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드 매직으로도 우승의 한을 풀지못하다

김종수 2024. 3. 17.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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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A명문 출신 네츠, 안풀리는 NBA 히스토리②

 

전편에서 언급했다시피 ‘닥터J‘ 줄리어스 어빙(74‧201cm)은 NBA에서도 전설로 남긴 했지만 ABA시절에도 리그 최고의 선수로 명성이 자자했다. 1974, 1975, 1976년 3년 연속 정규시즌 MVP를 수상했는데 네츠 역시 74년과 76년에 걸쳐 ABA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에이스이자 우승의 주역인 어빙은 플레이오프 MVP까지 싹쓸이한다. 한창 전성기였음을 감안했을때 네츠와 그 이상의 업적 합작도 가능해보였다.


안타깝게도 거기까지였다. 1976년 ABA는 NBA에 병합되었고, 네츠 또한 NBA로 무대를 옮길수밖에 없었다. 물론 우승전력 그대로 새출발을 했더라면 NBA에서도 충분히 강호로 군림했을 공산이 컸다. 하지만 500만 달러에 육박하는 리그 입성금이 발목을 잡았다. 당시 네츠 구단주는 해당 금액을 모두 지불할 여력이 없었다.


결국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로부터 300만달러를 지원받는 대신 간판스타 어빙을 보내고 만다. 구단 역사상 가장 아쉬운 순간이었다. 단순히 강력한 에이스를 보내는 것을 떠나 나비효과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어빙의 위력은 NBA에서도 여전했다. 네츠의 사정을 이용해 어빙을 얻어낸 필라델피아는 윌트 체임벌린 이후 10년만에 파이널에 진출하는 경사를 이뤄낸다.


그렇게 어빙과 함께 파이널에만 세 번을 진출했고 1983년에 16년만의 우승까지 차지하게 된다. 네츠의 경영난이 만들어낸 나비효과였다. 지금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등에 밀리고말았지만 2000년대 초반만해도 NBA 4대명문으로 보스턴 셀틱스, LA레이커스, 시카고 불스와 함께 필라델피아가 언급될 정도였다. 어빙 또한 은퇴하는 순간까지 필라델피아와 함께하며 사실상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았다.


반면 NBA 커리어 시작부터 에이스를 잃은 네츠는 입성 첫시즌 22승 60패라는 참담한 성적을 거두게 된다. 이후 신인드래프트, 트레이드, FA 등 다앙한 방법으로 전력보강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기는 한다. 하지만 잘하던 선수가 유독 네츠에서는 부진하거나 부상으로 신음하는 등 좀처럼 실타레가 풀리지않았고 결국 약체 이미지를 벗지 못한채 20세기를 흘려보내게 된다.


물론 잠깐이지만 반짝 힘을 쓴 시절도 있었다. 동네북 신세를 면치못하던 상황을 타개하고자 2001~02시즌을 앞두고 승부수를 건다. 피닉스 선즈와의 트레이드가 바로 그것이다. 스테판 마버리, 조니 뉴먼, 소마일라 사마케를 내주고 선즈로부터 제이슨 키드(51‧193cm)와 크리스 더들리를 영입한 것이다.


제이슨 콜린스, 토드 맥클럭, 애런 윌리엄스 등 빅맨자원을 물량공세로 영입했고 기존 케리 키틀스, 키스 밴 혼, 캐년 마틴, 리처드 제퍼슨 등과 합을 맞춰 주전 및 백업진 등 다양한 라인업을 완성했다. 그런 상황에서 바이런 스캇 감독의 색깔이 빛났다. 새크라멘토 킹스 코치 시절에 배워 온 '프린스턴 모션 오펜스'를 팀에 이식시킨 것을 비롯 수비에서도 짜임새있는 구성을 만들어냈다.


서고동저로 인해 동부 컨퍼런스 전체적인 전력이 약해진 것도 기회였다. 키드의 존재감은 엄청났다. 넓은 시야와 자로잰듯한 패싱게임에 강점을 가지고있는 그는 특히 달리는 농구에서 위력이 더욱 빛났다. 키드를 제외하고는 슈퍼스타라 할만한 선수는 없었지만 선수단 전체가 끊임없이 뛰고 또 뛰며 속도전과 에너지레벨에서 상대팀을 압도했다. 

