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억만장자’ 증가세가 한국보다 빠르다는데 [사이공모닝]

이미지 기자 2024. 3. 1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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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야말로 우당탕탕거리며 베트남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게 취미입니다. 우리에게 ‘사이공’으로 익숙한 베트남 호찌민에서 오토바이 소음을 들으며 맞는 아침을 좋아했습니다. ‘사이공 모닝’을 통해 제가 좋아하던 베트남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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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자산 컨설팅회사 ‘나이트 프랭크’가 매년 전 세계 부자의 자산 동향을 조사해 내놓는 ‘부자 보고서’가 지난달 28일 발표됐습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최상위 1%에 드는 부자의 자산은 지난해 4.2% 증가했고, 순 자산이 3000만 달러(약 400억원)이 넘는 초고액자산가(UHNWI· Ultra High Net Worth Indiviual)는 2022년 60만1300명에서 2023년 62만6619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우리가 ‘억만장자’ ‘슈퍼 리치’라 부르는 이들이죠.

/VN익스프레스

나이트프랭크는 “오는 2028년까지 초고액자산가 그룹에 진입하는 사람이 28.1%가 증가할 것”이라면서 “아시아 지역에서 초고액자산가 집단에 새로 이름을 올리는 사람이 가장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가지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해당 보고서가 “2028년까지 베트남 초고액자산가의 숫자가 한국·홍콩·싱가포르보다 빠르게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한 부분입니다.

베트남을 ‘가난한 나라’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이게 무슨 소리야”라고 할 게 분명합니다. 좀 더 자세히 내용을 살펴볼까요.

◇한국보다 빠른 베트남 부자 증가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자산이 3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400억원을 넘는 베트남의 초고액자산가는 2023년 752명에 달했습니다. 나이트프랭크는 2028년 베트남의 초고액자산가 수가 978명으로 늘어날 거라 전망했습니다. 2023년에 비해 30%가량 많은 숫자이지요. 이는 같은 기간 한국(29.5%), 홍콩(22.4%), 싱가포르(15.7%)의 증가세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베트남의 부자 수가 한국, 홍콩, 싱가포르보다 빠르게 증가한다는거죠.

물론, 절대적인 숫자로는 한참 부족합니다. 한국의 초고액자산가 수는 2023년 7310명이고, 2028년에는 9470명으로 늘어날 거라 예상되고 있지요. 홍콩(59577290명), 싱가포르(47835535명)의 초고액자산가도 베트남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부자의 수가 빠르게 증가한다는 것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 경제의 성장과 부의 재편(再編)은 물론, 소비 행태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부자가 늘어나면서 베트남의 사치품 소비도 함께 늘었습니다. 호찌민 시내에 있는 샤넬 매장에서 베트남 부자들이 자신의 비서 혹은 집사를 대동하고 매장을 쓸어가다시피 하는 것을 볼 수 있고, 사이공 강을 끼고 있는 부촌(富村)에서는 수십여명의 손님을 불러 생일 파티를 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합니다. 벤틀리, 벤츠 같은 외제차들이 줄줄이 들어서죠.

소비 품목이 고급화하면서 작년 한 해에만 미술품 가격이 11% 올랐고, 보석류(8%)와 시계(5%), 골동품 등의 가격이 인상됐습니다. 지난 2018~2022년 사이 보석류 가격이 연평균 8%씩 오르고, 자동차(연 26%), 와인(연 6%) 가격이 꾸준히 인상된 것도 돈 많은 사람들의 취향 소비가 늘어난 탓이지요.

억만장자뿐만이 아닙니다. 백만장자의 증가세는 더욱 가파를 전망입니다. 스위스의 시민·영주권 자문회사 헨리앤파트너스와 글로벌 자산정보회사 뉴월드웰스는 최근 “앞으로 10년간 베트남 백만장자 증가율은 최대 125%에 이를 것”이라는 보고서도 내놓았습니다.

◇누가 최고의 부자일까

최근 저에게 “베트남에서 돈을 벌려면 무엇을 하면 될까?”라고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베트남에서 누가 부자인지 알면 그 답이 조금 보일까요? 궁금해져서 좀 찾아봤습니다. 다행히 포브스가 작년 말 베트남 억만장자의 리스트를 업데이트 했더군요. 여기엔 다섯명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베트남의 삼성이라 불리는 ‘빈 그룹’의 팜 녓 브엉 회장, 베트남과 동남아 최대의 철강업체 ‘호아 팟’의 짠 딘 롱 회장, 저가 항공사 ‘비엣젯’의 응우옌 티 프엉 타오 회장, 자동차 회사인 ‘타코’의 짠 바 드엉, 은행인 ‘테크콤뱅크’의 호 흥 안 회장입니다. 3년 연속 순위에 올랐던 마산그룹의 응우옌 당 꽝 회장은 최근 순 자산이 10억 달러 아래로 줄어들어 순위에서 제외됐습니다.

