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밭 앞 공장…일, 반도체 부활 “마지막 기회”

김소연 기자 2024. 3. 1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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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지경학, 칩 왕좌의 게임(중)
‘산업의 쌀’ 경제안보 관점서 접근
공급망 재편 격변기 추격 기회로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티에스엠시(TSMC)의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제1공장 모습. 구마모토/AP 연합뉴스

“첨단 로직(시스템) 반도체가 일본에서 생산되는 것은 우리 반도체 산업의 큰 진전이다. 정부는 계속 반도체 생산 등의 지원책을 빠르게 실행해 나갈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달 24일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티에스엠시(TSMC)의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제1공장 개소식에서 영상 메시지를 통해 반도체 산업의 지원을 강조했다. 이 공장에선 올해 10~12월부터 카메라·자동차 등에 필요한 12~28나노(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의 시스템 반도체가 생산된다. 최첨단 반도체는 아니지만, 현재 일본에서 양산되는 반도체 중 40나노가 가장 성능이 좋다는 점을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다. 2027년 가동을 목표로 하는 티에스엠시 구마모토 제2공장에선 첨단 반도체인 6나노가 생산될 예정이다.

1980~90년대 초반까지 세계 반도체 제조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일본은 30년의 침체에서 벗어나 거대한 부활을 꿈꾸고 있으며, 양배추밭 앞에 있는 티에스엠시 구마모토 제1공장은 이런 일본의 변화 움직임을 상징하는 곳이다.

일본 정부는 2021년 6월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을 발표한 뒤 반도체 산업을 키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번 전략은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 강화뿐만 아니라 ‘경제안보’의 관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를 일본에서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과거와 달리 일본 기업이 아니더라도 일본에 생산 거점을 만들면 과감한 지원을 한다.

일본 정부는 티에스엠시의 구마모토 1공장 사업비 1조1천억엔 가운데 40%가량인 4760억엔(약 4조2500억원)을 보조한 데 이어, 올해 말부터 공사가 시작되는 2공장에도 약 7300억엔(약 6조5천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미국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히가시히로시마 공장에도 최대 1385억엔(약 1조2300억원)의 보조금 지급을 결정했다.

일본은 미-중 대립으로 시작된 공급망 재편 등 반도체 분야의 격변기를 이용해 ‘반도체 제조 강국’으로 복귀도 노리고 있다. 도요타·엔티티(NTT) 등 일본을 대표하는 주요 대기업 8곳이 뭉쳐 2022년 11월 반도체 제조 회사인 ‘라피더스’(라틴어로 빠르다는 뜻)를 설립했다. 지난해 9월 홋카이도 지토세에서 공장 건설을 시작했고, 2025년 꿈의 반도체인 2나노 시험생산에 이어 2027년께 본격적인 양산을 계획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미 라피더스에 보조금 3300억엔 지급을 결정했고, 추가로 5900억엔을 더해 총 9200억엔(약 8조2천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라피더스에 참여한 대기업이 출자한 금액이 73억엔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사실상 정부가 주도하는 ‘국책기업’인 셈이다.

일본도 국제경쟁이 치열한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 단기간에 다시 ‘강국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일본이 선택한 것은 동맹·우호국과의 협력이다. 라피더스는 미국 정보기술(IT) 대기업인 아이비엠(IBM)과 2나노 반도체 생산을 위해 공동 연구뿐만 아니라 기술자 육성, 판매처 개척 등에도 협조하기로 했다. 지난달에는 캐나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스타트업인 텐스토렌트와 2나노 공정 기반의 인공지능용 반도체 공동 개발과 2028년 양산을 목표로 계약을 맺었다. 그 밖에 벨기에 종합반도체 연구소 아이멕(IMEC), 프랑스 전자정보기술연구소(CEA-Leti),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에이에스엠엘(ASML)과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

일본의 추격은 시스템 반도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일본 키옥시아(옛 도시바메모리)와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이 미·일 정부의 전폭적 지원 속에서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두 회사가 합쳐지면, 이 분야 시장점유율 2위인 에스케이(SK)하이닉스를 넘어 1위인 삼성전자와 맞먹게 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정부는 반도체의 국내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만들어, 현재 5%에 불과한 반도체 자급률을 2031년 44%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생각이다. 이번을 일본 ‘반도체 부활’의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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