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철의 나락 한 알] 봄, 농자천하지대본
지난 4일 대구 군위군 부계초등학교. ‘나홀로’ 신입생이 분홍색 가방을 메고 교실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사진으로 봤다. 마음이 짠하다. 나홀로 입학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올해 신입생이 아예 없는 초등학교도 전국에 157곳이나 된다. 우리나라 저출생의 현실이다. 여기에 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된다. 국가소멸 위기라며 걱정들이다.
땅·농, 생명 아닌 자본 논리로 재
저출생과 고령화가 심각한 사회 현안으로 불거지기 훨씬 전의 농촌, 도시로 사람들이 빠져나갔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통계청의 ‘2022년 농림어업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농가인구는 전체 인구의 4.2%인 216만6000명이다. 전년 대비 5만명이 줄었다.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49.8%로 전체 고령인구 비율 18.0%의 거의 3배다. 하지만 이렇게 늙고 쪼그라드는 농촌을 걱정하는 말은 잘 들어보지 못했다. 나는 국가소멸보다 농촌소멸이 더 걱정스럽다.
농촌 소득을 보자. 위의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전체 농가 65.1%의 연간 농축산물 판매금액은 1000만원 미만이고 18.1%는 연간 120만원을 밑돌았다. ‘2022년 농가경제조사 결과’를 보면 농가의 농업소득은 평균 949만원이다. 농업외소득 등으로 벌충해서 버티는 꼴이다. 농촌의 먹고사는 형편이 이런데 인구가 줄지 않으면 이상하다. 지난 2월 말,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제’ 입법을 전격 선언했다. 품목별 생산비 보장을 위해 농산물 하한가를 정하여 제조업체나 유통업체가 그 이하로는 구매할 수 없게 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제도는 우리 농촌에도 꼭 필요하지만, 표만 좇는 정치는 늙고 쪼그라든 농촌에 관심이 별로 없다.
인구뿐 아니라 농지도 줄었다. 농지면적은 2017년 162만㏊에서 2022년 152만8000㏊로 줄었다. 농지가 줄어드니 농산물 생산량도 준다. 2015~2017년 평균 23%였던 곡물자급률은 2020~2022년 19.5%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전 세계 곡물자급률은 100.3%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최근 과일과 채소 가격이 급등했다. 정부는 생산량 급감 요인으로 이상기후와 병충해를 꼽지만,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한 농지 재배 여력 축소와 농지면적 감소 같은 구조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농지를 줄이지 못해 안달이다. 비효율적인 농지를 합리적으로 이용한다며 농지에 공장을 짓고 도로를 낸다.
선거철이 되자 정부발 규제 해제 바람이 거세다. 본디 사회적 규제란 삶을 보호하려고 만들었을 텐데, 언제부턴가 삶을 옥죄는 걸림돌로 구박받는 신세가 되었다. 대통령이 ‘민생토론회’라는 데서 내놓은 그린벨트 해제와 농지 규제 완화는 난개발과 환경파괴가 뻔한 대표적인 선심성 정책이다. 문제는 지금도 기후위기 대응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이따위 정책이 먹혀든다는 거다. 우리 안에서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 우리는 이제 삶의 근본인 ‘땅’과 ‘농(農)’마저 생명의 이치가 아니라 자본의 논리로 잰다. 하지만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은 변치 않는 진리다. 망본초란(忘本招亂), 근본을 잊으면 온갖 혼란이 일어난다. 난장판이 된 정치는 물론이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우리의 현실도 여기서 비롯한 게 아닐까. 진정한 위기는 우리 밖이 아니라 안에서 밀려온다.
‘농’이 삶의 근본임을 깨달아야
매일 밥상에 오르는 밥과 국과 김치를 잠시 바라본다. 이 소박한 먹을거리가 내 삶을 지탱한다. 이 소중한 음식이 내게 온 경로를 거슬러 가면 결국 ‘땅’에 이른다. 그렇게 나는 ‘농’과 연결된다. 평소에 잊고 살 뿐, 내 삶의 토대는 내가 거의 살아본 적이 없는 농촌이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농사가 없다면 우리가 으레 있는 것으로 여기는 일상의 먹을거리도 없다. 어디나 마찬가지다. 먹을거리는 시장에서 돈으로 구매하는 상품 이상의 것, 자연의 힘과 농부의 땀이 담긴, 돈으로 사지만 돈만으로는 구할 수 없는 선물이다. 먹을거리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한 것이다.
날이 풀리자 아이들이 밖으로 나온다. 땅에서 뛰어놀며 마냥 즐겁고 행복하다.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 땅에 대한 친화력은 타고나는 것 같다. 자라나면서 땅과 만날 기회가 줄어들며 친밀감도 약해진다. 땅의 감각을 회복하면, 그래서 논밭만이라도 이윤과 효율이 아니라 삶의 근본으로 여긴다면 세상은 지금과 얼마나 달라질까.
봄,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때다. 땅의 감각을 회복하는 데 농사보다 좋은 건 없다. 도시에 살아도 농사로 땅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은 있다. 텃밭 경작은 훌륭한 농사다. 텃밭이 없으면 베란다 같은 공간이나 화분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농민에게서 농산물을 직접 사는 것도 좋겠다. 봄, ‘농’이 삶의 근본임을 깨닫는 때가 되길 바란다.
조현철 신부·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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