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브라이언 하먼의 'PGA 투어 생존 비법'

방민준 2024. 3. 1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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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준우승을 차지한 브라이언 하먼이 최종라운드에서 경기하는 모습이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골프한국] 브라이언 하먼(37)은 얼핏 골프선수와 거리가 있어 보인다. 키 170cm로 단신인 데다 근육질도 아니다. 그런 신체적 핸디캡을 커버할 만한 장타자는 더더구나 아니다. 골프에 깊은 관심이 없는 문외한의 눈엔 '저런 친구가 어떻게 PGA투어에서 버티고 있지?'라는 의문이 생길만하다.



 



이런 그가 지난해 7월 24일 영국 잉글랜드 위럴반도 호이레이크의 로열 리버풀GC(파71·7383야드)에서 끝난 시즌 마지막 메이저인 제151회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최종 합계 13언더파 271타로 공동 2위 군에 6타 차이로 은제 클라레 저그를 품자 세계 골프팬들은 어리둥절했다.



 



대회 전 하먼은 우승 후보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평균 드라이브 비거리는 289.8야드(264.99m)로 PGA투어 112위(현재 기준)에 머물고 아이언샷의 정교함도 중위권 정도기 때문이다. 2009년 프로로 전향한 뒤 PGA투어 통산 2승에 머물고 있어 주목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1라운드를 공동선두에 1타 뒤진 3위로 마친 그는 2라운드에서 6타를 줄이며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가 마지막 라운드까지 6타 차이의 간격을 유지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서도 항아리 벙커와 깊은 러프가 입을 벌리고 있는 로열 리버풀 코스에 대응하는 그는 진정한 '작은 거인(Little Big Man)'이었다.



 



일상생활에선 오른손잡이로 골프만 외손잡이로 치는 그는 톱 랭커들이 헤매는 사이 순례길의 성자(聖者)처럼 묵묵히 자신만의 골프를 펼쳤다. 로리 맥길로이나 셰인 로리 등 아일랜드 출신 선수의 우승을 기대했던 현지 갤러리들은 노골적으로 그에게 비속어를 쏟아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더스틴 존슨, 저스틴 토마스, 필 미켈슨, 저스틴 로즈, 콜린 모리카와 등 강자들이 컷의 벽을 넘지 못하고 겨우 컷을 통과한 브룩스 켑카, 브라이슨 디섐보, 잭 존슨 등도 맥없이 로열 리버풀코스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에겐 '호이레이크의 도살자(butcher)'란 별명이 따라 붙었다.



 



우리의 김주형이 발목 부상을 당하고도 출전해 한국 선수 디 오픈 최고 성적인 공동 2위에 올라 한국 골프팬들에게 자부심을 안겼다. 직전 주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에서 공동 6위에 오른 김주형은 험난한 코스를 슬기롭게 극복, 제이슨 데이(호주), 제프 슈트라카(오스트리아), 존 람(스페인) 등과 공동 2위에 올랐다. 한국 선수가 메이저 대회에서 2위 이상 성적을 거둔 것은 2009년 PGA 챔피언십 양용은(우승), 2020년 마스터스 임성재(공동 2위) 이후 3번째다. 디 오픈에선 2007년 최경주가 공동 8위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이다.



 



하먼의 아마추어 시절 맹활약을 기억하는 미국 골프팬들은 그의 메이저 우승에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아마추어 시절의 골프 행적은 물론 사냥과 낚시를 중심으로 한 그의 취미활동은 골프팬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어릴 적 하먼은 야구 선수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키가 너무 작아 야구로 성공하기 힘들다"고 하자 야구를 포기하고 골프로 방향을 털었다.



 



불리한 신체조건에도 불구하고 하먼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조지아대학 재학 당시 출전하는 대회마다 우승 트로피를 챙겼다. 2003년 US 주니어 아마추어챔피언십 우승에 이어 2005년 올해의 아마추어 선수상을 받았다. 2005년과 2009년 워커컵(미국과 영국·아일랜드 아마추어 대항전), 2007년 아놀드 파머컵(미국과 유럽의 아마추어 대항전)에서 우승을 견인했다. 미국과 유럽 골프팀 대항전인 2023년 라이더컵 대회에도 미국 대표로 선발됐다.



