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계 거대 여행사 갑질에 소송 낸 변호사, 김앤장과 붙었는데…
30대 변호사 끝장 소송 제기...
트립닷컴, 회유·압박 안 먹히자 김앤장 선임
중국계 글로벌 대형 여행기업 ‘트립닷컴(Trip.com)’이 한국에서 한 변호사가 낸 소송에 고전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트립닷컴이 소비자를 상대로 갑질을 한다”며 소송을 냈는데, 트립닷컴이 소송 도중 잇달아 백기투항성 합의를 제안하고 있지만 “끝까지 가서 선례를 남기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시작은 트립닷컴이 항공사 약관을 탓하며 티켓값 약 49만원 환불을 거부해서 벌어졌다. 트립닷컴은 고객 4억명을 보유한 직원 4만5000명의 세계 3대 온라인 여행사(OTA)로, 시가총액이 약 37조원, 연매출만 약 8조원 올리는 곳.
그런데 소송이 시작되자 트립닷컴은 ‘전액 현찰로 다 돌려줄 테니 소송을 취하하라’고 회유를 하는가 하면 이 변호사의 선배를 통해 소송을 취하하라고 압박을 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이 남성의 선택은 ‘중꺾마’였다. 이에 트립닷컴은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을 선임했다.
이 사건 주인공 홍웅기(38)씨는 “피해자들 얘기를 들어 보니 트립닷컴은 ‘우린 외국 회사라 한국 법이랑 관련 없다’는 식으로 답변하며 환불을 거부했다더라. 한국은 환불 요청이 있으면 환불을 해줘야 하는 법과 불공정한 약관은 효력이 없다는 법이 있는 법치국가”라며 “이 사건 결과를 판례로 만들 생각”이라고 했다.
사건의 시작은 1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의 한 대형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홍씨는 2022년 12월 트립닷컴에서 지인과 함께 갈 인천-다낭 왕복 ‘비엣젯항공’ 티켓 2매를 98만원 주고 구입했다. 하지만 지인이 여행을 갈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홍씨는 티켓 1장을 취소하려다 트립닷컴으로부터 이상한 답을 받았다. “현찰로 환불할 수도 있으나, 추후 항공권을 구입하는 데만 사용할 수 있는 바우처로 지급될 수도 있다”는 애매한 답이었다. 홍씨는 “현금으로 환불 받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트립닷컴은 “당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 없다. 우리 환불 방식에 동의를 하지 않으면 취소 불가”라는 두루뭉술한 답만 내놨다.
◇정보 비대칭 악용해 ‘체리 피킹’ 환불하는 트립닷컴
항공권 취소엔 기한이 있었다. 기한이 지나면 취소 신청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홍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일단은 취소 절차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트립닷컴은 홍씨에게 “수수료 등을 제한 24만원만 환불 대상이다. 이를 비엣젯항공에서만 쓸 수 있는 바우처로 지급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런데 바우처 사용 조건이 이상했다. 자신이 결제를 했는데도, 바우처는 예약 명의자인 지인만 사용할 수 있었다. 양도도 불가능했다. 환불 시점으로부터 6개월 안에 써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었다. 근거는 비엣젯항공의 약관이라는 게 트립닷컴의 설명이었다.
홍씨는 이상한 마음에 비엣젯항공 약관을 직접 검색해 봤다. 약관에는 “여행사를 통해 예약한 경우, 여행사에 연락하라” “항공사를 통해 예약한 경우, 바우처는 탑승일로부터 1년(valid up to 1 year from the flight date) 내 사용 가능하다”는 문장밖에 없었다. 그는 트립닷컴이 있지도 않은 항공사 규정을 운운하며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만 환불 방식을 유도하고 있다고 확신하기 시작했다.
그는 결국 지난해 3월 트립닷컴 한국법인 ‘씨트립코리아’를 상대로 환불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소장을 접수하자 이제껏 환불을 거부하던 트립닷컴은 전화와 전자우편을 통해 홍씨에게 “청구금액 전부를 현찰로 줄 테니 합의하자”고 했다.
홍씨는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사람에겐 현찰로 전액을 주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돌려보내는 트립닷컴 태도를 참을 수 없었다. 모든 합의를 거절하자 트립닷컴은 김·장법률사무소 변호사들을 소송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그런데 첫 재판일을 앞둔 지난해 9월쯤 이상한 일이 또 벌어졌다. 홍씨는 선배 변호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 선배는 홍씨에게 “혹시 개인 소송 진행하고 있나? 청구 금액 받고 그냥 취하하는 건 어떤가?”라고 했다.
홍씨는 딱 잘라 거절했다. 그는 소송을 시작하며 자신의 사연을 블로그에 적었는데, 100명이 넘는 피해자들이 피해 사례를 줄줄이 댓글로 남겼었다. 이미 자기만의 일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합의 유도하는 재판부... “죽어도 합의는 없다”
지난해 11월 재판이 시작됐지만 갈 길은 아직도 먼 상태다. 재판부가 자꾸 이 사건을 합의로 종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서울서부지법 민사32단독 재판부는 이 사건을 지난 8일 조정 절차로 회부했다. 조정절차란 재판부가 당사자들끼리 합의하라고 권하는 것이다.
홍씨는 조정에 응하지 않았다. 트립닷컴은 1차 조정에 실패하자 ‘전자상거래법의 취지에 따라 약관을 개정하고 환불도 하겠다’는 의사를 재판부에 보냈다. 한국법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처음 내비친 것이다.
트립닷컴이 백기를 반쯤 들었지만 홍씨는 “이건 트립닷컴과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행업계 전반의 문제다. 끝까지 가서 판례를 만들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홍씨 입장과 달리 재판부는 다음달 18일 두 번째 조정기일을 잡았다. 홍씨는 이 조정도 거부할 생각이다.
이에 대해 트립닷컴 관계자는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입장을 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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