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때문에 바나나 멸종? 다국적 기업 음모론?

한겨레 2024. 3. 1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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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의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⑩ 바나나 멸종 사건 1
2024년 3월13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주최한 제4회 세계바나나포럼에서 참가자들이 바나나를 시식하고 있다. 세계식량농업기구
엉망진창행성조사반에 제보가 들어왔어요. 자신을 ‘바나나광’이라고 소개한 의뢰자는 ‘기후변화 때문에 바나나가 멸종하는 게 정말이냐’고 물었어요. 어제도 여덟 개 달린 바나나 한 송이를 4500원에 샀다는데, 아니, 이렇게 값싸고 천지인 바나나가 싸그리 없어진다는 게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대요. . (☞9회에서 이어짐)

“이게 다 기후변화 때문이라고요!”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의 유일한 조사 요원 와트슨이 울그락불그락한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오며 투덜댔습니다.

“여자친구가 그만 만나재요. 글쎄, 접때 충북 청주에서 수해가 났잖아요. 청주에서 제일 큰 커피전문점이 침수 피해를 입어서 돈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충주 지점 신축 공사를 포기했대요. 그 공사 수주업체 사장이 화가 나서 돌멩이를 찼는데, 그 돌멩이를 머리에 맞은 사람이 병원에 가서 의사한테 화를 냈는데, 그 의사가 집에 와서 ‘너 왜 이렇게 늦게 다니냐’ 하고 여자친구를 혼내니, 이 친구가 ‘아 몰랑, 아빠고 남친이고 다 저리 가~’ 한 거죠.”

홈즈 반장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죠.

“기후변화 탓 하지 말고, 어장관리 그만 하셔. 그나저나 이번 제보는 바나나에 관한 것이야. 기후변화 때문에 바나나가 멸종할 거라고…”

“바나나는 열대 식물 아닙니까? 최적 서식지의 온도는 27도. 더워질수록 좋은 거 아니에요?”

현재 추세대로라면 생산량 증가

모든 사건 조사는 문헌 조사로 시작합니다. 마침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지난 13일 열린 ‘세계바나나포럼’ 소식을 모든 언론이 다루고 있었어요. 이 포럼에 참석한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바나나가 사라질 거라고 경고했다는 얘기였어요. 한 학자는 ‘기후변화는 바나나 산업에 엄청난 위협’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학자는 ‘바나나에 감염병을 일으키는 곰팡이 포자는 홍수나 바람으로 퍼진다. 일반적인 날씨 패턴을 보일 때보다 기상이변이 잦을 때 바나나 감염병을 빨리 퍼뜨린다’고 말했고, 또 또 다른 학자는…

과거에 바나나를 다룬 기사들을 찾아봤어요.

‘우리가 즐겨먹는 바나나가 멸종위기에 처했다’(댓패치), ‘멸종위기의 바나나를 구하려는 사람들’(AAC뉴스), ‘멸종위기 바나나, K-키트가 구한다’(중국일보)…

기사 제목은 온통 ‘멸종위기’ 천지였습니다. 그런데, 언론은 거두절미하고 ‘멸종위기’ 갖다 붙이는 데는 선수잖아요. 좀 더 엄밀히 살펴보기 위해서 학계에서 나온 보고서를 꼼꼼히 읽어보기로 했어요. 학계에서 바나나 권위자로 꼽히는 대니얼 베버(Daniel P. Bebber) 영국 엑시터대 교수 연구팀이 2019년 쓴 논문이 눈에 띄었어요.

연구팀은 전 세계 바나나 생산량의 86%를 차지하는 27개국의 과거 바나나 생산량을 분석하고, 각 지역별 기후 조건을 시뮬레이션하여 2050년까지의 생산량을 예측했어요. 와트슨 요원이 설명했죠.

“1961년부터 2016년까지 27개국의 바나나 생산량은 1ha당 1.37톤 증가했습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기온 상승의 덕을 본 거죠. 하지만 지역에 따라 최적의 환경을 초과할 경우엔 수확량이 감소했다고도 하는군요.”

“그래서 2050년에는 멸종이 된다던가?”

“그건 아니예요. 현재 추세대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생산량 증가분은 1970~2000년 평균보다 1ha당 0.19톤 늘어날 거래요. 상당한 정도로 온실가스 감축을 할 경우에는 1ha당 0.59톤 늘어날 거고요.”

“2050년까지 기후변화가 전 세계 바나나 평균 생산량에 주는 긍정적인 영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생산량 증가 폭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는 거군.”

“모든 지역이 다 그런 건 아니고, 지역적 편차가 있다는 게 포인트예요. 아프리카의 생산량은 앞으로 쭉 늘어날 거고요. 반면, 콜롬비아나 니카라콰, 파나마, 말레이시아는 기후 리스크가 큰 걸로 나타났어요.”

“우리나라가 70%를 수입해서 먹는 필리핀 바나나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 10개국은 약간의 부정적 영향을 받겠지만, 향후에 적응할 것으로 예상됐어요. 과거에도 두 나라는 기후모델만 보면 감소하는 걸로 나왔는데, 재배 기술과 생산 효율성의 발달로 오히려 생산량이 증가했다고 합니다.”

“여하튼 2050년에 바나나가 멸종될 일은 없겠군.”

2024년 3월13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주최한 제4회 세계바나나포럼에서 참가자들이 바나나를 시식하고 있다. 세계식량농업기구

필리핀에서 온 익명 편지

기후변화에 의해 바나나가 ‘멸종한다’ 혹은 ‘번성하다’며 단순하게 잘라 말하기는 힘들었어요. 재배 지역마다 최적의 기후 조건과 재배 기술 등이 다르기 때문이죠.

하지만, 기후의 불안전성에 이에 따른 불확실성에 대비해 미리 대비해야 하는 건 분명해 보였죠. 더욱이 바나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수입 과일이기 때문에 더 큰 관심이 필요하고요. 2022년 농림축산식품 수출입 동향 및 통계를 보면, 한국 사람들은 3775억원을 들여 수입한 바나나 3억1985만톤을 먹었습니다. 전체 바나나 수입액의 72.6%를 필리핀이 차지했고, 베트남(7.3%), 콜롬비아(5.5%), 페루(4.9%) 순이었어요.

그때 사무실 우체통에 편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어요. 발신자가 안 적힌 봉투 안에는 쪽지 한 장이 들어있었어요.

‘속지 말 것, 바나나 기후변화 멸종설은 다국적 바나나 자본이 퍼뜨리는 음모다.’

와트슨 요원이 말했어요.

“우체국 직인을 보니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서 보냈는데요. 바나나 박사가 살고 있는 곳이잖아요!”

“그럼 거기로 가 보지.”

*3월25일에 이어집니다.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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