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정신장애 경험, 귀 기울이면 예술이 되고 치유가 됩니다”
24년 전 조현병 진단… 12차례 정신병원 입원
“증상 심할 때 겪는 환각, 화폭에 옮기면 예술”
동료상담-예술활동 지원… 인권단체 ‘파도손’ 설립
“정신질환자 강력 범죄… 낙인보다 돌봄 강화를”
정신장애인 다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독특한 증상을 경험한다. 이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일은 당사자의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고 이 대표는 말한다. 이들의 작품이 사회 저변에 깔린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인식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는 것도 성과다. 파도손은 이달에도 국립정신건강센터와 손잡고 서울 광진구 국립정신건강센터 내 갤러리에서 정신장애 예술가 2명의 작품을 소개하는 ‘마음을 그리다 Ⅱ’를 열고 있다.》
―대표작을 소개해 달라.
“‘신의 목소리’를 주제로 그린 작품들을 소개하고 싶다. 신의 목소리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겪는 환청을 의미한다. 단청, 지구와 행성들, 춤추는 무당, 동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은 내가 증상을 겪을 때 들렸거나 보였던 것들이다. 정신건강의학과적으로 보면 내 그림은 다 ‘진단명’이다. ‘이 부분은 피해망상, 저 부분은 과대망상’ 하는 식으로. 하지만 캔버스로 옮기면 예술의 영역이 된다. 이게 내가 추구할 수 있는 장점 중 하나다.”
―어떤 환청인가.
“사람의 목소리이기도 하고, 생각이기도 하다. 굉장히 많이 들린다. 가끔은 너무 심해서 일상생활이 전혀 안 될 정도다. 목소리는 종류도 많고 내용도 다양하다. 옛날엔 여기에 휘둘렸다. 환청이 시키는 대로 밖에 나갔다. 다리에도 가고 산에도 갔다.”
이 대표가 처음 조현병 진단을 받은 건 서른 살 무렵.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에 다닐 때였다. 하루에 한두 시간도 제대로 못 자는 기간이 6개월간 이어지더니 상태가 나빠져 처음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이후 11차례 더 이어진 입원 생활의 시작이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투병하던 10년간 이 대표는 붓을 쥐지 못했다.
―어떻게 증상을 관리하고 있나.
“꾸준한 상담 등 치료와 주변의 조력도 큰 도움이 됐다. 이제는 증상이 있지만 증상을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트레이닝(훈련)이 됐다. 환청이 들려도 무시할 수 있는 건 무시한다. ‘이건 증상이야, 현실이 아니야’라고 되뇌며 현실과 증상을 분리하는 거다. 고비를 한번 넘길 때마다 나에게 역량이 하나씩 생긴다. ‘레벨 업’ 하는 거다.”
―증상을 겪을 때 주변에서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해주면 도움이 되나.
“편견 없이 얘기를 들어주는 게 도움이 된다. 특히 비슷한 어려움을 겪은 동료가 들어주면 진정이 된다. 반면 증상이 심할 때 충고나 잔소리를 하면 그건 상태를 악화시키는 지름길이다. 잠을 못 자는데 ‘약 먹고 자라’ 하면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 증상을 겪는 사람에겐 그게 실제 상황이기 때문이다. 나도 당사자 (인권) 운동을 하고 동료 지원가를 양성하면서 많이 배웠다. (급성기 환자에게) 접근하는 다양한 기술을 하나씩 습득한 거다.”
―수어처럼 배워두고 싶다. 하나만 알려 달라.
“제일 필요한 것은 공감 능력인 것 같다. 보통 사람은 증상이 심한 사람을 보면 위험하다고 느끼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증상이 심한 사람은 마음이 심하게 아픈 사람이다. ‘아프다’고 얘기할 수 있게 그저 들어주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나아지는 게 겉으로도 느껴진다. ‘너와 내가 분리돼 있지 않다’는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인권 운동을 어쩌다 시작했나.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에겐 (인권 운동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다. 12차례 입원했는데 그중 8차례가 강제 입원이었다. 열악한 폐쇄병동에서 ‘치료’보다는 ‘격리’에 초점을 둔 처우를 받았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 없던 병도 생긴다. 마지막으로 강제 입원됐던 게 2014년이다. ‘내가 죽어야 이 끔찍한 일이 끝나겠구나’ 싶었다. 자살 충동도 너무 심하게 들었다. 그래서 강제 입원당하지 않을 방법을 찾기 위해 인권 운동을 시작한 거다. 강제 입원 없이도 회복하는 건 실제로 가능하다. 우리 사회가 그런 노력을 안 했을 뿐이다.”
