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이유 티케팅 실패기 [한겨레 프리즘]

이정국 기자 2024. 3. 18.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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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가 지난 2~3일과 9~10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에서 네차례 연 ‘2024 아이유 허 월드 투어 콘서트 인 서울’ 모습. 이담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정국 | 문화팀장

“때 이른 봄 몇 송이 꺾어다/ 너의 방문 앞에 두었어/ 긴 잠 실컷 자고 나오면/ 그때쯤엔 예쁘게 피어 있겠다.”

가수 아이유가 부른 ‘겨울잠’ 가사다. 2021년 발표한 미니앨범 ‘조각집’의 타이틀곡으로 그가 작사·작곡했다. 아이유는 사랑하는 이들이 세상을 떠난 뒤의 사계절을 이렇게 노래했다. “때 이른 봄 몇 송이” “별 띄운 여름 한 컵” “빼곡한 가을 한장” “새하얀 겨울 한숨”. 이 가사는 ‘아이유식 사계절 표현’이라는 수식어로 에스엔에스(SNS)에서 화제가 됐다. 우연히 이 노래를 듣고 ‘뮤지션 아이유’를 다시 보게 된 나는, 지난해 봄 유애나(아이유 팬클럽)에 가입했다. ‘나이 더 먹기 전에 공연은 한번 봐야겠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결국 실패했다.

지난 1년 동안 팬미팅과 최근 시작한 월드 투어 등 기회는 있었다. 저녁 8시 팬클럽 선예매 오픈 시간에 맞춰 광속 클릭을 했지만 매번 대기열은 수만명이었다. 피가 튀길 정도로 치열하다는 ‘피케팅’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취소된 표를 잡는 ‘취케팅’도 역시 실패.

팬클럽 회원도 예매하기가 어려운 티케팅 대란의 원인으로 우선 매크로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대량으로 표를 선취하는 암표상이 지목된다. 지난해 12월 국회입법조사처가 낸 ‘온라인 암표 매매 규제 강화의 필요성과 향후 과제’를 보면 2020년 359건이던 대중예술 분야 암표 신고 건수는 2022년 4224건으로 12배 가까이 늘었다.

암표를 막기 위해 개인정보 확인을 강화한다고 해도 빠져나갈 구멍은 존재한다. 대표적인 게 ‘아옮’이다. ‘아이디 옮김’의 줄임말로, 특정 시간에 미리 구매한 표를 취소한 뒤 재빨리 구매자의 아이디로 취소표를 사는 방식이다. 주식 시장에서 하는 통정거래와 비슷하다.

이를 막을 법제도도 미비하다.오는22일 개정 공연법 시행으로 매크로를 이용해 산 티켓의 재판매가 금지될 예정이지만, 개인끼리 하는 거래를 어떻게 막겠나. 또 법에서 규정하는 ‘공연’에는 각종 축제, 시상식, 팬미팅, 스포츠 경기 등은 포함돼 있지도 않다. 경범죄는 여전히 현장 판매만 단속의 대상이다.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은 열악한 공연장 환경이다. 충분한 관객을 맞이할 전문 공연장이 너무나 부족하다. 케이팝 종주국이라면서, 제대로 된 음향 시설을 갖춘 전문 공연장이 지난해 12월 인천 영종도에 처음 생겼다. 씨제이(CJ)나 카카오 같은 대기업이 추진 중인 케이팝 공연장은 뚜렷한 이유 없이 몇년째 지지부진하다. 월드컵경기장이나 고척돔 같은 스포츠 시설이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의 허가 조건이 까다로운데다, 경기 일정까지 고려해야 한다. 관객 시야, 음향도 열악하다. 여기에 잔디 복구 비용까지 물어낼 위험까지 있다. 지난해 2023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 케이팝 콘서트 때 훼손된 상암월드컵경기장 잔디 복구 비용으로 정부가 2억3천만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니 현재 최대 수용 인원 1만5천명의 케이스포돔(옛 올림픽체조경기장)이 현실적인 대형 공연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유 팬클럽 규모가 7만~8만명이니 대란은 당연한 수순.

당장 공연장 수를 늘리기는 어렵다. 우선은 티케팅 방법부터 개선해야 한다. 한국은 대부분 공연이 ‘선착순’이다. 누가 더 빨리 클릭하냐의 싸움이다. 티케팅을 연습하는 누리집이 있을 정도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동원하는 암표상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도일 수밖에 없다. 반면 일본의 경우 인기가 높은 공연일수록 추첨제가 많다. 공연을 볼 사람이 신청한 뒤 추첨을 통해 선정한다. 추첨제에선 매크로를 사용할 이유가 없어진다. 과열이 예상되는 일부 공연에서 추첨제 방식은 당장 도입해볼 만한 해법이다.

최근 가수 장범준은 기존 예매했던 표를 모두 취소하고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다시 예매를 받았고, 임영웅 콘서트의 암표값은 500만원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심각한 사회 문제다. 관련 부처와 업계가 서둘러 머리를 맞대야 한다.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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