 



하먼은 왼손 골퍼다. 일상생활에선 오른손잡이지만 골프는 왼손으로 한다. 야구할 땐 오른손으로 던지고, 왼손으로 타격한다. 



 



사냥이 취미다. 8세 때 부모와 함께 사슴 사냥에 나서 가죽 벗기는 법을 배웠는데 그만의 사냥 철학을 갖고 있다. 활을 사용하고 어린 짐승은 잡지 않는다. 대서양에 면한 조지아 주 세인트 시몬스 아일랜드에 그만의 사냥 구역을 소유할 정도다. 지난해 마스터스 대회에서 컷 탈락 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사냥에 나서 야생 칠면조와 멧돼지를 잡기도 했다. 



 



"고기 먹는 걸 좋아하는데 사서 먹는 것보다 직접 사냥해서 잡아먹는 게 낫다"라는 그는 "내가 사냥하는 동물은 자유롭게 살다가 죽을 때가 됐을 때 죽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잡은 동물은 직접 손질하고 다른 사람에게 주기도 한다.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갖고 있는 그는 작살 낚시도 즐기는데 이때는 온 가족이 동참한다고 한다.



 



하먼은 18일 미국 플로리다주 폰테베드라비치의 TPC 소그래스(파72·7225야드)에서 막을 내린 제5의 메이저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잡초처럼 강한 생존력을 멋지게 증명했다.



 



디펜딩 챔피언인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가 마지막 라운드에서 뒷심을 발휘, 무려 8타를 줄이며 대역전극을 펼쳐 최종 합계 20언더파로 1타 차 우승,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출범 50년 만에 처음으로 2연패에 성공한 선수가 됐다. 지난주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 이어 2주 연속 우승이다. PGA투어 2주 연속 우승은 2007년 PGA 챔피언십과 WGC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을 연패한 타이거 우즈 이후 처음이다.



 



챔피언조 바로 앞조에서 경기를 한 브라이언 하먼은 라운드 내내 한두 타 차 우승 경쟁을 벌이다 합계 19언더파로 잰더 쇼플리, 윈덤 클라크와 함께 공동 2위를 지켰다. 선두로 치고 나갈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으나 티샷과 퍼팅 미스에 발목이 잡혔다.



 



한국 선수 중에는 2017년 이 대회 챔피언인 김시우가 데일리 베스트 타이인 8언더파를 몰아치며 합계 15언더파로 공동 6위, 임성재는 7언더파로 공동 31위에 올랐다. 김주형은 1라운드 중 심한 고열로 기권했고 안병훈 이경훈은 컷 통과에 실패했다.



 



왜소한 체력에 단타자인 하먼이 PGA투어에서 퇴출되지 않고 생존에 성공하는 모습은 프로골퍼는 물론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펑펑 장거리포를 날리거나 정교한 아이언샷을 날리는 자들만 골프선수로 살아남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다. 



 



하먼은 분명 단타자다. 올 시즌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가 289.8야드(112위)다. 페어웨이 안착률은 62.29%로 60위다. 샌드 세이브는 51.43%로 108위. 퍼팅은 좋은 편으로 평균 퍼팅은 1.715타로 19위다. 그러나 10야드 미만의 프린지에서의 스크램블 능력은 100%로 단연 1위다. 다른 부분의 약점을 그린 주변에서의 스크램블 능력으로 커버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먼은 비거리가 짧아 고민인 선수들에게 희망을 준다. 비거리가 짧고 아이언샷 정확도도 떨어지더라도 그린 주변의 어프로치 샷만 잘해도 다른 약점을 커버할 수 있음을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 비거리가 줄고, 정확도도 떨어지는 주말골퍼들에겐 밤바다의 등댓불처럼 반가울 수밖에 없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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