리는 3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정기국회 격) 제14기 2차 회의 개막식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5% 안팎으로 설정한다는 내용의 정부 업무 보고를 발표했다. 5% 안팎 목표치는 지난해와 같은 수준으로, 1991년(4.5%)을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준이다. 리 총리는 “(올해) 성장률 목표는 취업 증가와 리스크 예방·해소, 경제 성장 잠재력과 이를 지지하는 조건을 고려했다”고 했다.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3%, 도시 실업률은 5.5%를 내걸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의 경제성장률 목표에 대해 ‘야심적’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의 경우 전년도 코로나19 봉쇄로 인한 기저 효과에 힘입어 5.2% 성장에 성공했지만, 올해는 이 같은 효과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동산 경기는 수년째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내수 부진까지 겹치면서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ING 그레이터 차이나의 린 송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비우호적인 기저 효과와 과잉 공급 상태로 남아있는 부동산 시장 등을 고려할 때, 올해 중국이 5% 성장률에 도달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국제통화기금(IMF·4.6%), 경제협력개발기구(OECD·4.7%), 세계은행(WB·4.4%) 등은 모두 중국에 대해 4%대 성장률 전망치를 내놨다.
한층 도전적 환경에서 5% 안팎 성장률을 달성하려면 적극적 부양 의지가 뒷받침돼야 하지만, 중국 정부는 과도한 돈 풀기에는 선을 그었다. GDP 대비 재정 적자율이 지난해 3.8%보다 0.8%포인트 낮아진 3.0%로 설정된 것이다. 시장 예상치(3.5~3.8%) 역시 밑돌았다. 리 총리는 “유연하면서도 적절하고, 효율적 방식으로 신중한 통화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도 “경제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대규모 부양책에 의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중국이 당장의 성장보다는 위험 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닐 토머스 미국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 중국분석센터 연구원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과거의 고속) 성장을 되살리기 위해 대규모 부양책이나 새로운 접근법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시 주석은 현재 중국 경제가 흔들리는 것이 ‘고품질 발전’이라는 장기적 비전 달성을 위해 필요한 단기적 고통으로 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중국 경제의 뇌관으로 꼽히는 지방정부 부채 역시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지방정부 특별채권 발행 규모가 3조9000억위안(약 722조원)으로 지난해보다 1000억위안 늘어나긴 했지만, 4조위안대를 내다본 시장의 예상에는 못 미친 것이다. 다만 초장기 특별정부채권 1조위안을 발행해 상황에 따라 긴급 수혈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부양책보단 펀더멘털 강화중국은 경제성장률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고품질 발전’, 즉 펀더멘털 강화를 내세웠다. 리 총리가 언급한 ‘신품질 생산력’이 대표적이다. 신품질 생산력이란 과학기술 혁신을 통해 첨단산업을 육성하는 전략이다. 리 총리는 스마트 커넥티드, 신에너지차(전기차·하이브리드차·수소차), 첨단 수소에너지, 신소재, 혁신 신약, 바이오 제조, 상업용 항공·우주, 양자 기술 등 미래 산업을 차례로 언급했다. 이에 맞춰 과학기술 예산도 3708억위안(약 69조원)으로 전년 대비 10% 늘렸다.
하지만 시장이 기대하던 부동산 관련 파격 대책은 없었다. 리 총리는 부동산 정책을 개선하고 다양한 소유권 형태(국유·민영 등) 부동산 기업에 대한 동일한 기준으로 자금 조달 수요를 충족시키고, 부동산 시장의 안정과 건강한 발전을 촉진하겠다고 했다. 2019년 이후 매년 전인대 업무 보고에 ‘집은 살기 위한 것이지, 투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住房不炒)’ 등 부동산 정책과 관련한 문구가 등장했지만, 6년 만에 생략됐다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중국 정부는 올해 들어 우량 부동산 기업과 프로젝트에 자금을 공급하는 ‘화이트 리스트’ 제도를 실시하고, 주택담보대출 기준금리인 5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하향 조정했지만, 효과가 적어 추가 부양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번 전인대에서 구체화할 것으로 관측됐던 증시안정기금 등 증시 안정화 대책 역시 빠졌다. 블룸버그는 “보고서에서 ‘시장’이라는 단어가 27차례나 언급됐지만, 자본시장과 관련된 내용은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며 “중국 정부의 우선순위에서 증시가 여전히 극도로 낮은 수준임을 보여준다”고 했다. 한편 올해 중국의 국방 예산은 지난해보다 7.2% 늘어난 1조6700억위안(약 309조원)으로 책정됐다. 중국은 2020년 6.6%에서 2021년 6.8%, 2022년 7.1%, 2023년 7.2% 등으로 매년 국방 예산 증가율을 확대했다. 시 주석은 2035년까지 국방 현대화를 달성하기 위해 군사력을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Plus Point
이빨 빠진 中 서열 2위, 리창… 양회 총리 회견 30여 년 만 폐지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의 상징적 행사로 꼽히는 총리의 내외신 기자회견이 30여년 만에 전격 폐지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으로 권력이 집중되면서 서열 2위인 리창 총리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월 4일 러우천젠 중국 전인대 대변인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올해 전인대 폐막 이후 총리 기자회견은 열리지 않는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몇 년 동안 개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총리의 기자회견은 양회의 중요한 행사 중 하나다. 1991년 리펑(李鵬) 총리 재임 시절 처음 이뤄졌고, 1993년 주룽지(朱镕基) 총리 때부터 정례화됐다. 전인대 폐막 후 이뤄지는 이 기자회견은 생방송으로 송출되는데, 언론에 폐쇄적인 중국에서 총리가 2시간가량 내외신 기자들을 상대한다는 점 때문에 큰 의미가 있었다.
시 주석에 이어 서열 2위인 리 총리의 입지가 축소된 것이 반영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리 총리가 지난해 3월 취임 후 1년간 해외 인사들과 접촉하는 행사에 140차례 참석했는데, 이는 고(故) 리커창(李克强) 전 총리의 취임 첫해(219회)에 비해 크게 줄어든 수준이라고 전한 바 있다.
총리의 역할이 줄어든 것은 양회 전부터 감지됐다. 과거 양회를 앞두고 관영 언론과 국무원이 ‘총리에게 할 말 있습니다’라며 다뤘던 대정부 건의 업무가 올해는 ‘정부 업무 보고에 건의합니다’로 바뀌며 ‘총리’ 글자가 사라진 것이다.
총리의 힘을 빼는 것과 동시에 대외 메시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있다. 앞서 리 전 총리는 지난 2020년 전인대 폐막 기자회견 당시 “중국인 6억 명의 월수입은 1000위안(약 18만5000원)밖에 안 된다. 1000위안으로는 중간 규모 도시에서 집세를 내기조차 어렵다”는 ‘소신 발언’을 내놓은 바 있다.
리 전 총리가 언급한 이 수치는 중국 정부가 공개하지 않은 내용일 뿐만 아니라, 시 주석이 주장하는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건설’에 대한 정면 반박으로 읽힐 수 있어 논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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