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선거방송심의위원회, 희화화 길을 선택하려나

기자 2024. 3. 17. 20:2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선거 기간에는 심의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이하 선방위)를 별도로 구성하여 운영한다.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련학계, 시민단체 등의 추천 위원으로 선거 방송의 공정성을 엄정하게 심의하기 위해 구성한 것이다. 그런데 선방위가 외려 공정성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호사가들의 술안주 거리도 못 되는 사안을 심의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MBC는 2월27일 일기예보 소식을 전하며 서울 지역의 미세먼지 농도가 이례적으로 1㎍/㎥까지 떨어졌음을 알리면서 ‘1’을 시각적으로 크게 강조하였다. 1의 색은 당연히 파란색이었다. 미세먼지가 가장 좋은 상태를 나타내는 색이 파란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란색이니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의 기호 1을 연상케 하는 것이라며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MBC가 선거운동성 방송을 했다고 비난하였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이다. 그런데 국민의힘 추천 몫인 최철호 선방위 위원은 허위 사실에 의한 이미지 조작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신속 심의를 요구했다. 그리고 선방위는 중징계 필요성이 있을 때 진행하는 의견진술을 결정했다.

파란색 1이 강조된 화면을 보면서 총선의 1번 기호를 연상해내는 ‘감각의 예민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지만 거기까지다. ‘일기예보’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은 문제 제기하기 전까지는 총선 기호 1번을 연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연상의 길을 닦아줬으니 지금은 다를지도 모른다. 백번 양보해 MBC가 의도적으로 1번을 시각적으로 강조했다 치더라도 그게 선거에 영향을 미칠지는 의문이다.

국민의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 MBC가 의도했을 수 있다는 ‘가상의 상황’을 상정해보자. MBC는 1번을 보여주면서 민주당을 직접 언급할 수는 없었을 테니 ‘앞으로도 이런 좋은 날씨가 죽 이어져서 선거일 유권자들이 투표에 많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투표 독려라도 했으면 민주당에 아주 유리하고 좋았을 텐데, 어째 그리 미숙했을까. 미세먼지 농도가 낮아졌다는 말에 사람들이 기분이 좋아지고 그게 상징하는 숫자가 1이니 자연스럽게 민주당의 기호 1번을 좋게 생각할 거라고 안일하게 판단했을까? 혹시 한번으로 그런 연상이 쉽지 않으니 MBC는 여러 번 반복할 계획이라도 세웠을까?

일반인의 상식으로 보면 어이없는 상상이다. 국민의힘은 정치공학적으로 그런 주장을 할 수도 있다. 정권 비판 보도를 많이 했던 MBC가 한 일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최소한 지지층이라도 뭉치게 할 반사이익을 얻을 수도 있으니. 하지만 공적인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선방위에서 다룰 사안은 절대 아니다.

공정성을 위해서 구성한 선방위가 외려 정파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 그런 사례가 많다. 예를 들어 평화방송에 출연한 김준일 뉴스탑 대표는 이태원 참사에 아무도 책임 안 졌다고 발언했다고 해 법정 제재의 대상이 됐다. CBS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한 진중권 교수가 민원사주 의혹을 받는 류희림 방심위원장의 해촉을 주장했다. 이것도 정부·여당에 불리하다고 판단했는지 ‘선거’방송 심의 기구의 심의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고 법정 제재 가능성이 예상된다고 한다. 이미 선방위가 정치적 도구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선방위는 분명 선거방송의 공정성을 위해 별도로 설치된 기구다. 선방위가 특정 정치 세력의 대리인이 돼서는 안 된다. 지금은 투명한 사회다. 선방위 심의는 공개되고, 개별 위원의 발언이 역사의 기록으로 남는다. 이번 일기예보 건은 선방위의 공정성을 판단하는 또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정치세력의 대리인이 되고 싶지 않은 위원들이 지켜야 한다. 스스로를 희화화의 대상으로 전락시키지 않기 바란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학부 교수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학부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