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의대 교수들이 참스승이 되려면
지난 주말,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이 한꺼번에 사직서를 낼 계획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의대 증원에 반대하면서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윤석열 정부가 어떤 제재를 가한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것이다. 제자의 안위를 염려하고 그들을 보호하겠다는 스승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1980년대,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학생들을 처벌하라는 정권의 지시를 뿌리치면서 김준엽 고려대 총장은 총장직을 스스로 던져버렸다. 제자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학교를 떠나기에 앞서 참석한 그의 마지막 졸업식장은 오히려 스승을 지키겠다는 제자들의 절규로 눈물바다가 되었다. 제자를 지키는 일에 자기희생을 주저하지 않았던 그는 또한 제자들에게 절제를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참스승이라 했다.
김준엽 총장의 경우와 맥락이 다르다곤 하지만 전공의 제자들이 다치지 않도록 교수들이 사표를 낸 것 역시 선생의 마음이다.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하자 전공의들이 이를 거부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일제히 병원을 떠난 지가 벌써 여러 날째다. 전공의들의 행동이 곱지 않은 눈총을 받는 것도 사실이나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평가할 말이 없을 정도로 엉터리다. 정부는 연일 전공의들에게 강경한 조치를 하겠다는 발표 외에는 하는 일이 없었다. 정부 정책은 한발도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는 엄포가 전부였다. 정부의 입장은 초강경이었다. 국가 공안기관은 전공의 집단행동과 관련 압수수색, 소환 조사를 강력하게 밀고 나갔다. 이런 상황이 더 진행되면 병원을 떠난 전공의가 피해받을 가능성이 분명했다. 항의에 참여한 전공의의 자격에 불이익이 주어지고, 인신 구속과 같은 처벌도 예상된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강경한 정부 입장을 확인하고 있다.
전공의의 신상이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의과대학 교수들의 집단 사직은 이런 제자를 엄호하려는 행동인 것 같다. 교수들의 뜻은 이해가 간다. 제자들을 다치게 놔둘 수 없다는 스승 된 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것이리라 본다. 그들의 행동은 인지상정이다.
자신들의 결정에 무조건 따르라고 하는 정부의 태도는 공감을 얻기 어려운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전공의들에게 감옥 보내겠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위협도 듣기 거북하다. 이 정부는 감옥 보내겠다는 얘기를 어찌 그리 쉽게, 자주 하는지 모르겠다. 정부가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거의 독선에 가깝다. 정치라는 기준에서 보면 사실 독선은 독재보다 더 나쁜 것이다. 그런 배경에서 의과대학 교수들의 움직임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좋다. 그런데 의과대학 교수들은 거기에서 그치지 말아야 한다. 더 나아가야 한다. 거칠게 힘을 행사하는 윤석열 정부에 자제를 요구하면서도 전공의들에게는 의료현장의 공백이 장기화하지 않도록 행동 방침의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 제자들을 위하는 일일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 여론이 전공의들에게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이유에는 기존 의사들의 이기적 동기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양쪽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할 정부도, 정당도 불능상태다. 의과대학 교수들이 이를 해야 한다. 같은 직역의 동업자이면서 제자인 전공의들의 안전을 확인해야 하고, 또 사안을 옳게 판단하도록 이끌어야 하는 스승으로서 전공의들에게 절제를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문제에 대한 의제 설정을 다시 하는 일이다. 의제 리셋이 절실하다. 애당초 의료인력 양성의 문제는 필수진료 분야와 비수도권 지역의 수급 불균형이었다. 일부 분야와 지역에 의사가 부족해서 의료체계에 구멍이 나 있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고민의 출발이었다. 그런데 이 과제가 의대 증원 문제로만 다루어지고 있다. 해결해야 할 본질은 따로 있는데 엉뚱한 걸 가지고 싸우는 거다. 의대 증원 문제는 특히 코로나19 상황이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절감케 하면서 논의가 급진전하였고 그와 함께 소아과, 산부인과, 응급실 등에 의사가 절대 부족하고 일부 지역에 의사가 부족하다는 점이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윤석열 정부가 의대 증원 문제를 이 시점에서 이렇게 급히 추진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국회의원 총선거용 포퓰리즘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렇게 볼 만한 대목도 있다. 어쨌든 의대 증원 문제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충돌을 완충하면서 제대로 된 의제 설정을 의대 교수들이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참스승이라 할 것이다.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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