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때문에 바나나 멸종? 다국적 기업 음모론?
엉망진창행성조사반에 제보가 들어왔어요. 자신을 ‘바나나광’이라고 소개한 의뢰자는 ‘기후변화 때문에 바나나가 멸종하는 게 정말이냐’고 물었어요. 어제도 여덟 개 달린 바나나 한 송이를 4500원에 샀다는데, 아니, 이렇게 값싸고 천지인 바나나가 싸그리 없어진다는 게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대요. . (☞9회에서 이어짐)
“이게 다 기후변화 때문이라고요!”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의 유일한 조사 요원 와트슨이 울그락불그락한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오며 투덜댔습니다.
“여자친구가 그만 만나재요. 글쎄, 접때 충북 청주에서 수해가 났잖아요. 청주에서 제일 큰 커피전문점이 침수 피해를 입어서 돈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충주 지점 신축 공사를 포기했대요. 그 공사 수주업체 사장이 화가 나서 돌멩이를 찼는데, 그 돌멩이를 머리에 맞은 사람이 병원에 가서 의사한테 화를 냈는데, 그 의사가 집에 와서 ‘너 왜 이렇게 늦게 다니냐’ 하고 여자친구를 혼내니, 이 친구가 ‘아 몰랑, 아빠고 남친이고 다 저리 가~’ 한 거죠.”
홈즈 반장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죠.
“기후변화 탓 하지 말고, 어장관리 그만 하셔. 그나저나 이번 제보는 바나나에 관한 것이야. 기후변화 때문에 바나나가 멸종할 거라고…”
“바나나는 열대 식물 아닙니까? 최적 서식지의 온도는 27도. 더워질수록 좋은 거 아니에요?”
현재 추세대로라면 생산량 증가
모든 사건 조사는 문헌 조사로 시작합니다. 마침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지난 13일 열린 ‘세계바나나포럼’ 소식을 모든 언론이 다루고 있었어요. 이 포럼에 참석한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바나나가 사라질 거라고 경고했다는 얘기였어요. 한 학자는 ‘기후변화는 바나나 산업에 엄청난 위협’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학자는 ‘바나나에 감염병을 일으키는 곰팡이 포자는 홍수나 바람으로 퍼진다. 일반적인 날씨 패턴을 보일 때보다 기상이변이 잦을 때 바나나 감염병을 빨리 퍼뜨린다’고 말했고, 또 또 다른 학자는…
과거에 바나나를 다룬 기사들을 찾아봤어요.
‘우리가 즐겨먹는 바나나가 멸종위기에 처했다’(댓패치), ‘멸종위기의 바나나를 구하려는 사람들’(AAC뉴스), ‘멸종위기 바나나, K-키트가 구한다’(중국일보)…
기사 제목은 온통 ‘멸종위기’ 천지였습니다. 그런데, 언론은 거두절미하고 ‘멸종위기’ 갖다 붙이는 데는 선수잖아요. 좀 더 엄밀히 살펴보기 위해서 학계에서 나온 보고서를 꼼꼼히 읽어보기로 했어요. 학계에서 바나나 권위자로 꼽히는 대니얼 베버(Daniel P. Bebber) 영국 엑시터대 교수 연구팀이 2019년 쓴 논문이 눈에 띄었어요.
연구팀은 전 세계 바나나 생산량의 86%를 차지하는 27개국의 과거 바나나 생산량을 분석하고, 각 지역별 기후 조건을 시뮬레이션하여 2050년까지의 생산량을 예측했어요. 와트슨 요원이 설명했죠.
“1961년부터 2016년까지 27개국의 바나나 생산량은 1ha당 1.37톤 증가했습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기온 상승의 덕을 본 거죠. 하지만 지역에 따라 최적의 환경을 초과할 경우엔 수확량이 감소했다고도 하는군요.”
“그래서 2050년에는 멸종이 된다던가?”
“그건 아니예요. 현재 추세대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생산량 증가분은 1970~2000년 평균보다 1ha당 0.19톤 늘어날 거래요. 상당한 정도로 온실가스 감축을 할 경우에는 1ha당 0.59톤 늘어날 거고요.”
“2050년까지 기후변화가 전 세계 바나나 평균 생산량에 주는 긍정적인 영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생산량 증가 폭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는 거군.”
“모든 지역이 다 그런 건 아니고, 지역적 편차가 있다는 게 포인트예요. 아프리카의 생산량은 앞으로 쭉 늘어날 거고요. 반면, 콜롬비아나 니카라콰, 파나마, 말레이시아는 기후 리스크가 큰 걸로 나타났어요.”
“우리나라가 70%를 수입해서 먹는 필리핀 바나나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 10개국은 약간의 부정적 영향을 받겠지만, 향후에 적응할 것으로 예상됐어요. 과거에도 두 나라는 기후모델만 보면 감소하는 걸로 나왔는데, 재배 기술과 생산 효율성의 발달로 오히려 생산량이 증가했다고 합니다.”
“여하튼 2050년에 바나나가 멸종될 일은 없겠군.”
필리핀에서 온 익명 편지
기후변화에 의해 바나나가 ‘멸종한다’ 혹은 ‘번성하다’며 단순하게 잘라 말하기는 힘들었어요. 재배 지역마다 최적의 기후 조건과 재배 기술 등이 다르기 때문이죠.
하지만, 기후의 불안전성에 이에 따른 불확실성에 대비해 미리 대비해야 하는 건 분명해 보였죠. 더욱이 바나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수입 과일이기 때문에 더 큰 관심이 필요하고요. 2022년 농림축산식품 수출입 동향 및 통계를 보면, 한국 사람들은 3775억원을 들여 수입한 바나나 3억1985만톤을 먹었습니다. 전체 바나나 수입액의 72.6%를 필리핀이 차지했고, 베트남(7.3%), 콜롬비아(5.5%), 페루(4.9%) 순이었어요.
그때 사무실 우체통에 편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어요. 발신자가 안 적힌 봉투 안에는 쪽지 한 장이 들어있었어요.
‘속지 말 것, 바나나 기후변화 멸종설은 다국적 바나나 자본이 퍼뜨리는 음모다.’
와트슨 요원이 말했어요.
“우체국 직인을 보니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서 보냈는데요. 바나나 박사가 살고 있는 곳이잖아요!”
“그럼 거기로 가 보지.”
*3월25일에 이어집니다.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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