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윤석열은 왜 이종섭을 해외로 내보냈을까

김재중 기자 2024. 3. 1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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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원칙 가운데 하나는 ‘공정과 상식’이다. 대통령실 홈페이지에는 공정과 상식이 ‘이념이 아니라 국민의 상식에 기반해 국정을 운영하고, 우리 국민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는 법치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라고 설명돼 있다. 그런데 출범 2주년이 되지도 않은 이 정부 앞엔 국민의 상식과 법치의 원칙에서 벗어난 일들이 쌓여만 간다.

윤 대통령은 해병대 채모 상병 사건 핵심 피의자로 출국금지됐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호주대사로 임명하고 내보냈다. 들끓는 비판에 대통령실은 “공수처의 부당한 출국금지와 조사 지연, 수사비밀 유출이 문제”라고 반박했다. 수사 외압 의혹과 피의자 빼돌리기라는 문제의 핵심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시도지만 어불성설이다.

이 문제는 여당의 총선 악재로 부상했다. 민주당의 ‘비명횡사, 친명횡재’ 공천 파동을 즐기던 국민의힘 후보들조차 용산을 향해 ‘결자해지’하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심각성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대목에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윤 대통령과 용산은 스스로 내세운 공정과 상식에서 벗어나고, 총선 승리라는 실리에도 해가 되는 선택을 한 걸까? 윤 대통령의 경험과 지식에서 힌트를 찾아보자. 2018년 3월 서울중앙지검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팀’은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을 재판에 넘겼다. 그렇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사면해 2년의 징역형을 하루도 살지 않고 자유를 얻은 그 김관진이다. 그는 국군사이버사령부가 2012년 총선·대선 기간 댓글 공작을 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국방부 수사본부 수사를 축소·은폐한 혐의도 적용됐다. 김 전 장관 기소 당시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시계를 다시 5년 전으로 돌려보자. 2013년 군의 댓글 공작 의혹이 언론에 보도됐다. 진상규명 필요성이 제기되자 김 전 장관은 국방부 조사본부에 수사를 지시했다. 엄정하게 진행될 리 만무했다. 일부 부대원 일탈로 축소한 ‘밑그림’이 제시됐고, 중간수사 결과도 그렇게 발표됐다.

그런데 탈이 났다. 헌병수사관이 2014년 4월 국군사이버사령부 부대원으로부터 “다수의 부대원들이 상관으로부터 야당 대선 후보(문재인·안철수)에 대한 비난 취지의 글을 온라인에 올리라는 지시를 받아 이행했고, 대선 뒤 ‘잘해줘서 고맙다’는 격려를 받았다”는 취지의 진술을 받아낸 것이다. 이런 내용이 상부에 보고된 이후 해당 수사관은 수사팀에서 배제됐다. 그리고 수사팀은 다른 부대원에게 앞선 진술을 반박하는 진술을 받았다. 검찰이 작성한 공소장에 상세하게 기술된 내용이다.

1·2심과 대법원, 파기환송심을 거치면서 김 전 장관의 수사 축소·은폐 및 수사관 배제는 일관되게 유죄가 인정됐다. 2심 재판부는 “수사와 재판에서 실체적 진실 발견을 방해하는 범죄는 형사사법의 기본 이념과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의 직권남용 행위는 채 상병 사건 처리 과정에서 이 전 장관이 보인 행위와 겹치는 지점이 많다. 그는 지난해 7월30일 박정훈 대령(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으로부터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적시한 초동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이를 재가했다. 그런데 다음날 번복하고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박 대령이 사건을 경찰에 이첩하자 직위해제하고 수사팀에서 배제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사건을 회수해 대대장 2명만 범죄 혐의를 적시해 경찰에 이첩했다.

이 전 장관이 참모들과 논의를 거쳐 재가한 사안을 다음날 뒤집은 이유는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상태다. 박 대령 측은 윤 대통령의 지시가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이 전 장관으로부터 그렇게 들었다고 직접 설명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수사와 기소에 관한 한 대한민국 최고 전문가다. 그렇기에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졌을 때의 결말을 예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전 장관에게 대사 자리를 줘 해외로 내보낼 유인은 거기서 생긴다. 핵심 피의자가 출국하면 수사는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이렇게 해서 상식과 법치에 벗어나는 일이 용산 입장에선 합리적 선택으로 둔갑했다. 이런 추론이 잘못된 것이라면 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이 전 장관의 대사 임명을 취소하고 귀국시켜 순리대로 수사를 받게 해야 한다. 그것이 공정과 상식이다.

김재중 사회부장 겸 스포트라이트부장

김재중 사회부장 겸 스포트라이트부장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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