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성 더 커진 최저임금 차등 개편[문희수의 시론]

2024. 3. 1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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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수 논설위원
외국인 돌봄 인력 도입 절실한데
높은 최저임금에 가계 부담 커
저임금 차별·인권 침해 논란도
일률적 최저임금 개편이 돌파구
ILO도 다원적인 차등화 인정해
22대 국회 출범 맞춰 결단해야

고령 부모 간병과 육아는 일반 가정에 큰 고통이다. 성인 자녀가 일을 그만두면서까지 치매 부모를 돌보는 데 매달리는 실정이다. 가정이 파괴될 지경이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돌봄 지옥’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대로라면 저출생·고령화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게 분명하다.

취약한 돌봄 구조 탓에 당장 가계의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 지난 5일 한국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 가정은 소득의 절반 이상을 돌봄 서비스에 투입하고 있다. 지난해 간병인 고용에 들어간 돈은 월평균 370만 원으로, 65세 이상 고령 가구 중위소득의 1.7배에 달했다. 가사 도우미 비용도 월 264만 원으로 30대 가구 중위소득의 51.9%나 됐다. 이 때문에 경제활동을 포기하고 가족 돌봄에 전념하는 가족 간병 인력이 2022년 89만 명에 달했다. 20년 뒤인 2042년엔 212만∼355만 명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돌봄 인력난이 부담을 키운다. 돌봄 인력 부족은 2022년 19만 명 수준에서, 2032년엔 38만∼71만 명, 2042년엔 61만∼155만 명으로 계속 확대할 것으로 한은은 추산했다. 가족의 간병을 위해 경제활동을 포기하는 데 따른 국내총생산(GDP) 손실이 2022년 11조 원이고, 2042년엔 최대 77조 원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돌봄은 이제 시급한 국가적 과제라고 봐야 한다.

이에 따라 외국인 인력 도입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최저임금이 적용되면 비용이 크다는 점이다. 최저임금은 현재 시간당 9860원으로, 중위임금의 61%나 된다. 한은은 두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개별 가정이 사적 계약으로 외국인을 직접 고용하는 방식으로 최저임금을 피하거나, 돌봄 서비스업의 최저임금을 차등화하는 방안이다. 두 방안 모두 법 개정이 필요하지 않고, 내·외국인 간 임금 차별을 금지하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도 저촉되지 않는다.

반면, 외국인에 대한 임금 차별·인권 침해 같은 논란을 부를 수 있다는 부담이 따른다.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이 최저임금을 주는 다른 분야의 일자리를 찾아 불법 체류하거나, 내국인 인건비의 동반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부작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과거 미국 등 선진국으로 일하러 가서 임금 차별 등 불이익을 당한 경험이 있다. 국제사회는 주요 7개국(G7)을 G8, G9으로 확대해 한국을 참여토록 하는 방안도 논의하는 중이다. 외국인만 차별 대우하는 것은 한국의 국격에 맞지 않는다.

결국 최저임금 특례나 예외 추가가 아니라, 업종별·규모별 차등화 개편을 통해 돌파구를 만드는 게 옳다. 제도화를 통해 돌봄 문제를 정면 돌파해야 한다. 인적 자원의 재분배도 염두에 둬야 한다. 최저임금 차등화는 2년 전부터 논의돼왔고, 지난해는 영세 소상공인들로 구성된 소상공인연합회가 심각한 경영난을 더는 감당 못 한다며 차등화 도입을 호소했던 터다. 인력 감축도 이젠 한계라는 음식업·도소매업·숙박업·미용 등 생활 밀착 업종 등은 특히 절박하다.

너무 빨리 많이 오른 최저임금이 초래한 폐해는 이미 확연하다. 일자리가 줄고,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근로자 비율(최저임금 미만율)이 되레 느는 역설을 통계가 입증한다. 최저임금은 최하층 근로자 보호가 명분이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올리면 최하층은 물론, 바로 위 계층부터 그 이상의 상위 계층 임금까지 연쇄적으로 동반 인상해야 한다. 임금 체계가 연공서열형인 탓에 임금 계층 간 격차를 유지하려니 연봉이 1억 원 안팎인 계층까지 임금을 올려야 하는 것이다. 임금 격차·양극화를 오히려 확대한다. ILO 가입국도 절반 정도가 산업별 차별화 등 다원적인 최저임금을 시행한다. 싱가포르 등은 아예 최저임금이 없다.

저출생·고령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인구가 격감하는 노인 국가로 전락할 뿐이다. 국가 소멸을 막기 위해서라도 ‘돌봄 고통’을 시급히 해소해야 한다. 누구나 자녀이고, 부모인 이상 절실한 민생 문제다. 일률적인 최저임금을 개편해야 한다. 자투리 시간에 일하기를 원하는 학생·취업준비자·주부·투잡 희망자의 요구에도 부합해 단기 일자리를 늘리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강성 거대 노조에 편향된 야당 주도의 현 국회로는 어려울 것이다. 4·10 총선 이후 구성될 제22대 국회 출범에 맞춰 결단해야 한다.

문희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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