왼쪽부터 팜 녓 브엉 빈그룹 회장, 짠 딘 롱 호아팟 회장, 응우옌 티 프엉 타오 비엣젯 회장. /VN익스프레스

이 중 베트남 3대 부자인 빈 그룹·호아팟·비엣젯 회장의 자산의 합은 작년 한 해에만 10억 달러 가까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2022년만 해도 베트남 주식 시장의 불황으로 대폭 감소했던 이들의 자산이 베트남 주식 가치와 함께 회복된 것입니다.

빈 그룹 브엉 회장의 순자산은 1년 사이 2억 달러 늘어난 45억 달러로 베트남 최대 부호 자리를 유지했습니다. 전 세계 부자 순위로는 648위를 기록했죠. 베트남 억만장자 중 유일한 여성인 비엣젯의 타오 회장의 자산도 전년보다 2억 달러 늘어난 24억 달러였습니다. 호아팟 롱 회장의 자산은 5억 달러가 증가했습니다.

◇베트남에선 어떻게 부자가 될까

이 부호들은 어떻게 돈을 벌었을까요? 1990년대부터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기 시작한 베트남은 정부가 해당 기업의 주식 일부를 보유해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나머지 지분 일부를 파는 식으로 민영화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베트남의 부호들은 직접 사업을 일군 민간 사업가들입니다.

‘베트남의 삼성’이라 불리는 빈 그룹은 초창기엔 라면을 팔아 서민들을 먹여 살린 회사입니다. ‘빈 홈’이라는 브랜드로 부동산 개발 사업에 뛰어들어 돈을 벌었고, 현재는 매각했지만 빈마트라는 대형마트를 운영하며 유통 사업도 했지요. 최근에는 빈패스트라는 자동차 회사를 설립해 전기차 생산을 하고, 학교와 종합병원, 리조트 등의 사업도 합니다. 베트남에서는 “빈그룹으로 하루를 시작해, 빈 그룹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고 말할 정도이지요.

비엣젯 항공의 타오 회장은 남편과 함께 러시아에서 베트남으로 물자를 수입하는 회사를 하다가 은행·리조트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그리고 2007년 저가항공사인 비엣젯 항공을 설립했죠. 호아팟그룹은 베트남 최초로 세워진 민영 회사이고, 테크콤뱅크 역시 베트남 최대의 민간 은행입니다.

이쯤 되면 “아, 베트남에선 이제 정부와 상관없는 민간 사업가들이 돈을 잘 버는구나”싶겠지만 그건 오산입니다. 민간 기업 역시 베트남 정부의 정책과 기조를 거슬러 사업을 하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죠.

/빈패스트

대표적으로 유통업과 건설업 등을 주력으로 하던 빈 그룹이 2017년 ‘빈패스트’라는 자동차 회사를 세운 것이 꼽힙니다. 이는 “오토바이를 퇴출하고, 자동차를 늘리겠다”는 베트남 정부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작년 4분기에만 전 분기보다 3.4% 늘어난 6억5010만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할 정도로 실적이 좋지 않지만 도리어 유통업계 1위였던 빈마트를 매각하고, 전기차 사업을 계속하고 있지요.

물론, 최근 베트남에서도 민간 기업이 늘어나고, 해외 자본이 대거 유입되고 있습니다. IT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도 성행하고 있죠. 표면적으로는 민간 기업이 베트남 경제를 휘어잡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는 정부 정책은 물론, 공무원들의 도움(?)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사이공모닝>을 통해 소식을 전해 드렸던 베트남 부동산 기업 반틴팟그룹의 쯔엉 미 란 회장도 공무원들에게 520만 달러(약 67억원)에 달하는 뇌물을 줬다고 하죠.

(앞서 소개드린 기사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기사를 읽어보시면 됩니다.)

베트남 GDP의 6%를 횡령한 여인 [사이공모닝]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3/0003804044?sid=101

물론, 베트남 정부가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공무원의 뇌물 수수 같은 부정행위에 엄격한 처벌을 내리고 있는 만큼 과거보단 사업 추진 과정이 투명해졌을 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인 만큼, 정부 정책의 방향성을 파악하는 건 여전히 중요합니다. 베트남에서는 앞으로 어떤 사업이 유망할까요? 기회가 된다면 이런 주제도 한번 다뤄보겠습니다. <사이공 모닝> 독자님들의 제보나 의견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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