 


네츠의 달리는 농구에 휘말리면 어지간한 팀은 삽시간에 페이스를 잃고 흐름을 넘겨주기 일쑤였다. 거기에 키틀스와 밴 혼의 중장거리포는 상대 수비진의 짜임새를 허물어버리는 강력한 옵션으로 작용했다. 부족한 골밑수비는 다수의 빅맨들을 활용한 물량공세로 버티어냈다. 그 결과 키드 합류 첫시즌부터 52승 30패로 동부 컨퍼런스 선두에 올라섰다.


플레이오프에서도 거칠 것 없었다. 인디애나 페이서스, 샬럿 호네츠, 보스턴 셀틱스를 줄줄이 꺾고 NBA 입성 26년만에 처음으로 파이널에 진출했다. 아마 이때 우승을 차지했다면 지금과는 많은 면에서 위상이 달라졌을 것이다. 여유가 생기면서 팀 역시 단계적으로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쉽게도 운이 없었다. 하필이면 '공룡센터' 샤킬 오닐(52‧216cm)이 버티고있던 전성기 레이커스였다.


확실한 주전없이 다수의 빅맨 자원을 돌아가면서 쓰던 ’벌떼 작전‘은 큰 키에 147kg의 체중을 가진 운동능력좋은 근육질 괴물 센터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어지간한 더블팀 정도는 대놓고 들어가서 힘으로 부숴버리던 오닐의 위력 앞에 네츠는 포스트 싸움에서 속절없이 당했다. 골밑수비, 리바운드에서 워낙 밀리다보니 특유의 속공농구에도 제동이 걸려버렸다.


오닐에 온 신경을 쏟다보면 2옵션 코비 브라이언트가 내외곽을 휘젓고 다녔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결국 시리즈 내내 제대로 힘도 쓰지못하고 무너지고 만다. 준우승에 그친 네츠는 이를 악물었다. 포스트 대결서 우위는 점하지 못하더라도 상대 주전 센터를 어느 정도라도 막아낼 빅맨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팀의 핵심멤버중 한명인 밴 혼을 필라델피아의 디켐베 무톰보(58‧218cm)와 맞바꾼 이유다. 콩고민주공화국(구 자이르) 출신의 무톰보는 역대급 수비형 센터로 불린다. 몸싸움에 강하고 점프력까지 좋은지라 블록슛에서 대단한 위력을 과시했는데 어지간한 상대는 무톰보가 골밑에 있는 것만으로도 돌파를 피하거나 움직임에 제약이 걸렸을 정도다.


3시즌 연속 블록슛 1위를 차지한것을 비롯 통산 3,289개의 블록슛을 기록한 그야말로 '통곡의 벽'이다. 적어도 전시즌 무톰보가 있었다면 오닐을 상대로 그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았을 공산이 컸다. 무톰보로 골밑을 보강한 네츠는 2002~03시즌에도 강호의 모습을 유지해나갔다. 비록 전 시즌보다는 승수가 살짝 내려갔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밀워키 벅스, 보스턴 셀틱스,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를 연파하며 다시 파이널에 올랐다.


전시즌 악몽을 안겨줬던 레이커스는 중간에 탈락해서 파이널에 올라오지 못했다. 고대하던 우승을 차지할 좋은 기회였지만 하필이면 상대가 전성기 팀 던컨(47‧211cm)이 버티고있던 샌안토니오 스퍼스였다. 오닐을 피하니 던컨을 만난 격이었다. 아무 것도 못해본 전시즌과 달리 2승이나 거두며 상대적으로 선전했지만 6경기 평균 24.2득점 17리바운드 5.3블록슛으로 골밑을 접수한 던컨 제어에 실패하며 시리즈 전적 4-2로 또다시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게된다.


과거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에 막히며 2시즌 연속 준우승에 그치고만 유타 재즈가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네츠의 돌풍은 거기까지였다. 이후 빈스 카터(47‧198cm)까지 영입하며 우승에 대한 도전의지를 이어나갔으나 허약한 포스트는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팀내 최고 전성기는 거기서 끝났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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