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위선적 카르텔’ 기로에 섰다[포럼]

2024. 3. 1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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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서 병원에 가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가운 입은 의사 선생님의 중요성을.

젊은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정책에 반기를 들고, 의사 선생님만 바라보는 환자들을 떠난 지 한 달이다.

정부가 지난달 29일부터 수차례 현장 복귀 시한을 번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의사 카르텔의 독점성 때문이다.

그런데 의사 카르텔은 세계인권선언 제25조에 명시된 건강권을 지키라고 국가가 준 면허를 가지고, 거꾸로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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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아파서 병원에 가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가운 입은 의사 선생님의 중요성을. 그의 한마디가 눈빛 하나가, 희망이고 두려움이고 천사인 줄을….

젊은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정책에 반기를 들고, 의사 선생님만 바라보는 환자들을 떠난 지 한 달이다. ‘2000’이란 숫자 마법에 걸려 있다. 의사라는 전문직들만의 세계라고 하지만, 그들만의 ‘집단사고’를 갇혀 있는 것 같다. 의료 행위는 그들의 방식대로 자율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에는 100% 동의한다. 하지만 의대 정원 결정과 같은 대학정책에도 손대지 말라는 식의 사고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서울대 의대만 하더라도 윤리적이고 존경스러운 명의가 많고,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그들이 전국적인 진료 거부에 동참한다는 것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마저 망각한 위선 아닌가? 의사들만의 조직화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 의료 현장을 깊이 들여다보면 ‘교수-전공의-의대생’으로 이뤄진 군대와 같은 계서적(階序的) 조직이다. 병원별·전공별 단위로 포도송이같이 이뤄진 조직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의사들만 뭉칠 수 있는 철옹성이다. 전공의들은 그들 스승의 행동대원들이고, 휴학계를 낸 의대생들은 볼모인 수직적 조직이다.

선한 사람들이지만, 혹독한 근로 조건에서 일하면서 조직적으로는 느슨한 형태이나 외부의 위협에는 고슴도치 가시 같은 이중성이 있다. 이 조직이 역대 정권이 손들게 한 전문의사 카르텔이다.

정부에 의사 카르텔은 대체 불가능한 인적자원이다. 국민의 건강권을 지켜야 할 책무가 있는 국가지만 이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행정의 중요 요건 중 하나인 계속성은, 마치 전기가 1초라도 끊기지 않고 공급돼야 하듯이 적어도 필수의료는 잠시라도 중단돼선 안 된다. 정부가 지난달 29일부터 수차례 현장 복귀 시한을 번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의사 카르텔의 독점성 때문이다.

정부는 건강권을 보장해야 하는 법적 책무가 있다. 그런데 의사 카르텔은 세계인권선언 제25조에 명시된 건강권을 지키라고 국가가 준 면허를 가지고, 거꾸로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한다.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이 시작된다는 오는 25일은 위선자가 아니고, 카르텔이 아님을 입증할 마지막 기회다.

인구절벽은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젊은이들이 떠나서 아기 울음소리가 먼 전설이 돼 버린 지방 소멸의 원인 중 하나가 적절한 의료 서비스의 부재이다. 증원하는 의대 정원을 ‘지방 80 대 서울 20’으로 배정하는 것도 좋은 방향 설정이다.

다만, 정부도 반성해야 할 점이 있다. 30년 이상을 담는 국가인적자원계획(National Human Resource Plan)과 같은 장기 비전이 없다는 것이다. 국가 자원이라곤 인재(人材)밖에 없는 나라에서, 쏠림 현상이 대입·구직 시장에서 우수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그 결과 그 대열에 끼이지 못한 젊은이들은 낭떠러지로 내몰린다. 국가적으로 필수 분야의 인력에 관한 장기 비전 부족이 낳은 사회적 비용이다. 국가 차원의 교육과 직업보상 체제가 고쳐지지 않으면, 대학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국가인적자원위원회’를 설치해 사회 각 필수 분야에 적합한 사람들이 배출되고 활용되도록 총괄 작업을 해야 한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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