2017년 이 대표가 설립한 파도손은 ‘마음이 파도칠 때 서로 잡는 손’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자신의 회복 경험을 바탕으로 동료를 돕는 ‘동료상담’과 상담가 양성, 입원 절차를 돕는 ‘절차보조’, 수공예·그림·운동 등 ‘자조모임’ 등을 돕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파도손에 오나.
“파도손에 가입한 정신장애인은 약 400명이다. 재활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 등 정신건강 기관의 소개를 받아서 오는 경우가 많다. 여기저기 다 두드려보고 제일 마지막에 오는 곳이 여기다. 환자 가족도 상담하러 많이 온다. 동료 지원가는 환자의 급성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너무 잘 안다. 그때 곁을 지키면서 고비를 넘길 수 있게 돕는 거다. 고비를 넘기고 나서 (정신병원에) 입원할지 말지는 타인이 강제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환자 스스로 결정한다. 스스로 ‘필요하다’ 싶어서 하는 입원이니까 치료 과정에서 혼란을 덜 느낀다. 그래서 급성기에 누군가 곁을 지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최근 치료를 중단한 정신질환자의 강력범죄가 우려를 사고 있는데….
“범인을 정신질환자로 지목한 순간 우리는 실패하게 된다. 환자가 범행했다면 그 환경을 봐야 한다. 이면에 사회적인 서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병 때문이야’라고 섣불리 결론 내고 다른 원인에 눈을 감으면 사회적 서사는 묻히게 된다. 경남 진주시 방화 살인 사건도 발생하기 1년 전부터 이미 예고편이 있었다. 범죄를 저지른 이들 중 일부는 돌봄을 받지 못해 증세가 심해진 경우다. 그때 지역사회가 움직이고 지원했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제때 대응할 수 있다면 많은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
―정신장애인이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지원 시기를 놓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정신장애인이 자기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의료적 지원이 아니라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나도 그렇고 주변 당사자 작가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회복했다. 직장이 없는 당사자들은 일하면서 회복했다. 일자리만 있어도 정말 많이 회복된다. 재발률도 확 떨어진다.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주는 게 필요한 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회적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간다. 가족의 삶까지 함께 침몰한다. 당사자가 일하거나 사회적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면 지역사회가 다 좋아진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발표한 정신건강정책 혁신 방안에 대해 평가한다면….
“제일 개선됐다 싶은 건 처음으로 대통령이 정신건강 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비전을 선포했다는 거다. 그에 반해 아쉬운 점은 정신장애인 당사자에 대한 지원이 미비하고,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파도손 동료 지원가도 지난해 19명에서 올해 5명으로 줄었다. 서울시 동료 상담가 양성 사업이 없어졌고, 보건복지부의 동료 지원 예산도 줄었다. 인력이 줄면 (급성기 환자의) 위기 지원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추구하는 목표가 있다면….
“지난해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전시할 때 많은 시민이 오셨다. 전시회를 보고 ‘정신장애인에 대해 잘 몰랐는데 더 잘 알게 됐다’고 했다. 우리가 빈센트 반 고흐를 볼 땐 편견 없이 아름다운 작품을 그린 예술가로 본다. 그를 ‘중증 정신장애인’으로만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대미술의 거장인 일본의 구사마 야요이도 조현병 당사자다. 국내에서도 정신장애 예술가가 많이 나오면 인식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은 문화예술이 최고다.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예술가들을 자세히 보면 다 중환자들이었다. 레프 톨스토이와 어니스트 헤밍웨이, 살바도르 달리…. 너무 한쪽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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