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정부 이기는 의사, 의사 이기는 정부

2024. 3. 1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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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전국의과대학 재학생들과 대형병원 전공의들의 수업거부 및 사직 여파가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대학병원 등 대형병원에서는 신규환자 예약 중단, 외래 진료 축소, 수술 중단 및 연기 등의 제한적 의료행위가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의대 교수들마저 오는 25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지난 16일 의결했다. 자칫 의료체계의 붕괴로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마저 예상된다. 그럼에도 정부와 의사단체는 당초 입장에서 한치 물러나지 않고 자신들의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이번 강대강 대치는 본질적으로 의대정원 2000명 증원에서 비롯되었다. 필수의료정책 패키지 백지화, 근무환경 개선, 수련병원 전문의 채용 확대 등은 다소 부차적이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2035년 국내 의사수가 1만여명 가량 부족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의사 배출에 걸리는 시간 등을 고려할 때 2025년부터 연간 2000명 증원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대한의사협회 등에서는 증원 규모 2000명의 근거가 석연치 않다고 반발하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지난달 20일에 의대 증원 계획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결의하고 사직서 제출을 시작했다. 또 전국 의과대학생들이 이에 동조, 수업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은 자발적 행동이라고 밝혔지만 많은 국민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사실상 파업으로 간주하고 있다.

정부 역시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은 국가안보, 치안과 함께 국가가 존립하는 이유이자 정부에 주어진 가장 기본적인 헌법적 책무"이라며 "의대 증원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또한 "2000명 증원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확충 규모"라며 선을 그었다.

이번 의대 정원의 조정은 대학입시 및 교육에도 엄청난 부작용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의대 입학정원이 현 3058명에서 내년 5058명으로 늘어나면 고교 성적 우수 학생들이 대거 의과대학으로 빠져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상위권 공대생의 의대 유출로 인한 후유증이 있는 상황에서 그 규모가 5000명으로 확대되면, 또 다른 이공계 위기를 낳을 수 밖에 없다. 서울대와 카이스트 등에서도 벌써 자퇴생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마저 나온다.

그럼에도 의사의 공급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정부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 지역에서 의료혜택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현재의 지역 소멸, 출생률 급감의 이면에는 지역의료의 붕괴도 한몫하고 있다. 늘어나는 의대정원 중 80%인 1600명을 지역거점국립대 등 비수도권대학에 우선 배정하겠다는 것도 이같은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전공의들과 의과생들이 면허취소, 유급 등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단체행동에 나선 것은 나중에 구제될 것이라는 경험과 믿음 때문이다. 그동안 의사들과의 갈등 상황에서 정부는 매번 굴복해왔다. 2000년 정부가 의약분업을 추진할 때, 의사 4만여명이 서울 여의도에서 의약분업 반대 시위를 했다. 이에 정부는 의대 정원을 10%로 줄이면서 의사들을 다독거렸다. 2014년 정부의 비대면 원격진료 추진, 2020년 의대정원 400명 증원 추진 등에서도 의사들은 대규모 파업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켰다. 그러면서 '의사 이기는 정부 없다'는 자신감을 키워왔다.

이번에도 의사들이 뭉치면 정부가 결국 물러날 것이라는 오만함이 엿보인다.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만약 (정부가) 전공의들에게 면허정지, 사법절차를 진행한다면...대한민국 의료가 완전히 무너지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단언했다. 전공의들이 다치는 상황이 발생하면 교수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를 확인시켜주듯, 의대 교수들이 제자 보호를 이유로 16일 사직서 제출을 의결했다.

한국사회 엘리트로 인정받아온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가 어느덧 도를 넘어섰다. 이번만큼은 정부가 백기를 들어서는 안 된다. 의대 교수들은 병원과 학교에서 이탈한 전공의·의대생들의 복귀 명분을 정부에게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순서가 잘못되었다. 오히려 의대 교수들이 전공의와 학생들에게 "정부를 이기는 의사는 없다"며 의료현장으로 돌아가자고 설득해야 한다. 정부는 국민의 대리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정부가 의사들을 힘으로 압박해서는 안된다" 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 뒤 5년간 2000명이 아니라 7년, 10년 1만명 등의 타협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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