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반도체 굴기’ 막으려는 미 수출통제, 한국에 불똥
“한국 업체에 더 위협…수출 눈치”
미국이 대중국 첨단 기술 전략 봉쇄에 나서는 핵심 열쇠는 반도체 제조장비 수출 통제다. 반도체 제조 경쟁력의 핵심은 첨단 반도체를 불량률이 낮게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느냐인데, 이를 위해 필요한 장비가 중국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고 있다. 일본·네덜란드는 미국의 이러한 수출 통제에 동참했고, 한국과 독일도 미국 정부의 요청을 받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온다.
미국의 ‘다국적 반도체장비 수출 통제’가 효과적으로 보이는 것은 반도체 산업 가치사슬 때문이다. 반도체 산업 전반적으로 칩 설계 및 제조장비 영역은 미국이, 소재 및 제조장비 영역은 일본이, 제조 영역은 한국·대만 등이 강점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소재, 후공정(패키징 및 테스트) 분야에서 비교적 강점이 있지만 설계와 장비 분야는 매우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장비 수입액은 2020년 253억달러, 2021년 399억달러, 2022년 288억달러에 이를 정도로 외부 의존도가 높다.
미국은 중국 반도체 굴기의 ‘병목’이 이런 제조장비에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2022년 10월 16㎚(나노미터) 내지 14㎚의 로직 반도체,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8㎚ 이하 디(D)램 등의 장비 및 기술에 대한 수출 통제를 시행했다. 이어 2023년 10월에는 규제되는 장비와 반도체를 늘리는 등 수출 통제 조처를 확대했다. 특히 지난해 조처는 반도체 미세공정의 핵심인 노광장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 게 특징이다. 기존에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통제했으나, 이전 모델인 심자외선(DUV) 노광장비까지 명시적으로 대상에 포함한 것이다.
한국도 최근 이런 통제 참여를 놓고 미국과 대화에 착수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에 한국 정부는 14일 “반도체장비 수출 통제 동참은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했지만, “일반적으로 수출 통제는 양자회의뿐만 아니라 바세나르 체제 등 다자 차원에서도 논의되는 사안”이라고 해 협상 여부를 부인하지 않았다.
반도체장비 수출 통제 참여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중국이 첨단 기술을 쫓아오는 시간을 더 벌릴 수 있지만, 반도체 자립화 의지 또한 키워주기 때문이다. 김경기 대구대 교수(전자전기공학부)는 “중국은 자체 수요가 워낙에 크기 때문에 (수출 통제가) 자체 기술 개발 쪽으로 중국을 더 자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중국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중국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빅펀드)을 설립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다. 지난해엔 제조장비 경쟁력 향상을 위해 약 400억달러 규모의 3기 빅펀드 계획을 내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내놓은 ‘미국 반도체 수출통제 확대조치의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중국 반도체 제조장비의 부상은 각 분야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구축하고 있는 미국, 네덜란드, 일본과 비교할 때 중국 장비업체와 보다 가까운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 반도체 제조장비 기업에 더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차용호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미국 램리서치,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의 최근 실적 중 중국 매출 비중은 40% 내외로 증가했다”며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장비 업체에 대한 규제를 명확히 가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즉 미국이 자국의 독과점 영역은 지키면서 일방적인 공급망 재편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수출 통제가 중국의 첨단 반도체 제조를 충분히 지연시키고 있는 부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며 “국내 장비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데 (현재 상황에선)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잠재적인 기대효과를 고려했을 때 국내 업체의 글로벌화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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